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양재동, 안녕? 옥수동
지금 떠나는 이 집에 정이 많이 들었다.
무슨 콩깍지가 씌었는지 마누라랑 신혼집을 부랴부랴 알아보러 다니던 이 년 전, 이 좁고 더웠던 집이 눈에 꽂혔다. 꽂힌 것도 잠시 집이 좁아 불평했고 부엌에서 조리를 할 때도 동선이 너무 짧아 이유 없이 신경질을 많이 내기도 했다. 일 년도 더 남은 시점에서 직방이니 다방이 니를 켜놓고 벌써부터 다음 이사 갈 집을 찾아댔고 나는 지금 우리 집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논리로 순간을 피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 나도 어서 2년이 지나가길 기다리긴 했다.
막상 내일모레 이사를 나가려고 하니 아쉬움을 남겨두기 위해 브런치에 흔적을 남긴다.
어쩌면 이제 신혼이고 번듯한(전세지만) 집이 있는, 따듯한 집이 있는 가정임을 양가 부모님들께 빨리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결혼하고 신혼여행을 다녀온 뒤 김해 처갓집을 들었다가 남원 할머니 댁에 아버지가 포도농장을 하고 계셔서 남원을 들렀다. 하룻밤을 지내고 다음날 아침에. 어머니와 아버지께서 서울 집에 데려다준다고 하셨다. 먼 길이 기도하고 서울에서 다시 부산으로 내려가는 길이 만만치 않은 거리라 고사하였지만. 내심 아들이 서울 어디서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셨을 거라 생각해서 같이 올라가게 되었다. 나는 차만 타면 잘 자는데, 그날도 대화도 없이 잘 자다가 부모님과 함께 서울 집에 잘 왔다. 역시나 집은 온갖 잡동사니들을 다 늘어놓고 나온지라 개판 오분전이었지만 우리 부모님과 함께 였기에 나는 마음은 편했다.
금방 부산에 내려가야 하셨는데 아버지께서 너무 피곤하다고 하시며 조금 쉬었다 가셨음 했다. 엄마도 그래 좋겠다고 하시며 내가 침대에서 주무시라고 권했는데도 굳이 거실에 엄청 딱딱한 의자에서 점을 주무셨다. 내 기억으로는 십 초도 되지 않아 바로 코를 골고 주무셨다. 장거리 운전이 피곤하셨으리라. 두 시간도 주무시지 않고 일어나셔서 부랴부랴 어머니와 함께 부산으로 출발하셨다. 그게 우리 아버지가 서울 우리 집에 온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었다. 그로부터 두 달 뒤, 세상을 떠나셨다.
나는 그 뒤로 장모님이나 손님들이 오시면 항상 집을 깨끗하게 치워놓는 버릇이 생겼다.
이삿짐을 정리하다 보니 아버지가 키운 포도로 주스를 만들어 보내주신 팩이 다섯 개가 서랍 속에 있었다. 벌써 1년 6개월 전에 받아온 포도주스라 먹을 수도 없었고 사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반 이상 잘라 하수구에 버렸지만 차마 아버지가 손수 키워서 정성이 담긴 주스를 버릴 수 없어 다섯 팩만 남겨둔 것이었다. 내심 와이프가 이게 뭐냐며 버려주길 바랬지만 그냥 그렇게 꽁꽁 서랍 속에 들어가 있었다. 서랍을 정리하며 한팩이라도 가져가야 할까라는 생각과 아버지가 처음 우리 집에서 쪽잠을 주무시던 추억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아버지와의 좋은 추억도 아니고, 계속 들고 있어선 아버지가 계속 생각이 날 것 같아서 가위로 잘라 마지막 남은 포도주스를 하수구에 부어 버렸다. 버리는 와중에도 이걸 가져가 말 아를 몇 번이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결국에는 다 없어져 버렸다.
아버지가 살아계셨으면 많이 좋아라 하셨을 텐데 , 아쉬운 마음이다. 아버지 몫까지 더 열심히 사랑하며 열심히 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