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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의 시간 Jun 02. 2020

[여성독립영화 리뷰] 아워 바디

달리기를 통해 자기다움을 찾아가는 여정

*스포가 있으니 유의해주세요.


영화의 주인공 자영은 31살의 8년 차 행시 고시생이다. 영화 초반부 자영은 몸이 축 늘어져있고 얼굴에 생기가 없다. 습관처럼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지만 행시 공부는 그녀에게 꿈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기보다는 권태로운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무려 8년째 같은 공부를 하고 있다. 그러한 권태로움의 끝에 그녀는 더 이상 시험을 보지 않기로 다짐하고, 이를 어머니와 여동생과의 식사 자리에서 말하게 된다. 그러자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가 먹던 밥그릇을 들어 싱크대에 담가버리고는 밥을 먹지 말라고 한다. 어머니에게 거부당한 그녀는 담담하게 어머니의 집을 나선다.


어머니가 그녀에게 그녀의 '쓸모없음'을 내비치듯, 그녀 역시도 스스로를 '쓸모없다'라고 여긴다. 그런 그녀에게 우연히 나타난 현주. 현주를 통해 그녀는 막연히 현주처럼 달리기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는 현주와 친구가 되어 같이 달리기 시작한다. 그때부터 자영은 변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변화는 점점 근육이 붙고 건강해지는 몸과 점차 또렷해지는 얼굴 표정뿐만 아니라 옷차림에서도 드러난다. 달리기 초반, 추레한 운동복과 운동화를 착용했던 그녀는 몸매가 드러나는 운동복과 세련된 운동화로 점차 스타일도 바꿔간다. 이제 그녀의 일상이 권태로움 대신 꿈틀거림으로 바뀌게 된다.  


영화는 전반에 걸쳐 그녀가 자신의 욕망을 어떻게 찾아가는지 그 과정을 그려간다. 마치 자영의 '자영다움'의 여정을 그렸다고나 할까.


영화 초반 그녀는  행시라는 인생 대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다른 모든 욕구들을 거세당한 채 살아간다. 남자친구와의 성관계 장면에서도 그녀는 무표정하고 가족들과의 식사 자리에서도 그녀는 밥을 먹어야 해서 먹는다. 그렇다면 그녀가 8년을 바쳤던 행시는 그녀가 원하는 것이었을까? 처음 그녀가 행시 준비를 시작했던 때의 이야기는 모르지만, 영화 후반에서 그녀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계속해서 행시를 공부하라고 닦달하는 그녀의 어머니를 보면 아마 행시 역시도 어머니, 혹은 사회가 부여한 목표였을 것이다.


어머니의 바람이었던 행시를 그만두고 현주를 따라 운동을 하면서 그녀는 자발적으로 현주처럼 되고 싶음을 욕망한다. 그래서 달리기를 하고 그녀처럼 운동복을 차려입는다. 나이 많은 남자와의 잠자리 역시 현주의 섹스 판타지였다.


현주의 죽음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그녀는 이제 자신의 욕구를 알아가기 시작한다. 극 중 현주의 죽음은 현주와 이별함으로써 자영이 '현주처럼'에서 벗어나 '자영다움'에 대해 들여다보도록 하는 장치가 아니었을까. 영화는 자영 그녀 자신의 판타지였던 고급 호텔에서의 하루를 실행하는 자영이를 통해 그 욕구의 시작을 알리며 끝이 난다.


아마 이 영화를 아직 보지 않은 이들은 그녀가 어떤 직업을 얻게 되었을지도 궁금해할 것이다. 영화는 자영이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의 도움으로 알바를 하고 인턴을 구하고 정직원 과정을 준비하는 과정도 다룬다. 하지만

영화는 정직원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자영의 모습보다는 생계를 위해 돈은 벌되 일보다는 삶에 비중을 더 두는 자영을 그린다. 이는 30대에 정규직을 얻을 수는 없을 거라는 그녀의 현실적 판단도 있었겠지만, 그녀에게 일보다는 내가 누군지 알아야겠다는 그녀 스스로의 자아 찾기가 더 중요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이 영화는 평이 극과 극으로 나뉜다. 부정적인 평이 꽤 나왔던 이유는 아마 편집을 이상하게 한 예고편 때문이었으리라. 예고편은 마치 8년 행시를 공부한 사회의 실패자의 고난 극복기를 보여줄 것처럼 메시지를 던진다. 그래서 예고편을 본 이들은 주인공이 달리기를 통해 이 시련을 극복하고 어떻게 새로운 꿈을 찾고 그것을 이뤄갈지에 대해 희망을 기대하게 된다. 하지만 이 영화는 고난 극복기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고 오히려 욕구가 거세된 한 개인이 달리기를 통해, 그리고 달리기를 통해 만난 현주라는 인물을 통해 어떻게 자신의 욕구를 알아가는지, 즉 '자기다움'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나 역시 묻게 된다. '나는 나다워지고 있는가'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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