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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선미 Sep 15. 2023

어떤 결핍

생일에 관하여

생일에 관한 결핍

 내가 기억하는 첫 번째 생일은 퍽 쓸쓸했다. 여섯 살 생일이었다. 2살 터울의 오빠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부모님은 영어에 대한 필요성을 느꼈는지, 잘 다니던 유치원을 그만두고 갑자기 영어유치원으로 옮기게 되었다. '사브리나'라는 어울리지도 않는 이름을 받아서 들어간 유치원에서 나는 이방인이었다. 다른 친구들은 이미 영어를 술술 말하는데 나는 아니었다. 혼자 알파벳부터 시작해야 했고 내 서툰 발음을 들은 아이들의 눈빛은 나를 점점 더 위축시켰다. ‘쟤는 여기 다니면서 왜 이런 것도 못 해?’하는 눈빛. 그 나이 대 아이들이 당연히 그러하듯, 마음을 숨길 줄 모르기에 내뱉는 상처가 되는 말들. “선생님, 쟤는 왜 갑자기 여기 왔어요?”, “선생님, 쟤 발음 이상해요”하는 말들에 속수무책으로 내던져질 수밖에 없었다.


 부모님은 새로 간 유치원에서 딸이 적응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집에서 생일 파티를 준비해 유치원에 초대장을 돌렸다. 엄마는 김밥을 열심히 말았고 햄버거와 치킨, 피자를 시켜 테이블을 가득 채웠다. 나는 가장 좋아하는 과자를 사고 비디오방에서 만화영화를 빌려 왔다. 파티에 와 줄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 전날 밤 가족들이 함께 포장해 둔 선물도 쌓여 있었다. 그 선물은 비눗방울, 호루라기 같은 것들이었다. 6살 눈높이에 적당한 선물.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갖춘 채 친구들을 기다렸다. 우리가 열심히 준비했던 생일 파티에는 딱 한 명이 왔다. 말도 잘 섞지 못해 낯설기만 했던 유치원에서 처음으로 말을 건네준 케빈이었다. 기다림에 지쳐 있던 나는 누군가 왔다는 사실에 신나 하며 케빈을 반겼다. 케빈의 손을 잡고 집안 곳곳을 구경시켜 줬다. 안방부터 화장실까지. 준비해 두었던 음식을 함께 먹고 만화영화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선물을 한 아름 안은 케빈이 돌아간 후 그 많은 음식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생일 이후에 유치원에서 어떻게 지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단지 기억하는 건 그날 이후 우리 집에서 생일 파티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성대하게 열어 준 생일 파티에 한 명만 왔다는 사실이 민망해서 따위의 이유는 아니었다. 그다음 해 부모님은 이혼을 했으며 오빠와 나는 친척들 집을 오가며 살게 되었고 그 집에서 우리의 탄생을 축하해 주는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 머물렀던 친척 집에서는 부모님의 이혼으로 고아원에 갈 뻔했던 오빠와 내가 본인들 덕분에 이 집에 머물고 있는 거라는 말도 들었다. 태어남을 축하받는 일은 그렇게 어려운 것이 됐다. 가족들에게 받지 못하는 축하를 친구들에게라도 받을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내 생일은 하필이면 3월이라 새 학기가 시작된 후 반 아이들과 본격적으로 친해지기도 전에 생일이 지나가버리기 일쑤였다. 해가 바뀌면서 작년에 친했던 친구들에게 간혹 생일 축하를 받긴 했지만 그마저도 잦은 이사로 인해 금방 사라져 버렸다. 그렇게 생일에 대한 결핍은 해소되지 못한 채 매년 차곡차곡 쌓이기만 했다.


 부모님이 각자의 삶에 안정을 찾았을 무렵, 나는 엄마와 오빠는 아빠와 살게 되면서 친척 집을 전전하던 생활도 끝이 났다. 그렇게 이사를 가거나 전학 가는 일이 사라지니 하나 둘, 꾸준히 연락하는 친구가 생기면서 친구들과 서로의 생일을 축하하고 축하받을 수 있었다. 마음을 나눈 친구들과 서로의 탄생을 축하하는 일은 너무 즐거워서 나는 생일에 애착을 가졌다. 매달 27일마다 친구들에게 내 생일이 몇 개월 뒤인지를 꼭 알렸고, 3시 27분마다 메시지를 보내며 '선미 시'를 강조했다. 3월은 한 달 내내 디데이를 셌다. 그만큼 주변 사람들이 내 생일을 기억하고 축하해 주었으면 했다. 어릴 적 아무도 축하해 주지 않은 게 너무 서러웠으니 이제라도 원 없이 축하받고 싶었다. 나는 왜 태어난 걸까 생각할 필요 없이, 내가 이곳에 필요한 사람일까 하는 의심 없이, 내 쓸모를 찾는 데 눈에 불 켤 필요 없이. 그저 축하받을 수 있는 날이 너무 기뻤다.


 왜, 그런 사람들 있지 않은가. 어릴 적 카레에 들어간 고기가 너무 적은 게 서러워서 다 커서는 큼직한 스테이크 고기가 들어간 카레를 직접 만들어 먹는 사람. 어릴 때 부모님이 사주지 않았던 장난감이 여전히 갖고 싶어서 장난감을 수집하는 사람. 생각해 보면 사람들은 각자가 가진 결핍을 나름의 방법으로 해소하곤 한다. 나처럼 악착같이 생일을 챙기는 방식으로든 본인 나름의 방법으로든. 그래서 나는 무언가에 집착하거나 다른 사람들보다 한 뼘 더 깊이 들어가고 있는 상황에 있는 사람을 발견할 때면, 저 사람은 어떤 결핍을 해소하고 있는 걸까 궁금해진다. 당신은 무엇에 집착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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