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범한츈 May 27. 2020

설레지 않으면 당근마켓에 내놔라

당근마켓의 3가지 감성포인트

당근마켓을 한번도 안 써본 사람은 있지만, 한번 쓴 사람은 없다. 그리고 당근 마케의 당근이 '당신 근처의 마켓'의 줄임말임을 아는 사람도 몇 없다. 이 슬로건에 걸맞게 당근 마켓은 그만의 독특한 감성 포인트가 있다.



예전에 회사 지인이 당근 마켓에 푹 빠져서, 무료 나눔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사실 나는 별로 감흥이 없었다. 으레 중고물품 거래라고 하면 우리에게 익숙한 오늘도 평화로운 중고나라를 떠올리곤 한다. 물건을 내어놓는 것부터, 문자로 일일이 상태를 알려줘야 하고, 포장까지 해서 타 지역 택배로 보내줘야 하는 (물론 직거래도 있다) 그리고 내가 내놓은 물건에 대한 돈을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 걱정까지, 이렇게 수고와 불안함을 계속 안고 갈 바에 그냥 창고에 쌓아두는 게 좋겠다 싶었다.

그러려니 하다가, 이사를 앞두고 집에 쌓인 쓰지 않는 물건들을 내놓아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근 마켓에 내어놓을 물건을 탐색 중에 집에 2대나 있던 제습기가 보였다. 엘사 제품인데 4년간 써온 물건이었다. 테스트 겸 사진을 몇 장 찍고 가격을 2만 5천 원에 내어놨더니 웬걸 정말 6초 만에 채팅 메시지가 왔다.


당근마켓에서 최초로 내놓은 물품



얼떨결에 제습기를 싸 들고 약속 장소에 나가서 거래가 성사되었다.
이게 하나가 팔리는 경험을 하고 나니, 이건 뭐가 돼도 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집안 곳곳 이것저것을 다 내다 팔기에 이르렀다.

 

부산에 있는 친누나에게도 당근 마켓을 알려줬다.
누나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처음에 가지고 있었다. 누나는 집안의 큰 행거를 내어놓았는데,  모르는 사람이 집까지 찾아와 물건을 직접 수거해 간다는데, 불안하다고 계속 문자가 왔다. 그 불안을 이겨내고 물건을 하나 팔더니, 누나는 당근 마켓 마니아가 되었다. 물건을 파는 것뿐 아니라 이제 물건을 사기까지 했다.

이렇게 당근 마켓은 첫 진입장벽이 높지만, 그 장벽을 넘고 나면 정말 그만의 매력이 있다. 이 매력은 일일 사용자가 증명하고 있는데, 다른 쇼핑 사이트를 모두 제치고 쿠팡에 이어 당당히 2위에 올랐다.
당근 마켓은 특유의 따뜻한 감성 포인트가 있는데, 3가지로 정리해보았다.


감성 포인트 1. 온도의 비밀

당근 마켓은 유저들의 온도를 체크한다. 온도를 보면 그 유저의 상태(?)를 알 수 있다. 물론 온도가 높은 사람일수록 남에게 호감을 살 수 있고, 대부분 이 온도는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이 온도는 당근 마켓을 이용하는 사용자들에게 신뢰도를 측정하는 요소로 활용된다.


물건을 열심히 팔다 보면, 은근히 온도를 높이고 싶은 욕심도 생긴다. 마치 애플워치에서 운동을 하고 나서 받는 배지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 후에 들은 이야긴데, 물건을 파는 것도 중요하지만, 물건을 사는 것도이 온도에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당근마켓 뱃지




감성 포인트 2. 쪽지나 문자가 아닌 채팅
내 물건에 누군가 관심이 있어 거래를 원하거나, 혹은 거래를 원치 않더라도 모르는 정보를 얻고 싶을 때는 1:1 채팅방이 열린다. 그곳에서 가격 흥정도 가능하고, 물건 상태를 좀 더 디테일하게 물어볼 수 있고, 심지어 말투(?)에 따라서 내가 그 사람에게 팔지 말지를 결정할 수 있다. 텍스트에는 인격이 있어서 내 물건을 사는 사람들의 성향을 바로 알아낼 수 있다.
무조건 깎아 달라는 사람이나, 말이 거친 사람들, 온도가 낮은 사람들은 패스하는 게 좋다.
누군가 채팅방을 열면, "당근~"이라는 경쾌한 사운드가 온다. 채팅에 대한 응답률 또한 중요한 지표로 사용되니(프로필에 응답시간이 뜬다), 물건을 내다 파는 사람이라면 빨리 회신을 해주는 게 좋다.  


감성 포인트 3. 직접 찾아오는 거래자
당근 마켓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거래가 자 직접 내 동네로 찾아온다는 것이다. 그게 기본 룰처럼 되어있다. 물론 택배 거래를 희망하는 사람도 있지만, 기본은 동네 사람과의 거래이며, 다른 동네 사람이 내 상품이 마음에 든다면 내가 사는 동네로 와서 거래를 한다. 이 물건을 어떻게 택배로 처리할 것인가 고민하지 않는 점이 매우 매력적인 거래 방식이다.



감성 포인트 4. 거래가 끝나고 난 뒤의 평가

거래가 끝나면 팔린 물건에 대한 평가를 하게 되는데, 물건을 산 사람이 평가하는 것뿐만 아니라, 물건을 판 사람도 물건을 사간 사람에 대해 평가할 수 있다. 이 평가 기록 역시 프로필에 표시가 된다. 프로필 표시 여부를 떠나,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분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바로바로 거래가 일어나기에 물건값을 어떻게 치를 건지 고민하는 시간이 줄어서 좋다. 그 자리에서 바로 계좌이체를 하거나 액수가 크지 않다면 바로 현금으로 준다.







일본 정리의 대가 곤도 마리에 가 말했다.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라고,
왜 버리나,
'설레지 않는다면 당근 마켓이 내다 팔자'


집안에 쓰지 않는 물건들은 정말 많지만, 정이 들어서, 아니면 그냥 눈에 보이지 않아서 버리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당근 마켓에 일단 내어놓기 위해서는 내가 내어 놓은 물건들의 디테일한 사진을 찍는다. 사진을 찍으면서 내가 이 물건을 언제 샀는지, 얼마에 샀는지, 얼마에 샀는지를 다시 한번 상기하게 된다. 그러고 소중한 물건은 다시 창고 속에서 꺼내기도 한다.


거래를 포기하고 창고 속에서 다시 나온 물건


사고나서 3번도 못 친 전자 키보드
팔고나서 빈 자리 

 

거래가 성사되면, 내가 내어놓은 소중한 물건을 닦고, 동작이 되는지 제대로 다시 확인 후, 작별 인사를 한다.


그러고 약속 장소에 물건을 가지고 나가 거래가 완료되면 뭔가 속이 시원하면서도 아쉬운 마음이 들 때가 많다. 그때는 내가 찍어놓은 사진들을 다시 보면 된다. 어차피 지금 쓰지 않을 거라면, 나중에도 쓰지 않을 테니 좋은 결정을 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매거진의 이전글 LG OLED TV(webOS)가 가져다준 신세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