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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 포토?” 사진 한 장?

사진을 좋아하는 나라, 그리고 사람들

by jinkyoung

인도 여행이 결정되고 나서 가이드북을 구매하고, 인도 관련 서적을 읽고, 인도 여행 커뮤니티를 들락거리며 나를 설레게 했던 것은 관광지도, 값싸지만 맛있다는 음식도 아닌, 사람들이었다.


인도 여행을 간다고 하니 주변 사람들의 대부분의 반응은 위험하다며 조심하는 말이 많았다. 하지만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은 그런 말을 해봤자 나는 떠날 것이라는 것을 잘 알기에, 조심히 다녀오라는 말과 함께 그저 묵묵히 나를 믿는다는 시그널을 보냈다.


사람들이 말하는 위험하다는 것은 ‘사람들’이었다. 여성의 치안이 바닥이라는 것, 성추행이 빈번하며 대도시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소매치기와 같은 것들은 사람들의 행동에 기반되어 있는 것이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여행하는 내내 가방과 주머니를 사수하느라 애를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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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떠나는 배낭여행, 큰 카메라를 들고 다녔어야 했기 때문에 카메라 가방이 필요했다. 한 번도 사용해보지 않은 가방은 어색하기 짝이 없어 소지품을 꺼낼 일이 있으면 진땀이 흐르곤 했다. 잠깐 가방이라도 열 일이 생기면 사람이 없는 구석으로 가서 주변을 경계한 채로 가방을 뒤지곤 했다. 평상시 여행스타일대로였다면 나는 분명히 카메라를 가방에 넣는 일은 하지 않았을 거다. 길거리부터 사람들의 모습, 사물, 먹는 음식들 등등 누구나 찍는 스폿의 사진이 아닌 나만의 감성을 담은 사진을 찍고 싶었다. 언제 어디서 그 사소함을 발견할지는 아무도 모르고, 놓치기 않기 위해 카메라는 늘 목에 걸려있었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달랐다. 인도에 도착한 초반에는 사람을 믿지 못하여 카메라를 꺼내지 못했다. 빈부격차가 상당한 인도에서 카메라는 상당히 비싼 물품이다. 카메라를 꺼내면 많은 눈동자들이 나에게 꽂혔고, 나는 이들의 눈빛을 경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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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방을 여는 순간, 소매치기가 와서 가방을 쓱하면 어떡하지?

카메라를 정리할 때, 카메라를 들고 도망가면 어떡하지?



별의별 생각으로 마음의 문이 닫혀 갈 때쯤, 델리에서 열린 한 축제를 구경하게 되었다. 아직까지도 그 행사의 주요 명칭을 알 수 없으나 커다란 북소리에 맞춰 무술 동작을 보이는 공연이었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모였고, 도로 중간의 둔턱에서 멀리 선채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 무술팀에서 새로운 공연이 시작되었는데, 그 무술 단원중 가장 최고령인 할아버지와 가장 어린 꼬마 단원의 대결이었다. 할아버지는 아이에게 도망가고, 아이는 할아버지 뒤를 쫓아 나름의 고무 검으로 찌르고 하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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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엄청난 귀여움에 나와 고니 언니는 축제 현장으로 뛰어들게 되었다. 이때부터 시작된 사진 촬영은 무술단원들의 단체 촬영부터 생동감 넘치는 모습과 그 축제를 즐기는 모든 사람들까지 담아낼 수 있었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한 여자아이가 뛰어와 다 함께 찍어달라는 표시를 했고, 카메라를 들자 모두가 웃어 보였다. 뿐만 아니라 한 무술단원의 가족들도 자신의 아이를 번쩍 들어 인사하며 사진을 찍는 것에 긍정적이었다. 서로가 함께 춤을 추다가 사진을 찍고, 서로에게 엄지손가락을 추켜 세워 주며 웃었다.


_MG_5969.jpg 아이를 들고 사진기를 향해 웃어주는 사람들
_MG_5996.jpg 저기보고, 스마일!
_MG_6007.jpg 따봉 해주는 아저씨와 시선 강탈인 차 안의 아저씨


이 날 이후로 나는 인도 사람들에 대한 색안경을 벗을 수 있게 되었다. 카메라를 바라보던 그 큰 두 눈동자가 의미하는 것은 사실은 카메라를 훔치려는 것이 아닌, 낯선 동양인에 대한 호기심과 더불어 사진을 좋아하는 그들의 수신호라는 것을 알았다. 그 날 이후로부터는 먼저 다가가 ‘사진 한 장?’이라는 뜻인 ‘엑 포토?’ 하고 물으며 허락을 받고 그들의 사진을 담았다. 언어로 통하진 않더라도 사진을 찍는 사람이나, 찍히는 사람 모두 약속이나 한 것 마냥 엄지를 척하고 내밀며 서로에 대해 감사를 표현하곤 했다.


_MG_5103.jpg 걸어가는 동안 끝까지 뒤돌아보며 웃어주던 청년
_MG_5579.jpg 카메라를 들고 서 있으니 우르르 몰려드는 여학생들
_MG_5852.jpg 따봉. 그 알록달록한 터번 멋져요!
_MG_5865.jpg 엑 포토? 한 마디에 휙! 돌아봐주신 멋쟁이 할아버지들 :)
_MG_7331.jpg 먼저 나를 툭툭 건들어, 사진 찍어달라고 한 가족무리.

어느 순간 우리 모두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됐다. 무엇이 이렇게 만들었는지 단 하나의 말로 규정지을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인도에서는 사람을 믿어보려고 순간순간 노력했고, 그 덕에 단지 시끄럽고 위험하며, 지저분한 인디아로 남을 뻔했던 인식이 ‘사람 냄새나는 따스한 인디아’로 바뀌었달까.


당장은 앞으로 몇 년 안에 인도를 또 방문하겠다고 말은 못 하겠으나, 사람이 그리울 때 다시 찾지 않을까. 그때도 가서 물어봐야지.


"엑 포토?"





안녕하세요, 진경입니다.

브런치에는 목적에 맞게 인도에서 느낀 여러 감정들을 풀어내는 글 위주로 작성할 계획입니다.

그 외의 정보성 글은 블로그에, 사진 감상은 인스타그램 및 폴라에 업로드할 것입니다.

인도 여행을 준비하는 분이나 혹은 언젠가 떠나실 분들께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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