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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미 May 12. 2024

몽산포 해수욕장 1박 2일

갯벌 맨발 걷기

도착한 숙소 오랜 세월이 묻어있는 구식 펜션이었지만 아주 따뜻했다. 온돌방의 온도를 뜨끈하게 올려 2시간이 넘도록 운전하느라 피곤한 몸을 녹이고 아랫목에서 이른 저녁부터 푹 잤다. 운전하는 내내 한 여름 찜통더위를 느끼며 갔는데 태안 바다 가까이 갈수록 공기가 시원해지더니 끝내 추워졌다. 밤바다로 바람 쐬러 잠시 나갈 때는 담요를 둘둘 말아 이불처럼 온몸을 감싸 안고서야 나갈 수 있었다. 비록 해가 지고 너무 캄캄해져서 바다 향기만 맡을 뿐이었지만, 피곤한 몸을 이끌고 태안에 도착해 엄마 아빠를 만난 것만으로도 이미 큰 일을 해냈다는 느낌이었다. 여름과 겨울이 공존하듯 낮에는 질릴 정도로 더웠지만, 밤에는 뜨끈한 온돌 바닥에서 떨어지기 싫을 만큼 훈훈함이 좋았다. 어렴풋이 펜션 리뷰 중 이불에서 좋은 향기가 난다고 적힌 글을 본 것이 생각났다. 방에 있으면서 어디선가 달콤한 향이 계속 나서 보니 이불에서 나는 향이었다. 겨우 하루 묵는 펜션이지만 야외 테라스에서 저녁 차려먹고, 뜨끈한 물에 샤워하고 온돌방에 누워 오손도손 알차게 쉬었다. 바닷가에 있으니 해 떨어진 뒤에는 할 일이 없어 다음 날 물 빠지는 시간부터 체크한 뒤 일찍 잤다.


푹 자고 일어나니 새벽 6시. 평소보더 1시간이나 더 일찍 일어났다.  뜨자마자 나갈 채비를 해서 몽산포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이미 바닷물은 들어오고 있었지만 아직 멀리서 차오르느라 갯벌이 광활하고 벌써 일찍부터 아이들과 함께 나와서 해루질하고 있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걷기를 시작했을 때 어찌나 발이 시리던지 냉기가 허벅지까지 올라와서 걷기 힘들 정도였다.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야 차디 찬 갯벌에 적응되어 편안히 걸어 다닐 수 있었는데 내륙에서 황톳길 걷는 것과는 또 다르게 단단하고 울룩불룩한 갯벌의 지형이 발바닥 전체를 지압해서 아프기도 하고, 시원하기도 했다. 동글동글 뭉쳐있는 모래알들을 톡 밟으면 으스스 뭉글어지고 갯벌에 가만히 서있으면 발 움푹 들어갔다. 남편은 뜨끈한 방에서 좀 더 늦잠을 잤고, 엄마랑 아빠 그리고 나는 한참을 갯벌을 걸었다. 바닷물이 밀려들어오고 있는 지점까지 걸어갔다가, 해루질하고 있는 사람들 곁에 가서 맛조개 캐는 모습도 구경했다.


몽산포 해수욕장 맨발 산책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채소 밥상으로 아침 챙겨 먹고 체크아웃하고 나가는데 서비스로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을 챙겨주셔서 시원하게 들이켰다. 하루 머물렀지만 여러모로 많이 챙겨주셔서 떠날 때 기분 좋은 숙소였다. 근방에 솔모랫길이 어디인지 위치도 대략 안내받고, 캠핑장을 지나 솔모랫길을 찾아 잠시 걸었는데 솔잎이 떨어진 자리를 걸으니 발바닥이 따끔따끔했다. 날씨 좋을 때 해변도 걷고, 솔모랫길도 걸으면 참 좋을 것 같았는데 우리가 갔을 땐 한참 송홧가루가 많이 날릴 때라서 금방 나왔다. 아침 일찍부터 들어오던 밀물이 이제 꽤 차서 조금만 걸어 나가니 바닷물이 차오른 게 보였다. 바다가 보이는 근방에 돗자리를 펴고 광합성을 즐기고 가족사진도 찍었다. 여유롭고 한적했던 시간. 앞으로도 아빠와 함께 어디든지 가서 맨발로 걸을 수 있기를 바라고, 어서 건강이 호전되어서 더 좋은 곳도 무탈히 다닐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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