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정 작가의 <고통 구경하는 사회>를 읽고...
독서모임에서 책《고통 구경하는 사회》를 읽으며, 나는 여러 번 멈칫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 책이 말하는 ‘고통을 소비하는 시선’이 바로 내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사건·사고, 참사와 재난들을 볼 때마다 가장 먼저 느끼는 감정은 죄책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지, 왜 이런 비극을 막지 못했을지,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혹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죄책감을 느끼는 것 같다.
이로 인해 너무 그 일에 몰입해 무력해지거나, 반대로 그런 감정을 회피해 버린다.
결국 뉴스 알림을 닫고, 차마 더는 검색하지 않는 나.
하지만 이 책은 묻는다.
“기사를 읽은 그 다음에, 당신은 무엇을 했는가?”
얼마 전 여행에서 우연히 이태원 참사 유가족을 마주했을 때도 그랬다. 방문객이 없는 추모 공간에서 영정사진을 바라보던 한 어머니의 뒷모습. 나는 그 무거운 장면 앞에서 가슴이 먹먹해졌지만, 곧 스스로에게 물었다. 내가 지금 느낀 안타까움은, 책에서 말하고 있는 '휴대폰 화면 앞에서 뉴스를 볼 때의 감정'과 무엇이 다른가?
책은 우리 사회가, 그리고 개인이 타인의 고통을 얼마나 쉽게 ‘콘텐츠’로 소비하는지를 짚어낸다. 또 타인의 고통을 취재하고 보도하며 겪는 기자의 윤리의식, 딜레마들을 솔직하게 풀어낸다.
기사를 읽고 '좋아요'를 누르지만 변한 것은 없는 현실, 쪽방촌에서 하루동안 그들의 삶에 침투하여 '체험'을 하고 돌아오는 기자의 기사, 수도권 중심의 뉴스 프레임, 우리와 닮지 않은 집단의 아픔을 쉽게 외면하는 태도…. 책의 많은 부분에 공감했지만 동시에 나는 그 대목들을 읽으며 불편했다. 왜냐하면 그건 기자들의 문제이면서 그 기사와 뉴스를 읽는 대중 속의 한 명인 나의 문제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나는 수도권 이외의 지역에 갈 때마다 ‘이 지역은 소멸될까 봐 걱정된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때의 나를 돌아보니, 그저 수도권에 사는 내가 여행으로 지역을 방문하여 안전한 거리에 서서 “안타깝다”고 말하는 것뿐이었다. 그 속에 은근히 깔려 있던 마음은 '나는 여기 사는 사람들과는 달라'는 선 긋기가 아니었을까 하고 깨닫는 순간 나는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다.
그동안 내가 현대 사회의 다양한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고 나름의 행동을 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마음이 불편하고 당당하지 못했던 이유를 알았다. 행동보다 감정에 머무는 내 모습에 죄책감을 느낀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계속 부끄러움을 느꼈던 이유가 바로 이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안다. 그렇다고 이 사회에 눈을 감는 게 정답이 아니라는 걸.
기사에 좋아요를 누르고, 주변에 공유하고, 청원에 참여하며 작게나마 기부를 하는 일들이 완전히 무의미하진 않다고. 나는 종종 내가 '도덕적인 나'를 전시하고 싶은 것은 아닐지 고민했다. 그리고 이런 이슈들에 관심을 갖고 주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일이 과연 세상에 도움이 될까, 직접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기에 나는 너무 작은 개인이고 그런 일들은 더 직접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하고. 하지만 나는 믿고 싶다. 독서모임 멤버분이 말씀해주신대로, 0이 아닌 1, 그 작은 관심이 모여 사회를 바꾸는 힘이 되리라는 것을.
책의 마지막에서 작가는 말한다. “타인에게 연민만을 베풀기를 그만두는 일이야말로 우리의 과제다.”
나는 이 문장을 오래 붙잡는다. 연민에 머물지 않고 행동하는 사람. 나 역시 그렇게 살고 싶다.
세상은 더 나아질 수 있고, 사람들은 선하다는 전제. 결국 내가 믿는 건 이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작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이 사회를 조금은 더 안전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