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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범한츈 Mar 17. 2022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L사 스마트폰의 기억

팀에 배치받은 지 3개월 정도가 지났을 때 스마트폰을 교체해야 할 시기가 왔다. 그때 내가 사용하던 폰은 애플의 아이폰4였다. 신입 교육을 잘 받은 탓인지 왠지 자사폰을 한번 사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때마침 아이폰을 주로 쓰던 동기들도 하나둘 엘사 폰으로 바꾸던 시기였다. 그렇게 나의 첫 엘사 스마트폰은 ‘뷰 2’라는 제품이었다. 특이하게 이 제품은 4:3의 디스플레이를 가진 제품이었고, 펜이 탑재되어 퀵 메모를 실행하여 노트필기를 할 수 있었다.


당시 내가 속한 연구소 내 그래픽 디자이너들이 아이폰을 사용하고 있었던 상황이라, 아이러니하게도 자사폰인 나의 뷰 2는 많은 디자이너들의 관심을 받았다. 처음에는 ‘오.. 이제 안드로이드도 제법 쓸만하네?’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는데, 그 생각은 정말 잠시였다. 아이폰만 쓸 때는 잘 몰랐는데, 안드로이드폰을 겪고 나니 아이폰이 정말 잘 만든 제품이라는 사실을 크게 깨닫게 되었다. 당시에 내가 아이폰을 다시 그리워한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1. 적응 안 되는 안드로이드 UI

지금이야 위젯 같은 것들로 아이폰을 꾸밀 수 있지만 그 당시 허용된 꾸밈은 ‘월페이퍼’뿐이고, 지금도 그렇지만 아이폰의 시스템 폰트나 아이콘 등의 변경은 허용되지 않는다. 반면에 안드로이드 폰의 경우 런쳐 앱을 설치하여 디자인의 다양한 변화를 시도할 수 있는데, 처음에는 좀 흥미로워서 이것저것 디자인을 바꿔보았다. 그런데  중간중간에 순정 UI들이 보이기도 하고, 뭔가 억지로 옷을 입힌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정말 최악이었던 것은 알림이 오면 아이콘들이 막 위에 조그마하게 표시되는데 너무 싫었다. 많은 정보들을 보여주진 못하지만 보기엔 갈끔함을 유지하는 아이폰 UI가 그리웠다.


2. 4:3 비율의 스마트폰... 손목이 너무 아픔 

가장 불편했던 것은 다름 아닌 손목이었다. 4:3 비율의 뚱뚱이 디스플레이다 보니, 그립감이 정말 너무 좋지 않았다. 처음에는 손목이 너무 아파서 입사한 후 일을 너무 열심히 해서 손목에 터널 증후군이 왔는가?라고 생각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뷰 폰 때문인 것을 확신했다. 한 손으로 쥐기엔 너무 불편하고 두 손으로 쥐어 쿼티자판을 터치할 때도 손목이 너무 아픈 기억이다. 


3. 쓰면 쓸수록 부족한 감성

가장 불편했던 점이라면 정말 쓰면 쓸수록 부족한 감성이었다. 안드로이드를 경험하며 그동안 몰랐던  아이폰의 엄청난 UX설계를 감탄하게 되었다. 안드로이드를 쓰면 쓸수록 아이폰이 그리워졌다. 아이폰 UI와 비슷하게 하려는 시도들은 많았는데, 하드웨어적으로 무언가 느리거나, 사용자가 수행하는 포퍼먼스를 받쳐주지 못하는 게 체감이 너무 잘돼서 굉장한 불편함이 있었다. 


아... 한 가지 더 꼽자면, 휴대폰 뒤판에 왜 그렇게 U+ LTE 로고가 크게 붙어있었던지 그것은 볼 때마다 극혐이었다.

 

위와 같이 이런저런 안드로이드로 인한 스트레스가 쌓여갈 때 즈음, (아마 딱 4개월 정도 썼을 때였다.) 술을 진탕 먹고 택시를 탔던 적이 있다. 택시를 타고 집에 왔는데 웬걸 아침에 일어났더니 내 폰이 사라졌다. 아직 약정기간이 1년 8개월이 남은 상황... 나는 왠지 그 폰을 찾으려는 노력조차 시도하지 않았다. 내가 탑승한 택시회사를 수소문해서 폰을 찾아보았을 법한데도 나는 그냥 그 폰을 포기했다. 그리고 바로 아이폰5s를 개통했다. 동기들은 일부러 안드로이드폰을 잃어버린 것 아니냐는 조롱도 있었는데 나는 결사코 그런 건 아니라고 사실을 부인했다. 


 아이폰5s를 개통하고, 1주일 정도 지났을 때 살고 있던 원룸을 대청소를 했다. 원래 이렇게 디테일하게 청소하진 않았는데 침대 옆에 협탁을 치워서 청소하는데 정말 나의 첫 번째이자 마지막 안드로이드폰인 뷰 2가 그 짧은 사이 먼지를 뒤집어쓴 채로 발견되었다. 




덧 - 나와 엘사 폰의 추억


 나의 첫 폰은 고등학교 2학년 때 누나가 사준 엘사의 휘파람 폰이었다. 광고도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 게 모델이 들판에 그냥 누워서 16화음의 휘파람을 부는 벨소리를 BGM으로 사용한 매우 파격적인 시도를 한 폰이었다. 물론... 배터리가 미친 듯이 빨리 닳아서 완충하고 학교에 가져가도 점심시간을 넘기긴 힘들었지만, 당시에는 매우 예쁘게 잘 쓴 폰이었다. 그리고 대학교에 들어갔을 때 초콜릿폰, 샤인폰, 뷰티폰, 시크릿폰 등 엘사 폰은 정말 혁신의 아이콘이었고, 친구들도 많이 사용했던 기억이다. 이런 나와 엘사 폰의 추억은 엘사 입사지원서에서도 쓸 정도로 나에겐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문제는 모두가 아는 스마트폰부터였다. 엘사 스마트폰 전략은 ‘경쟁사보다 특이하게’였던 것 같다. 다른 제조사들은 16:9 비율로 폰을 출시할 때 4:3을 만들었고, 잠금 해제로 손가락 지문 모듈을 많이 쓸 때 이걸 노크온이라는 유엑스로 풀어 탑재하기도 했고, 스마트폰 커버를 플라스틱에서 강화유리 바꿀 때 가죽이라는 질감을 선택하기도 했고, 모듈형 스마트폰을 제안하기도 했으며, 가장 마지막에는… 디스플레이를 회전시키는 특이함을 보였었다. 여러 가지의 참신한 시도들은 좋았을지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한 점은 참 아쉬운 포인트다. 언제부터인가 매 분기마다 뉴스에서는 모바일 사업부가 적자이며, 곧 적자를 탈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소식이 반복되어 나왔다.


결국 엘사는 2021년 모바일 사업에서 완전히 철수했다. 엘사의 그래픽을 담당하는 디자이너로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디자인을 보여줄 수 있는 디바이스가 사라져 버려 매우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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