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칼국수가 만 원입니다
서울 물가에 놀란 사회초년생의 서울 적응기
점심 값 1만 원. 평일 한정으로 정한 점심 식대다. 월급에서 차감되며 다음 날로 이월도 가능하기 때문에 며칠 편의점 음식을 먹으며 야금야금 모았다가 한 번에 빵! 쓸 수도 있다. 점심 식대 1만 원에 커피 값은 포함되지 않는다. 우리 회사는 인사동에 있는데, 관광지로 유명한 동네답게 출퇴근할 때마다 한복을 입고 돌아다니며 카메라를 찰칵거리는 외국인을 쉽게 볼 수 있다. 관광객이 많은 동네는 식당들이 담합이라도 한 건지 1인분에 1만 원 이하로 내려가는 메뉴가 잘 없어서 식대가 초과되는 날이 빈번하다. 고물가 동네이기에 커피 값은 당연히 식대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밥값과 간식비는 따로. 커피 한 잔 마시려면 4천 원은 필요한데 식비에 이 돈을 포함하는 건 너무 가혹한 일이라 간식은 포함시키지 않기로 했다. 대신 커피를 포함한 간식을 사 먹는 일은 회사에서 칭찬을 듣거나 야근할 때만 포상처럼 허락하기로 통장과 합의를 봤다.
내가 고향인 울산을 떠나 서울로 올라온 이후 가장 놀랐던 점은 칼국수 한 그릇에 1만 원씩 한다는 사실이었다. ‘울산도 물가가 그리 싼 편은 아니었는데’, ’칼국수가 아무리 비싸도 8천 원이었는데‘ 하는 생각을 한 달 내내 했다. 그도 그럴 게, 상경한 이유가 정규직 취업으로 당당히 올라온 게 아니라, ‘인턴’ 일을 하기 위해 올라왔었기 때문이다. 딱 최저 임금 수준의 월급이었지만 서울에 내 자리가 있다는 사실이 벅차서 월급 따위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정해진 바 없이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불안정한 비정규직이었으나 취업 준비할 당시에는 코로나로 인해 취업 시장이 대폭 얼어붙어 인턴이 금턴으로 불릴 때였기에, 열정 페이를 받더라도 인턴 자리 하나가 너무 감사했다.
열정과 페이, 그게 나를 얼마나 비참하게 만들지도 모르고.
서울에서의 칼국수 한 그릇은 기본 1만 원. 조금 더 맛있는 바지락 칼국수를 먹고 싶다면 3천 원 추가. 만두나 음료 같은 사이드 메뉴는 꿈도 못 꾼다. 야금야금 추가하다 보면 한 끼에 2만 원이 넘어가는 일이 부기지수라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했다. 먹고 싶은 대로 먹고 살기엔 월급이 너무 빠듯했다. 평범한 식사가 월화수목금 평일 내내 쌓이니 사치로 느껴졌다. 비싼 밥, 비싼 반찬, 비싼 음료. 서울에서의 식사는 한 끼를 먹는 데에도 너무 많은 계산이 필요했고 아무리 계산기를 두드려도 이렇게 하다간 통장이 거덜 난다는 답밖에 안 나왔다. 그런 결론에 통장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통장의 눈물은 나에게 그렇게 비싼 밥을 먹을 자격이 있는지 자꾸만 따져 물었다.
스스로에게 1만 3천 원짜리 바지락 칼국수를 먹을 자격이 있는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대답하며 당위성을 부여해야만 했고 정당한 이유가 없다면 가차 없이 편의점 행이었다. 그런 날이면 나는 편의점 삼각김밥의 값어치만큼, 딱 1,400원짜리 인간이 된 기분이었다.
가끔 사수가 사주는 밥을 먹을 때에도 그랬다. 오늘 이만큼의 밥값을 했을까 싶은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그 생각은 농담의 얼굴을 하고 불쑥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둘이서만 식사하는 날엔 꼭 밥을 사 주시던 사수께 사실 이렇게 밥을 얻어먹어도 되는지 모르겠다고, 제가 밥값이나 제대로 하고 있는 게 맞냐며 염치없지 않냐며 물었다. 헤실거리며 웃고 있었지만, 속은 그렇지 않았다. 밥값만큼의 일을 해내고 있을지, 그런 자격이 있는지 내내 불안했다. 사수는 웃으며 ‘선미 씨는 충분히 1인분의 몫을 해내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내가 잘하고 있다거나 못하고 있다는 대답이 아닌, 1인분의 몫을 해내고 있다는 사수의 대답에 서울에 올라온 후 내내 나를 옥죄던 긴장감이 탁 풀렸다. 뭔가에 댕- 맞은 기분이기도 했다.
1인분. 밥 먹을 때마다 나를 1,400원, 13,000원짜리 인간으로 값어치를 매기던 내게 새로운 기준이 생긴 순간이었다. 어느 식당에나 있는 기준이지만, 그 양도 가격도 천차만별인 1인분. 어떤 음식을 먹든 그 가격이 어떻든 그저 든든하게 배를 채울 수 있는 1인분이라는 기준이, 그 헐렁함과 모호함이 마음을 편하게 만들었다. 그날 이후 스스로에게 이 정도 가격의 밥을 먹을 자격이 있는지, 오늘은 얼마짜리 식사가 가능한 인간인지 따져 묻지 않게 됐다. 여전히 서울의 물가는 비싸기에 밥 먹을 때 식대를 정해 계산기를 두드리지만, 더 이상 그 값어치의 인간이라고 나를 계산하지 않는다. 가끔 편의점 음식으로 한 끼를 때울 때에도 스스로 이 정도짜리 인간이라고 나를 절하하지 않는다. 회사에서 일을 잘했든 못했든 자리를 묵묵히 지키는 것만으로도 1인분의 역할은 했으리라 생각하며. 가격이야 어떻든 1인분이면 든든하게 배를 채울 수 있으니 그걸로 괜찮은 것처럼.
p.s. 그래도 통장이 우는 걸 막기 위해서 상한선은 정해야 하니 서울 와서 가장 놀랐던, 칼국수 1인분을 먹을 수 있는 1만 원을 점심 식대로 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