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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범한츈 Oct 08. 2019

 '좋아 보이는 장표 디자인의 비밀' 프레젠테이션 후기

3개월의 제작과정

회사 내 로비에 재미있는 공간이 생겼다. 이름하여 '살롱 드 서초'

원래는 도서관 형태로, 매우 조용한 공간이었는데, 이 공간을 사내 연구원들이 일상을 공유하는, 사람이 모일 수 있는 공간으로 재탄생되었다. 그러면서 3x3의 대형 스크린을 설치하고, 주변에 자연스럽게 모일 수 있는 벤치를 배치하여, 자유스러운(?) 강연이 가능한 환경이 조성되었다.


물론 아직까지는 자기가 자처해서 강연을 사람은 없었겠지만, 업무시간이 아닌, 점심시간에 자유로운 주제로 가볍게 일상을 공유하는 참으로 재미있는 공간이 탄생되었다고 생각한다.


이 공간에서 TED형식의 순서에 강연을 요청받아 준비하게 되었다.


대략 3개월간의 프레젠테이션 준비과정을 공유해 본다.




1단계 - 주제 정하기


9월 25일 수요일로 예정이 되었지만, 섭외 요청을 받은 것은 5월이었다. (그때만 해도 시간이 이렇게 빨리 갈 줄 몰랐다) 무슨 말을 할지 주제를 정하는 과정은 약간은 행복한 고민이다.


2가지의 주제가 예상되었다.

첫 번째는 내가 근 15년 이상  재능기부식으로 하고 있는 영화 포스터 디자인에 관한 이야기였다. 변태감독님 영화 시리즈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와 캘리그래피나 서체를 사용하여 영화 타이틀을 디자인하는 과정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이 주제는 정말 그냥 취미에 대한 내용이었다.


두 번째는 회사를 다니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씩 생각해볼 만한 장표(프레젠테이션)  디자인에 대한 내용이다. 나름대로 브런치에 꾸준하게 프레젠테이션 디자인을 주제로 포스팅하고 있어서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첫 번째, 두 번째 주제를 놓고 어떤 주제로 발표를 할지 고민이 많았다. 이런 고민이 생길 때는 나는 무조건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본다. 어떤 주제가 재미있겠는지? 와이프를 포함하여 5명 정도에게 물어보았는데 2번 주제인 프레젠테이션 디자인 관련 강의를 준비하기로 했다.



2단계 - 전체 구조 생각하기


프레젠테이션 디자인으로 어떤 이야기를 풀 수 있을까? 대략의 큰 뼈대를 잡아보기로 한다.

이 과정은 너무나 지겹고, 게을러진다. 두리뭉실한 건 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 참으로 난해하다. 몇 줄을 휘갈긴 텍스트는 몇 달째 변화 없이 그대로다. 더 파보면 분명히 할 말이 있을 것 같은데 아직 발표일까지 길게 남은 날짜를 생각하다 보면 또다시 게으르게 된다. 내가 두 번째 주제를 확정하고 나자 마자 정리한 내용은 아래와 같다.

좋아 보이는 장표 디자인의 비밀 - 프레젠테이션 디자인 머티리얼

 1. 장표 디자인에 대한 오해
 2. 프레젠테이션 디자인 머티리얼
3. 장표 디자인의 바이블 Apple 장표 디자인
4. 세기의 장표 디자인  Samsung (네가 여기서 왜 나와) vs Apple

이 내용은 결국 최종 발표까지 그대로 사용되었다.




3단계 - 구체적인 내용 짜기


대강의 전체 구조가 나왔으니, 구체적인 내용을 짜야한다. 시나리오를 써 보는 것이다. 이과정 역시 매우 게을러지기 마련이지만, 구체적인 내용을 짜겠다고 마음을 먹었다는 것은 곧 발표일이 다가온다는 말이므로 게을러질 수가 없다. 어떻게 서든 짜내야 한다. 이 시나리오를 기준으로, 키노트를 이제 디자인해야 한다. 해야만 한다. 2019년 8월 말, 여름휴가로 런던 여행을 1주일간 다녀왔는데, 런던에서 인천에 오는 비행기에서 이 내용을 정리했다. 아이패드 프로를 챙겨간 덕에 비행기에서 아주 알찬 시간을 보냈다. 내가 여태까지 비행기에서 보낸 시간 중에서 가장 잘 보낸 시간 중 하나에 꼽힌다.



4단계 - 강연 홍보를 위한 포스터 만들기 (feat 모션 포스터)


키노트 프레젠테이션을 디자인하기 전이지만, 이미 확정된 주제로 사내 홍보를 위해 포스터를 디자인했다.

나름 디자인 강연이다 보니 디자인에 신경을 쓰일 수밖에 없었는데, 너무 많은걸 적으려다 보니 참으로 산만한 안들이 많이 나왔다. 결국은 쓰지 못했던 안들이 있는데, 지금 봐도 안 쓰길 참 잘했다,


참고로 포스터 디자인이라고 뭘 새로운걸 또 따로 만드는 건 아니었고, 프레젠테이션의 첫 표지를 그대로 포스터로 활용했다. 이 포스터는 사내 엘리베이터 스크린, 복도 사이니지를 통해 송출되므로, 16:9 비율로 디자인이 되어야 했다.  


어차피 이후에 만들어질 프레젠테이션의 디자인 콘셉트로 활용될 것이기 때문에 미리 신경을 좀 써보았다.



최종으로 정한 디자인은 아래와 같다.  

알아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배경으로 사용된 이미지는 내가 디자인한 게 아니라, 애플에서 2017년인가 (정확하지 않다) wwdc의 포스터로 활용한 디자인이다. 나의 강의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계속 등장하는 것이 애플의 프레젠테이션 디자인 이야기라서, 포스터 프레임으로 이 이미지를 선택했다. 이 그림을 멀리서 보면, 애플 로고가 보인다. 후에 이야깃거리도 되었음 하여, 이 디자인으로 진행했다.


사내 사이니지를 통해 송출되는 포스터들을 보면서, 디지털 사이니지인데 왜 이미지가 정지되어야만 할까라는 의문을 항상 가졌다. 이왕 만드는 거 글자라도 좀 움직이게 하자는 마음으로, 고민하던 중에 어차피 만들어야 하니, 이걸 동영상으로 녹화해서 모션 포스터로 만들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스크린 플로우라는 프로그램을 이용해 디자인하는 과정을 녹화했다. 사실 처음에 작업하는 화면을 있는 그대로 녹화하자가 목표였는데, 하다 보니 연출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방송은 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다)


어쨌든 만들어진 모션 포스터는 아래와 같고, 사내 사이니지를 통해 7일간 틈틈이 방송되었다.




5단계 - 장표(프레젠테이션) 디자인하기 & 영상 편집하기


이제 일은 다 저질러 놨으니 장표를 본격적으로 디자인해야 한다.

2단계와 3단계의 내용을 적절히 조합하고 디자인에 돌입했다. 몇 가지 디자인들을 공유하면 아래와 같다.

 


디자인에는 발표 환경의  3x3 스크린의 구조를 반영한 디자인이다.

구조적으로 배젤이 보여, 분절된 느낌을 줄 수 있는데,  배경을 검은색으로 하여 베젤 보임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어두운 배경을 사용하여 디자인하였다.


또한 아래 디자인은 스크린이 3x3인 점을 고려한 레이아웃이다. 아래와 같이 디자인하면, 1개의 스크린에 한 개의 이미지가 뜬것 같은 느낌을 줄 수 있다.


30분간의 강의 시간을 재미있게 채워줄 동영상도 편집을 해서 삽입했다.

스티브 잡스의 주옥같은 명장면들을 편집한 영상 1편,

삼성의 갤럭시 노트 언팩 3개년 하이라이트 영상 1편,

마지막 one more thing에 보여줄 잡스 프레젠테이션 비하인드 영상 1편, 총 3편이었다.


나름대로 이런 영상을 넣을 때는 나만 재미있어한다는 걸 염두에 두고, 항상 짧게 넣자고 다짐하는데,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인지, 자꾸 영상 클립 길이가 길어진다. 다음 단계인 연습하기 단계에서 직장동료에게 보여주면서,

처음 보았을 때의 느낌을 물어보고, 길다고 이야기가 나오면 가감 없이 잘라낸다.


영상을 편집해서 넣는 이유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그대로 담은 영상은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영상편집은 기본적으로 자르고 붙이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어려운 작업이 아니다. 그리고 요즘은 툴이 너무 잘되어있어서 누구나 쉽게 편집할 수 있다. 나는 유튜브에서 소스들을 다운로드하고 어도비 프리미어를 이용하여 편집했다. (동영상은 저작권이 내 것이 아니라 공유가 안 되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6단계 - 연습하기


스피치에 능하지 않다면, 연습을 해야 한다.

능한지 안 한지는 본인이 가장 잘 안다. 청중들 앞에서 벌벌 떠는 스타일이라면 연습을 꼭 해야 한다.

예상되는 시나리오까지 예상하여, 연습을 해야 한다. 이때 발표자 메모를 활용하여하고 싶은 말이나, 예상되는 이벤트 등을 메모해두면, 발표할 때 도움이 된다.

애플 키노트 발표자 메모

발표할 때 발표자 메모를 그대로 보고 읽는 건 좋지 않다. 마치 책을 읽는 사람처럼 부자연스럽다. 그래서 가장 좋은 건 다 외우는 것이다. 달달달 외우라는 게 아니라, 슬라이드에서 꼭 해야 할 말들을 꼭 외우란 말이다.


슬라이드 내 디자인된 요소들에 힌트를 넣어 외우면 조금 쉽게 외울 수 있다. 예를 들어 까먹을 것 같은 내용은 텍스트 키워드로 슬라이드에 디자인 요소로 표시를 해두고, 발표 연습을 할 때 가상의 순서를 정해두고, 그 시선대로 옮겨가면서 내용을 상기해볼 수 있다.


이렇게 혼자 연습을 했으면 끝나는 게 아니라, 주변에 사람들을 대상으로 연습을 해봐야 한다. 그러한 과정에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고, 지루한 슬라이드는 삭제, 반대로 필요한 슬라이드는 추가하여 더 매끄럽게 진행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할 수 있다.


아래 슬라이드는 삭제된 슬라이드인데, 너무 투머치 하고, 필요 없어 보이는 장표라 과감하게 삭제가 되었다.

도중에 편집되어 삭제된 슬라이드


뿐만 아니라 5단계에서 삽입했던 동영상들에도 지루한 점이 발견되었다. 스티브 잡스의 주옥같은 피티를 소개하는 영상에서 나는 많이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4종류의 영상을 삽입하였으나, 최종 3개의 컷으로 편집되었다. 영상은 정말 짧은수록 좋은 것 같고, 최대 1분 30초를 넘어가면 아무리 재미있는 영상이라도 지루해지기 마련이다.


아래 슬라이드는 아이디어를 얻어 추가한 슬라이드다. 장표가 끝난 것처럼 하다가 스티브 잡스의 스페셜 이벤트인 원 모어 띵 one more thing을 나도 써보는 것이었다


계획에 없다가 추가된 슬라이드로 마무리됨



7단계 - 강연하기

3개월이 후 딱지 났다. 강연을 업으로 하는 게 아니라, 회사일을 하면서 준비했기 때문에 시간이 더 빠르게 갔나 싶다. 아무튼 시간은 정직했고 9월 25일 수요일이 되었다. 청중들이 많이 오지 않을까 싶어서 팀원들이 응원 와준다고 하였을 때 쉽게 거절하지 못하였고, 동기들도 와서 자리를 채워주었음 하는 마음이었는데, 웨제목이 너무 거창했는지 정말 많은 분들이 와주셨다. 뭐라도 얻어가고 싶어서 오셨을 텐데, 내가 너무 판을 크게 벌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때마침 본사에서도 여기서 벌어지는 문화행사를 촬영하러 촬영팀까지 왔다고 하여 (미리 들었음에도) 더욱더 긴장이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생각해보니 내가 프레젠테이션 디자인 분야만 10년을 넘게 팠는데 이즘 되면 나도 이 분야 전문가다 라는 생각이 들어서,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동료 2명에게 리허설도 하고, 시작 40분 전에 우황청심환도 먹고 시작했는데 떨리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나 보다, 처음에 청중들에게 던진 질문에, 다들 무표정이라 매우 당황하여 페이스를 한번 잃었었다. (이래서 갑자기 청중들에게 질문은 하면 안 된다)  아무튼 예상했던 시간을 정확히 채우고, 3개월 간 준비한 강연이 끝났다.


비하인드 스토리로 사진 맨 뒤 가운데 앉아있는 친구는 우리 파트 막내다.

내가 너무 긴장이 되어서 특별히 부탁을 했는데 저렇게 가운데 앉아주었다. 덕분에 아이컨택이 좀 더 자연스러웠던 것 같다. 급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8단계 - 피드백 듣기


강연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마지막으로 피드백을 듣는 것이 중요하다.

이 피드백은 강연이 잘 되었나 못 되었나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고, 내용에 대해 다시 한번 챙겨볼 수 있기 때문에 이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


대부분 강연이 제대로 끝났는지를 알려면, 질문과 답변시간에 강연 내용에 대해 많은 질문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수나, 명함을 받아가는 사람들의 수를 보고 판단할 수 있다. 내 강연이 끝나고는 질문은 단 2개가 나왔고, 홍보팀 촬영 지원 때문에 와주신 청중들과 인사를 나누는 시간을 보낼 수 없어 아쉬웠다.


3개월간 준비한 모든 것이 끝나고 다시 오후 업무로 복귀했을 때 나는 몹시 기분이 좋았다.

강연에 대한 피드백이 회사 메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대략 15명 정도분이 개인적으로 메일을 보내주셨는데, 이번 특강이 나쁘지 않았고, 앙코르로 해도 좋겠다는 긍정적인 메시지가 많았다.

어깨가 한번 으쓱해지는..  사내 강연은 회사 다니면서 개인적인 취미로 이렇게 보람찬 경험을 하게 되니 참 묘한 매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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