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미정 (2)
그림자를 처음 만나게 된 것은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던 2016년 9월, 싱가포르 여행에서였다.
1년 내내 고온 다습한 열대성 기후탓에
햇볕은 쉽게 화를 누그러트리지 못했고,
그 화를 받아낸 나무의, 식물의, 사람의 뒷면엔
조용히 서성이는 검은 그늘이 졌다.
사실 그림자는 늘 곁에 있었다.
하지만 정말 신기하게도,
그동안 눈은 그림자를 보지 못하고 있었다.
더욱 빛나는 것만,
아름다운 것만, 반짝이는 것만을 찾다보니
일상 속 조용히 뒷바라지 해주는
소중한 것을 잊고 지냈다.
그 어느 것보다 흔하디 흔하지만,
자세히 바라보면 세심하게 만들어진 빛의 예술.
가장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작품을 두고,
나는 지금껏 어느 먼곳만을 바라보아 왔던 걸까.
사진찍는 것을 좋아하는 나지만,
나의 모습이 카메라의 렌즈에 찍히는 것은
여전히 낯설기만 하다.
그럴때 그림자의 힘은 매우 크다.
눈, 코, 입 얼굴의 모습은 신경쓰지 않아도 되며,
그저 함께 빛을 바라보며 손만 뻗으면 된다.
그림자, 물체가 빛을 가려서 그 물체의 뒷면에 드리워지는 검은 그늘.
빛만 있으면 어디에서든 만날 수 있어 다행이다.
그림자를 만나고 난 뒤
감성이 필요할 땐 저 멀리 미술관을 가지 않아도
예술작품을 관람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감정을 숨기고 플 땐
슬그머니 들어가 버리면 그만이다.
그것이 사랑이든, 슬픔이든, 수줍음이든,
무엇이든.
안녕하세요. 광고를 전공하고 있는 4학년 대학생입니다. 여행과 사진찍기, 캘리그라피 쓰는 것을 좋아하지만 오래 전부터 글을 꾸준히 쓰는 것을 소원하고 있었습니다. 어설프게 나마, 주제 없이 머릿 속 생각을 그려보려 합니다. 주제가 없는 것이 내 인생이기에, 글 또한 주제가 없어도 '이 사람의 인생이구나' 해주십시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