그래도 괜찮다고 할 것인가

ep.7 지옥같은 임신 초기를 지나

by bella

단약 11주차, 세상에 빛이 돌아왔다.


눈을 떴을 때 천장이 어쩐지 선명했다. 흐릿하게 번져 보이던 윤곽선이 또렷해져 있었다.

거실로 나와 창밖을 내다보았다. 너무의 잎사귀 하나하나까지 보였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이 구별되었다.

초점이 맞기 시작했다.

10주 동안 안개 속을 해메다가 마침내 안개가 걷히고 있었다.


회사에서도 변화가 감지되었다.

모니터 화면의 글자들이 더 이상 춤추지 않았다.

한 번 읽으면 내용이 들어왔다.

동료의 말이 물속 소리처럼 왜곡되지 않고 명확하게 귀에 닿았다.

업무처리 속도가 조금씩 빨라졌다.

약을 먹던 시절만큼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정상적인 사람의 범주 안에는 들어와 있었다.


무엇보다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가슴을 짓누르던 무게가 조금씩 가벼워졌다.

여전히 불안은 있었지만, 이제는 그것이 나를 완전히 삼키지 못했다.

불안의 파도가 밀려와도 그 위에 떠 있을 수 있었다.

익사하지 않고, 숨을 쉬며, 파도가 지나가기를 기다릴 수 있었다.


내 안의 괴물도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남편이 새벽 운동을 나갈 때 심장이 쿵쾅거리는 일이 줄어들었다.

핸드폰 알림음에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게 되었다.

여전히 가끔 의심의 싹이 돋아나긴 했지만, 예전처럼 순식간에 거대한 나무로

자라지는 않았다.

싹이 올라올 때 손으로 뽑아낼 수 있었다.

아프긴 했다.

그 뿌리를 뽑아내는 과정은 고통스러웠다.

스스로 치유할 수 있다는 사실, 그것이 가낭 큰 변화였다.


남편과의 관계는 여전히 조금 어색했다.

지난 몇 주 동안 내가 휘두른 날카로운 말들이 우리 사이에 보이지 않는 상처를 남겼다.

남편은 여전히 친절했고, 여전히 밥을 차려주었고, 여전히 나를 안아주었지만

그의 눈빛의 깊은 곳에는 조심스러움이 깔려 있었다.

언제 또 내가 돌변할지 모른다는 경꼐심. 그것을 느낄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


12주차가 다가올 무렵, 친구의 결혼식 초대장이 왔다.

대학 시절 룸메이트였던 친구.

남편과 함께 가기로 했다. 외출 자체가 오랜만이었다.

지난 몇 달 동안 나는 집과 회사만 오가는 삶을 살았다.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두려웠고,

웃는 얼굴을 만드는 것조차 고역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나아진 것 같았다. 드레스를 입고, 화장을 하고, 밖으로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식이 시작되고 신부가 입장했다.

순백의 드레스를 입은 친구는 빛나고 있었다.

눈물이 났다. 하지만 이번에는 슬픔이나 고통의 눈물이 아니었다.

축복의 눈물이었다. 친구의 행복을 진심으로 기뻐할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내가 회복되고 있다는 증거였다.


피로연장에서 남편은 나를 위해 음식을 가져다주었다.

의자를 빼주고, 물을 따라주고, 내가 불편하지 않은지 계속 확인했다.

친구들이 다가와 인사를 건넬 때도 남편은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갔다.

내가 말문이 막힐 때면 적절히 개입해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었다.

임신한 내가 지치지 않도록 배려하면서도, 그것이 티 나지 않게 자연스럽게 행동했다.


그의 모습을 보면서 깨달았다. 이 사람은 진짜였다.

가식이나 계산 없이, 그저 나를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이었다.

지난 몇 주 동안 내가 그에게 퍼부은 의심과 비난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여기 있었다. 떠나지 않았다. 변하지 않았다. 한결같았다.


혼란형 애착을 가진 사람이 믿음을 배우는 것은 쉽지 않았다.

평생의 과제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시작은 할 수 있었다.

작은 발걸음이라도 내딛을 수 있었다. 오늘이 그 첫걸음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남편이 물었다. 즐거웠냐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말했다. 고맙다고. 오늘 너무 잘해줘서. 남편이 웃었다.

오랜만에 보는 편안한 웃음이었다. 그의 손이 내 손을 덮었고, 나는 그 손을 밀어내지 않았다.


웃을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에는 억지로 지었던 미소가 이제는 자연스럽게 나왔다.

남편의 농담에 웃고, TV를 보며 웃고, 별것 아닌 일상에서 웃음을 찾았다.

지옥 같았던 임신 초기가 지나가고 있었다. 단약의 고통이 서서히 끝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인생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한숨 돌릴 만하면 새로운 산이 나타났다.

12주차 산부인과 검진 날짜가 잡혔다. 기형아 검사. 목투명대 검사라고 했다.

태아의 목 뒤쪽 투명대의 두께를 측정해 염색체 이상 가능성을 확인하는 검사였다.


의사의 설명을 들으며 다시 불안이 고개를 들었다.

약을 먹었던 나. 6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정신과 약을 복용했던 나.

아침 5알, 저녁 8알. 그 약들이 태아에게 영향을 미쳤을까.

단약을 했지만 이미 임신 초기에는 약이 체내에 남아 있었을 것이다.

그 독성이 작은 생명을 망가뜨리지는 않았을까.


지옥 같은 임신 초기를 지나왔다고 생각했다.

단약의 고통을 견뎌냈고, 내 안의 괴물과 싸워 이겼고, 조금씩 일상을 되찾았다고 안도했다.

하지만 진짜 시험은 이제부터였다. 내가 먹었던 그 모든 약들이 과연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 결과를 직면해야 하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배를 쓰다듬으며 속삭였다. 괜찮을 거라고. 우리 잘 견뎌낼 거라고.

하지만 목소리는 떨렸고, 손은 차가웠다. 새로운 산이 앞에 있었고,

나는 다시 한 번 올라가야 했다.


- soon


Next ep.8 기형아 검사 대기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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