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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의 시간 Jun 04. 2020

[여성독립영화 리뷰] 보희와 녹양

한번뿐인 내 소중한 인생, '씩씩하게, 맑게, 자신있게'

*스포가 있으니 유의해주세요.


같은 날 같은 산부인과에서 태어난 보희와 녹양, 이 둘의 성장기를 다룬 영화.

보희는 소심하고 세심한 14살 남자아이로 미용실을 운영하는 엄마와 둘이 산다. 녹양은 당차고 쾌활한 14살 여자아이로 쾌활한 할머니, 그리고 조용한 아버지와 셋이 산다. 보희와 녹양은 같은 반 친구로 매일 같이 붙어 다니는 절친이다.


영화의 주요 줄거리는 보희의 아빠 찾기 여정이다. 평소 엄마는 보희에게 보희가 어렸을 때 아빠가 돌아가셨다고 얘기해주었지만 보희는 그 말이 영 미심쩍었고 왠지 아빠가 살아있을 거라는 느낌을 받는다. 어느 날 보희는 엄마에게 남자 친구가 생기자 불안한 마음에 녹양과 함께 아빠를 찾으러 나선다. 처음에는 배다른 누나인 줄 알았던 사람을 찾아가 그가 배다른 누나가 아닌 사촌누나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는 사촌누나와 아버지가 주고받은 편지봉투의 주소를 확인하고는 그 주소로 아빠를 찾아 나선다. 그렇게 꼬리에 꼬리를 문 추적이 영화 전반을 이끌어간다. 그리고 영화 말미에 마침내 보희는 아빠를 찾아낸다. 하지만 이내 아빠에게 사랑하는 남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보희는 아빠 찾기를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는 시간이 흘러 자신의 생일에 집에서 엄마와 사촌누나(남희), 사촌누나의 남자 친구(성욱), 그리고 녹양과 생일파티를 하며 영화는 끝이 난다.


이 영화의 관전 포인트는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영화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 대해 물음표를 던진다. 특히 아시아권에서는 혈연에 기반한 가족 관계를 강조하면서, 남자인 생물학적 아빠와 여자인 생물학적 엄마, 그리고 아이로 구성된 가족을 정상가족이라고 규정하고 거기에 벗어나 있는 가족 형태에 대해 미완성의 형태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영화에서 아빠 없는 보희, 그리고 엄마가 없는 녹양은 반 친구에게 '고아 새끼들'이라는 놀림을 받는다. 그리고 사촌누나인 남희는 성욱과 부부관계가 아닌 동거를 한다. 영화에서 나온 유일한 '정상가족'은 보희를 괴롭히는 반 친구인 승현의 가족뿐이다. 남자인 아빠와 여자인 엄마, 그리고 아이로 구성된 게다가 돈까지 많은 이 가족, 그러나 친구에게 '고아 새끼'라고 놀리는 승현의 인격을 보면서 '아 저게 정상가족인가?'라는 의문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영화는 나아가 보희의 사촌누나인 남희의 남자 친구인 성욱과 보희의 연대, 그리고 녹양과의 우정을 통해 확장된 형태의 가족을 제시한다. 특히나 성욱과 보희의 연대는 꽤나 인상적이다. 성욱은 처음에는 보희에게 까칠했지만 서로 시간을 보내면서 보희를 목욕탕에 데려가 때를 밀어주기도 하고, 보희가 승현의 집에 사과하러 갈 때 같이 가서 힘이 되어주기도 한다. 그러면서 아빠의 부재로 외로움을 느꼈던 보희에게 '제3의 어른'으로서의 역할을 해준다. 부모처럼 권위적이지도 않으면서 그러나 한 아이를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해주는 그런 어른 말이다.


둘째로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편견에 너무 젖어있지 않는지를 되돌아보게 한다.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도 하나의 편견일 수 있으며, 그 외에도 감독은 여러 가지 장치를 통해 관객 스스로 갖고 있는 편견에 흠칫 놀라게 한다. 예를 들어 영화 포스터를 보면 '보희와 녹양'이라는 제목으로 여자아이가 왼쪽에 남자아이가 오른쪽에 놓여있다. 이름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로 관객은 보희가 여자아이이고 녹양이 남자아이일 것이라고 지레짐작한다. 그러나 영화가 시작되면 우리는 보희가 남자아이이고, 녹양이 여자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적극적이고 쾌활한 녹양이, 소심한 보희를 통해 우리도 모르게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는 게 아닌지 자문하게 한다. 또한 문신에 거친 말투로 거부감을 느끼게 한 성욱 역시, 보희와 시간을 보내면서 그 누구보다 따뜻한 제3의 어른 역할을 한다. 특히 보희를 돕기 위해 기꺼이 보희의 엄마 미용실에서 파마를 하며 보희 아빠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에서 처음 울그락불그락한 외모로 가졌던 편견이 사르르 녹는다.


마지막 관전 포인트는 녹양이다. 영화는 녹양을 통해 인생을 살아가는 자세에 대해 이야기한다. 녹양은 마치 영화에서 보희를 서포트하는 보조적인 역할로 비칠 수 있지만, 실은 영화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보여주는 역할이라 할 수 있다. 이는 극 중에서 보희가 녹양이처럼 되고 싶다고 말한 부분에서도 유추를 할 수 있다. 녹양은 엄마를 본 적이 없는 채로 자랐기 때문에 관객들은 무언가 결핍이 되어있고 위축되어 있을 거라는 편견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녹양(Sun Green)은 이름처럼 밝고 쾌활한 인물로 그려진다. 녹양은 자기가 하고 싶어서 다큐멘터리 영화를 찍고, 보희의 아빠 찾기 프로젝트를 자발적으로 돕는 주체적인 인물이다. 보희를 주인공으로 하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찍는 녹양에게 누군가 '(학생이 공부 안 하고) 그걸 왜 하고 있어? (영화감독이 될 거니?)'라고 하면 '꼭 뭐가 돼야 돼요?'라고 자신의 생각을 주저 없이 말하는 녹양. 놀리는 아이들에게 '너 아가리 찢어버리기 전에 그 말 취소해라!'라고 말할 수 있는 녹양. 엄마 같았던 할머니의 죽음 앞에서 슬퍼하지만 이내 슬픔을 딛고 일어나는 녹양.  


이런 녹양을 통해 영화는 관객들에게 말한다. 무언가 세상이 보기에 부족해 보여도 그런 편견에 기죽지 말라고. '정상가족'이 아니라고 혹은 돈이 없다고 아님 배운 게 없다고 여러 가지 이유로 세상이 손가락질해도 단 한 번뿐인 내 소중한 인생, 녹양이처럼 '씩씩하게, 맑게, 자신있게' 살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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