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이우환미술관 (2)

Lee Ufan Museum 2

by 문현

리셉션에서 표를 구매한 후 미술관 내부로 들어가려면 ‘조응의 광장’을 지나야 한다. '광장'이라는 이름을 지닌, 그러나 전혀 '광'대하지는 않은 공간 중앙에 <관계항-신호,2010/ Relatum-A Signal>이 놓여 있다. 자연에서 옮겨온 돌 한 덩어리와 커다란 철판 하나가 일정 거리를 두고 마주본다. 아무런 가공이 되지 않은 자연 그 자체인 돌과 온갖 가공을 거쳐 본래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든 철판은 서로 너무나 다르지만 저 돌의 미래 모습이 철판일 수도 있다. 철판이 과거에는 저 돌과 같은 모습으로 자연 속에 무심히 자리했을 수도 있다. (가공하여 철판을 만들려면 철광석이라는 특정한 돌이어야만 한다는 지적을 이 예술적 혹은 철학적 가능성들 앞에서 굳이 입밖에 내지는 않도록 하자)

그러나 돌의 미래일 수 있는 철판과 철판의 과거일 수 있는 돌이 한 시공에 마주하고 있으니, 결코 서로가 서로의 과거나 미래일 수는 없다. 돌과 철판이 침묵 속에 그저 마주보고 있을 뿐이지만, 철판의 모서리가 돌 쪽으로 빼꼼, 고개를 들고 있다. 저 철판의 몸짓에 둘의 '무관'이 아닌 '유관'을 느낀다. 더불어 철판과 돌을 보며 흔히 느끼기는 어려운 감정이 살며시 고개를 든다. 귀엽기도 하지. 지면에서 살포시 들어올려진 철판의 부분을 귀여워하며 음흉한 미소를 짓는 모습이 매우 수상해 보이겠으나, 다행히 아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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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판과 돌을 지나쳐 문 앞에 선다. 돌벽이 감싸고 있는 자동문이라니, 나도 모르게 두 손을 앞쪽으로 뻗으며 속삭인다.


"열려라 참깨."


나이가 들수록 자신을 향해 몇살이냐 대체, 내적 타박을 하는 일이 잦은 걸 보니 나잇값을 몹시 못 하고 있다는 뜻이겠지만, 어릴 때 읽고 들은 이야기의 힘은 이렇게나 강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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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부터는 사진 촬영이 엄격하게 금지된다. 지추미술관과 마찬가지로 메모를 하기 위해 펜을 사용하는 일도 안 된다. 무언가 꼭 적어야 한다면 미술관 직원이 연필을 빌려준다고 한다. 간헐적으로 준비성이 철저한 나는 연필을 가져갔다. 그래놓고 아무런 기록도 남기지 않았던가? 아니면 낙서처럼 끄적여둔 것들이 방 어딘가에 먼지를 뒤집어 쓰고 얌전히 기다리고 있는가. 대대적인 방정리를 하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미술관 내부는 전시실 다섯으로 구성되어 있고, 다섯 개의 방은 각각 만남의 방/Encounter Room, 작은 방/Void, 침묵의 방/Silence Room, 그림자 방/Shadow Room, 명상의 방/Meditation Room이라는 이름을 지녔다.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만남의 방 중앙에는 철판 위에 놓인 돌이 자리하고, 그것을 벽에 걸린 이우환 작가의 대표작들이 에워싼다. 침묵의 방은 이름과 어울리게 회색 어둠이 내려앉은 듯한 분위기다. 커다란 철판이 벽에 기대어져 있고 그 앞에 돌이 철판을 마주하고 있다. 이번에도 철판은 벽에 찰싹 붙어있는 대신 틈을 두고 기대 있다. 빼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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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방은 방이라기 보다 통로 같다. 그곳에 놓인 <관계항-돌의 그림자,2010>는 세모꼴의 돌 아래쪽, 돌 그림자가 드리워진 듯한 공간에서 영상이 나온다. 돌이 간직하고 있는 기억, 돌의 꿈이다. 지구만큼, 혹은 그보다 오래된 돌의 시간 앞에서 신생 생물 인간은 그저 아득하다.


신발을 벗고 명상의 방으로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긴다. 새하얀 벽, 커다란 여백을 두르고 있는 벽화 앞에서 잠시, 숨을 멈춘다.


이우환미술관은 소장 작품 수가 많지 않고, 이우환 작가를 잘 모르거나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는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을 수 있는 공간이라 외부에 놓인 작품만 보고 마는 여행객들이 많은 듯하다. 그러나 이왕 거기까지 갔으니, 조용하디 조용한 나오시마에서도 유난히 숨을 멈추고 침묵하게 되는 이우환미술관을 지나치지는 말기를. 그리고 이우환미술관을 나와서는 꼭 무한문을 지나 골짜기의 끝, 바닷물이 닿는 곳까지 천천히 걸어가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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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절벽에 붙어 있는 정체 모를 하얗고 검은 무언가가 어렴풋이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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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에는 노란색과 검은색 보트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일단 그것들을 눈과 사진과 기억에 담고 발길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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