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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orest May 05. 2024

이불 빨래 하는 날

여행 후의 나를 위한 배려

난 하루 이상 집을 비우게 되면 늘 깨끗이 청소를 하고, 이불을 세탁해서 널어놓고 나가는 걸 좋아한다. 하루든 이틀이든 나갔다가 돌아오는 날 녹초된 나를 깨끗한 집이 반겨주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특히 보송하게 말라있는 이불을 걷어서 다시 내 보금자리로 돌아와 잠을 청하는 기분이 정말 좋다. 이번 연휴는 집에서 쉬면서 일도 하고 예정되어 있던 지인 결혼식도 가고 할 참이었는데, 갑자기 아빠에게 몽산포 해수욕장에 펜션을 예약해 달라는 전화가 왔다. 맨발 걷기의 성지는 뭐니 뭐니 해도 해변가인데, 염분기가 있어서 접지가 더 잘된다고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빠와 함께 서해 바다를 꼭 가고 싶었는데 아뿔싸, 오늘로 당첨인가 보다. 항암 중인 아빠의 컨디션에 맞게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우리 가족은 계획 없는 맨발 여행 중이다. 평소엔 주로 가까운 곳을 찾아 걷고, 여행은 당일 컨디션과 기분에 따라 떠나고 싶을 때 떠나기로 했다. 곧 앞으로의 모든 여행은 즉흥적일 수밖에 없는 셈이다.


'몽산포 해수욕장' 내겐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엄마는 펜션에서는 잠만 자면 되니까 저렴한 곳으로 알아보라고 했지만 찾다 보니 같은 가격이라도 숙소의 청결, 사장님의 친절함, 난방이나 외풍, 잠자리의 편안함 등의 상태가 제각각이었기 때문에 비교 끝에 곳을 정했다. 특히 몽산포 해수욕장과 가까워서 도보로 금방 이동할 수 있는 곳이어야 했고, 어디를 가더라도 좋은 곳에서 좋은 사람만 만나고 싶고, 좋은 말만 듣고 싶은 게 암 환자 가족의 마음이므로 자연스럽게 나는 그러한 기준으로 펜션을 골라냈다. 부부 사장님이 너무 친절해서 떠나가는 아이들이 울고, 나중에 또 오고 싶은데 그땐 유명해져있을까 봐 걱정된다고 하는 곳. 펜션 사장님 얼굴도 모르고, 목소리도 듣지 못했지만 괜스레 믿음이 가고 이곳에서 쉬면 편안할 것 같았다. 그리고 한 편으로 같은 일을 하더라도 이렇게 손님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숙소로 운영한다는 게 너무 대단하고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도 여행지에서 숙소를 찾을 때는 '숙소' 그 너머에 있는 사람을 보게 될 것 같고, 나도 내가 하는 모든 일을 그렇게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그곳에 직접 가서 경험해보고 싶은 마음이 더욱 들어 당장에 모든 일정을 뒤로하고 일하고 있는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온전히 숙소 때문은 아니지만, 애초에 갯벌 걷기를 함께 하고 싶었던 마음에 불을 지펴준 것만큼은 확실하다. 회사에 다녀오면 집에서 좋아하는 유튜브 보면서 쉬며 충전을 해야 하는 찐 내향형 남편이지만, 요즘 들어 처가댁 건강 라이프에 주말마다 동참하면서 고생이 많은 중이다. 이번에도 고맙게도 퇴근 후 함께 몽산포로 뒤이어 출발하기로 했다. 당일에 숙소만 예약하고 훌쩍 떠나는 1박 2일 여행을 앞둔 이 순간만큼은 아빠가 아픈 것도 잊고 들뜬 마음이다.


서둘러 예정되어 있던 수업을 하나 하고, 밀린 청소와 설거지, 빨래를 했다. 그리고 대망의 여행 가방 싸기. 1박 2일이라 하지만 바다로 떠나는 여행이었기 때문에 두툼한 겉옷과 모자 그리고 맨발 걷기 후 편히 쉬기 위한 잠옷, 집에서 사용하는 내가 애정하는 화장품과 세면도구들을 전부 챙겼다. 또한 여름 낮처럼 더운 날씨에 에어컨이 고장 난 남편 차를 타고 가야 했기 때문에 냉장고에 보관 중이었던 수박도 썰었고, 선풍기도 챙겼다. 그리고 해변에서 신고 다닐 크록스까지 챙겨 들고 옷은 최대한 간결하게 입던 그리고 여분의 양말까지만 허용했다. 세탁기에 둘둘 말려 세탁이 끝난 이불 식탁 의자에 멋들어지게 널어놓고 맨발 걷기 성지 몽산포 해수욕장을 향해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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