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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서기의 연속, 기다림의 미학

인도여행의 시작, 환전

by jinkyoung

인도에 입국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경로가 있지만, 첫 인도여행을 위해 대부분의 여행자가 향하는 곳은 델리공항이 아닐까? 인도 북부 여행지, 골든 트라이앵글로 잘 알려진 ‘델리-아그라-자이푸르’ 코스로 가기 위한 첫 발걸음은 바로 이곳이기에 많은 여행객들이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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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델리에 도착한 시각은 새벽 한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아시아나 직항을 타고 가면 대게는 그 시간에 도착하곤 한다. 비행기에서 내려 입국심사를 위해 걸어가는 동안 정말 인도에 도착했는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무리 봐도 공항은 그저 공항이다. 깔끔한 이미지가 인도인지는 모르겠으나, 함께 입국을 위해 걸어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공항 화장실에 붙여있는 인도인의 사진을 보니 대충 인도라는 것은 실감한다.


이미 한차례 인도여행 카페에서 입국심사에 관한 글을 읽었던 지라 생각보다 떨리지 않는다. 아무렇지 않게 걸어가고, 아무렇지 않게 공항의 사진을 찍고, 아무렇지 않게 입국심사를 받기 위해 줄을 섰다. 아무말 없이 내 얼굴 한번 바라보고, 손가락 지문 찍고 하니 끝났단다. ‘오, 역시 선행학습의 힘인가?’ 생각하는 찰나에 나는 입국심사줄에 서 있었고 '왜 안나가고 입국심사 받고있니?' 라는 말과 함께 쪽문으로 기어서 퇴장했다고 한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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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내가 인도에 방문했을 당시에는 어마어마한 화폐개혁으로 돈찾기가 하늘의 별따기 수준이었다. (글을 쓰는 지금쯤이면 얼마나 개선되었을지, 혹은 그대로 일지는 잘 모르겠다만.) 인도의 구권인 500루피와 1000루피가 단숨에 필요 없는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었고 인도인들은 그 구권을 신권으로 바꾸기 위해 매일같이 atm과 은행앞에 하루종일 줄을 서 기다릴 뿐이었다. 외국인이라고 그 시련을 겪지 않을 순 없었다. 시내로 나가서 돈을 환전하기에는 사설 환전소의 상황은 좋지 않기에 공항에서 달러와 루피를 바꾸려 마음 먹었다. 이 생각은 모두가 같았는지 공항 내에 환전소에는 그 새벽녘에도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안그래도 공항에서 노숙할 생각이었는데 기왕 잘되었다 생각하고 줄을 기다리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줄은 줄지가 않는다. 아, 정말 인도구나. 느림의 미학이라고 말만 들었지, 직접 와서 겪어보니 상당히 피곤한 일이었다. 도저히 내 입에서 괜찮다는 말이 나올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결국엔 배낭도 내려놓고 바닥에 앉아 꾸벅꾸벅 졸며 내 차례가 오기를 기다렸다.




" 환전하는데만 몇 시간이 걸린다. 너무 잠이와서 잠을 깨보고자 캘리그라피를 했다. 그래도 여전히 잠은 안깬다. 인도는 정말 듣던대로 늦어터졌다. 괜히 인도에 가면 예술성이 갑자기 발휘되는 것이 아니라, 너무 여유롭고 느린탓에 생각할 시간이 넘쳐 특유의 인도영화가 나오는게 아닌가 싶다. … 글쓰는데 약 30분의 시간이 걸렸는데 여전히 대기중이다. 총 4시간째 기다리는 중. 정말 인도구나. 실감한다. "

- 12월 1일 새벽 4시 43분. 인디라 간디 국제공항에서 쓴 일기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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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같은 상황일 것이다. 피곤하고 예민한 상태에, 환전 줄은 줄어들지도 않고 배는 고파오고 말이다. 와중에 한 외국인이 새치기를 시도했다. 평상시였으면 한마디 딱 할텐데 정말 그 한마디 할 기운조차 없어서 말없이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 때 내 뒤에 서계신 영국인 할아버지가 그들을 향해 외쳤다. “ 정당히 줄을 서세요! 다들 오랫동안 기다렸는데 뭐하는 짓입니까? ” 캬, 외국에서 처음으로 맛본 사이다발언이다. 우리 줄에 서있는 모든 사람들은모두 옳소! 하며, 그 외국인에게 눈빛공격을 해대었다. 영어를 못 알아듣는 척하며 끈질기게 줄을 서던 그 외국인은 결국 다른 환전소를 찾아 떠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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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뿐만이 아니다. 인도인들도 새치기에는 용납하지 않고 날렵하게 반응한다. 델리에서 가까스로 바꾼 ‘루피’는 여행한 지 약 5일만에 거의 다 쓰고야 말았다. 고니언니와 난, 길거리의 은행과 atm기에 온갖 시선이 집중되어 있었다. 은행과 atm기가 있다고 해서 그 곳에서 무조건 돈을 뽑으리라는 법은 없다. 그 은행에 돈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인데, 돈이 있는지의 여부는 길게 줄을 서 있는 인도인들을 보면 알 수 있었다. 보통은 줄이 길게 서있다면 90퍼센트의 높은 확률로 장담하건대, 남자일 확률이 높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듯, 인도에서 여자의 사회적 활동은 아직 우리나라만큼 발달되어 있지 않다.

인도에서의 남자와 여자의 구분은 매우 엄격하게 이뤄지고, 그것은 줄을 설 때도 적용된다. 관광지에서 입장할 때도 남자와 여자로 나뉘고, 은행에서 기다리는 줄도 남자와 여자 두 줄로 대기해야 한다. 인도에서의 여성의 인권이 취약한 것은 사실이나, 인도남성은 여자를 ‘약한 존재’로 인지하기 때문에 레이디 퍼스트가 몸에 베어있다. 여자의 인권은 무시하면서 나름의 배려를 한다는 아이러니랄까?


여튼 그 덕에 여자줄에 서서 돈을 인출하기 위해 약 1시간을 기다렸다. 남자 3명, 그리고 여자 1명 이런순으로 입장하게 되며 그 누구라도 갑자기 새치기를 하기 위해 달려든다거나 생떼를 부리면 인도남성들의 뭇매를 맞게 될 것이다. 실제로 그 광경을 눈앞에서 보고 새치기 당할일은 없겠거니싶어 든든함을 느꼈고 동시에 ‘까불어선 안되겠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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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인도는 화폐개혁으로 몸살을 앓는 중이다. 여행성수기가 시작되는 요즘, 인도로 떠나는 많은 여행객은 골치아파했고, 이 일로 인도여행을 취소한 사람도 상당하다. 하지만 이런 이유로 인도를 욕하지 않았으면 한다. 인도의 화폐개혁은 구권의 블랙머니로 인하여 더욱 커지는 빈부격차를 줄이기 위함이니까. 인구도 많고, 땅도 넓은 인도에서 급작스런 화폐개혁은 물론 인도인에게도 어려운 일이고 힘든 일일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작은 불씨의 희망을 가지고 은행의 atm기로 향해 줄을 서있을것이다.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날도.




안녕하세요, 진경입니다.

브런치에는 목적에 맞게 인도에서 느낀 여러 감정들을 풀어내는 글 위주로 작성할 계획입니다.

그 외의 정보성 글은 블로그에, 사진 감상은 인스타그램 및 폴라에 업로드 할 것입니다.

인도여행을 준비하는 분이나 혹은 언젠가 떠나실 분들께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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