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의 목표 +α 의 디자이너
예전에 존경했던 PL들을 떠올려보면 선배님 머릿속에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에 대한 큰 그림과, 예상되는 아웃풋이 프로젝트가 착수되기 전부터 이미 다 있어 보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멤버별로 공평한 업무 분장과, 상황에 맞아떨어지는 디테일한 정답 같은 디자인 디렉션을 내릴 수 없다고 생각했다.
올해 1년간 막상 내가 PL역할을 하고 보니, 선배님들이 잘하던 것만큼 디자인에 대한 파이널 아웃풋을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기에도 줏대 없이 자주 말을 바꾸는 것 같다. 다 같이 모인 프로젝트 회의에서 긴가민가 하지만 A방향으로 하자고 결정하고, 멤버들과 디자인에 들어간다. 여기서 두 가지 케이스가 발생된다.
첫 번째 케이스 | 먼저 같은 방향으로 도출한 A방향에 대해 충분한 고민과 디자인을 해보고, 그 결과 A방향은 어떤 이유에서 어려우니, 그것들을 보완한 B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멤버
두 번째 케이스 | A방향으로 결정되었으니, 무조건 A로 깊이 판다. 하다 보니 답이 없는데 계속 A를 파는 멤버
두 번째 케이스에 비해 첫 번째 케이스가 훨씬 능동적이며, 주도적으로 일하는 사람이다. (물론 이 경우 A, B의 아웃풋이 모두 좋아야, 멤버들을 설득 가능하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대충의 심상은 가지만, 최종 결과물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 두리뭉실한 심상을 경우의 수나 변수들을 여러 가지 방향에서 같이 고민해주면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
자명한 사실은 디자인이라는 건 답이 없다. 같은 조건에서 최상의 아웃풋을 내는 게 우리 모두의 공통 목표이다. PL입장으로는 미쳐 생각하지 못한 부분에서 더 좋은 설루션을 찾아낸다면 그 길로 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
단지 회의에서 합의되었다고 그 틀 안에서 디자인을 제안하는 것보다 +α의 아이디어를 제안해보는 게 더 도움이 될 수 있다.
언행일치의 디자이너
말만 번지르한 디자이너들이 있다. 콘셉트 단계에서 이야기했던 것이 최종 아웃풋과는 완전히 다른 경우다. 말이라도 잘해서 다행이다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디자이너가 아웃풋을 제대로 낼 수 없다면 자신의 역할에 대해 냉정하게 다시 한번 생각해보아야 한다. 머릿속에 있는 상상을 현실로 눈에 보이게 만드는 것이 디자이너의 역할인데, 말만 번지르하게 해서는 좋은 디자이너가 될 수 없다.
말로는 절대 좋은 아웃풋이 나올 수 없다. 디자이너의 머릿속 상상력을 더 나은 현실로 실현하기 위해 부지런히 출시되는 다양한 툴(tool)들에 대해서도 틈틈이 익혀두면 좋다.
찐 공감하는 디자이너
내가 디자인 분야에서 일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공감하는 능력이다. '공감하는 척'이 아니라, 진짜 '찐 공감' 이 필요하다. 여러 번 말하지만 디자인은 답이 없고, 협의를 통해 좋은 아웃풋을 내는 것이 최종적인 목표다. 그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여러 가지 아이데이션과 합의과정이 발생되게 되는데 여기서 서로 협의 과정에 대해서 공감하지 못하면, 프로젝트가 끝날 때까지 계속해서 잡음이 발생한다.
이럴 때 프로젝트 리더는 경청과, 의견의 정리, 그리고 설득의 과정을 통해서 좋은 아웃풋을 위한 합의점을 찾아내야 하고, 멤버들은 그 과정에 완전히 공감해야 다음 스텝으로 넘어갈 수 있다. 멤버들이 완전히 공감하지 못한 경우 자신의 아이디어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며, 결국 나의 프로젝트가 아니라 단순 조력자로 느끼게 될 때 현저히 참여율이 저조해질 수 있다.
인사이트가 밝은 디자이너
디자인은 트렌드에 예민하다. 플랫디자인의 큰 흐름 속에서 획일화되고 있는 디자인의 차별화를 위해서 계속해서 새로운 디자인을 찾아내려는 노력을 시도해야 한다. 요즘은 인터넷이 너무나 잘되어있기 때문에 이런 디자인 흐름을 파악하는데 어렵지 않다. 하지만 현실에 안주하면 좋은 디자인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항상 열린 마음으로, 시대의 디자인 흐름을 잘 인지해야 한다.
디자인 자체의 트렌드뿐만 아니라 , 요즘은 비대면이나, 1인 가구와 같은 글로벌 또는 국내에 한정적인 사회 현상의 트렌드나 나날이 업데이트되는 IT기술의 트렌드 또한 제대로 이해하고 있어 한다. 단순 이해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사회현상과 기술을 지금 당장에 어떤 방법으로 우리의 아웃풋에 담을 수 있는지를 항상 고민해해야 한다.
아티스트 말고 디자이너
우리는 회사에서 월급을 받고 일하는 디자이너로서 내 것을 위한 작업이 아닌 회사를 위한 일을 한다. 이것은 내가 이 회사를 먹여 살리는 사장이 아닌 이상 너무나 자명한 이치지만, 몇몇 디자이너들은 지나친 직업의식을 보여주며 협의 자체를 거부하고 마이웨이를 선언하는 디자이너가 있다.
나의 디자인 철학이 최고이며, 나의 실력만이 최고라 남의 이야기 따위 듣고 싶지 않다. 애초 이러한 성향의 사람이라면 여러 사람 피곤하게 하지 말고 디자인 회사에 입사하지 말 것을 권하고 싶다.
디자인 회사는 '내 것'이 아닌 '네 것'을 위한 회사다. 나의 의견을 말할 순 있지만 운이 좋아야 그 방향대로 갈 수 있고, 네 것 내 것 관계없이 필요하다면 디자인 소스를 공유하여 디벨롭시킬 수 있고, 오로지 '네 것'을 위한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 사람 힘들게 하지 말고, 아티스트의 길을 걷기를 당부하고 싶다. 가끔 이런 사람들과 같이 일을 하게 되는데, 정말 곤욕스러울 정도로 가장 힘들다.
이런 '내 것'을 위한 아티스트보다는 '네 것'을 하루빨리 처리하고 끝내기 위한 디자이너가 필요하다.
눈치 빠른 디자이너
눈치라고 쓰고, 센스라고 읽자.
막상 프로젝트의 리더이고, 나름 오해가 없게 디렉트로 말하는 습성의 나지만, 어느 정도 공수가 들어간 디자인에 대해 직설적으로 코멘트를 하기에는 나도 미안함이 있다. 어느 정도의 둘러대기로 의사를 표현하였을 때, 부족해 보이는 부분에 대해서 보완하여 완성해 주는 디자이너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같은 맥락으로 프로젝트 리더로서 상사의 디자인 의사도 재빠르게 캐치하는 것도 중요하다. 상사의 요구가 무리한 주장이 아니라면 어차피 공통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조직의 특성상 맞춰가야 한다. 눈치 빠르게 캐치를 하고, 빠른 합의점을 찾아야 멤버들과 고생하지 않는다.
긍정적인 디자이너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에 들으면 가장 김 빠지는 소리는
'이거 왜 우리가 해야 해요?'
'어차피 안될 것 같은데 꼭 해야 해요?'
와 같이 일을 착수하기도 전에 부정적인 인식부터 가지는 디자이너들이 있다.
'내 것' 아닌 '네 것'을 하는 회사 특성상 내가 원하는 디자인 프로젝트만 할 수 없다. 월급 받고 일하는 이상 주어진 프로젝트는 진행해야 하는 게 숙명이다. 따지고 들어가면 PL인 나도 원해서 가져온 일이 아니고, 팀장님도 별로 가지고 싶어 오지 않을 것이며, 위로 올라가면 연구소, 본부 등등 가지고 오고 싶어서 가져온 일은 없다. 주어졌기 때문에 해야 하는 일이 많다. 어차피 해야 할 일, 재미있게 즐겁게 하면 좋겠다. 경험상 시작과 과정을 재미있게 하면, 프로젝트가 잘 끝나는 경험을 많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