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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orest Writer Mar 21. 2022

고속도로 1차로에 화물차는 왜 있는 거죠?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논쟁이 하나 있습니다. 고속도로 1차로 규정속도 주행 차가 더 나쁘냐? 1차로 과속이 더 나쁘냐? 


결론은 비교할 수 없다, 입니다. 원래 고속도로 1차로는 주행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죠. 시속 80 km 로 가든, 시속 120 km 로 가든, 둘 다 나쁩니다. 속도와 상관없이 '비켜주지 않는 것'은 똑같기 때문입니다. 쉽게 예를 들어보자면, 핸드폰이 없던 시절, 공중전화 부스에서 앞사람이 나오길 기다립니다. 사실 앞사람이 전화를 1분을 쓰든, 5분을 쓰든 기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통화가 다 끝났는데도 나오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뒷사람이 열 받습니다. 다 썼으면 다음 사람을 위해서 비켜줘야죠.


원칙적으로 고속도로 1차로는 주행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앞차를 '추월'만 하고 곧바로 하위차로로 복귀해야 합니다. 하지만 앞차를 추월하고 나서, 그대로 다시 2차로로 복귀하는 차량은 별로 없습니다. 물론 그분들도 나름 할 말은 있습니다. "나는 지금 계속해서 앞차들을 추월하고 있는 것이다. 목적지까지 계속."




고속도로 2차로에서 주행을 하면, 가끔씩 왼쪽 사이드 미러에 엄청난 속도로 빠르게 가까워오는 차량들이 많습니다. 사이드미러를 집어삼킬 듯 폭발적으로 커지는 잔상이 갑자기 사라지더니, 이내 내 시야의 왼쪽 앞에서 점처럼 멀어져 갑니다. 내 계기판을 봅니다. 시속 110 km. 도대체 저XX 는 얼마로 달리고 있는 거지?


우리나라는 인구밀도 뿐만 아니라 차량밀도도 굉장히 높습니다. 특히나 수도권에 지낼 경우 시원하게 밟을 일은 생각보다 많이 없습니다. 그 말은, 조금 뚫리다가도, 이내 정체 상황을 맞이할 확률이 높다는 얘기가 됩니다. 고속도로 1차로가 이래서 엄청나게 위험합니다.


고속도로 1차로를 과속으로 달린다면, 당연히 '정체 상황 반응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선, 신호가 없는 도로에서 운전을 오래 하다 보면, 생각보다 긴장이 느슨해집니다. 자신은 빠르지만, 주변 사물이 거의 변화가 없고, 몇 초 전이나 몇 초 후나 똑같아 보입니다. 설령 시속 140 km 라고 하더라도, 가속력이 없이 정속으로만 달린다면 내 속도를 물리적으로 체감하지 못합니다. 그러면서도 틈틈이 옆사람과 얘기하고, 내비 보고, 에어컨 조절하고, 라디오 채널 바꾸고...


문제는 다른 차 입장에서는 본인의 차가 시속 140 km 로 달린다는 것이 명백한 '사실' 이라는 것입니다. 그게 엄청난 공포입니다. 잠깐 한눈 판 사이에, 1차로 정체상황이 '딱' 하고 나타납니다. 본인의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미처 제동 하지 못하고, 곧바로 연쇄 추돌이 일어나고, 엄청난 피해가 생깁니다. 뉴스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연쇄 추돌 사고가 대부분 이런 식으로 일어납니다.


만약에 1차로로 달리고 있는데 앞에 정체 상황을 맞이한다면? 곧바로 비상등부터 키고, 룸미러를 계속 봐야 합니다. 뒤차는 잘 멈추고 있고, 그 뒤차는, 그다음 차는... 이렇게 전방보다는 후방을 더 유심히 봐야 합니다. 저~기 뒤에 무지막지하게 빠르게 가까워오는 차가 있다? 그러면 곧바로 차를 2차로 방향으로 틀어야 합니다. 정면으로 받히는 것보다 사선으로 받히는 것이 충격 범위가 커져서 시간 지연이 잘되고, 상대적으로 충격력이 덜합니다. 게다가 추돌 차량의 본래 운동 궤적(일직선)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지속적인 피해를 막을 수 있습니다. 유튜브 블랙박스에 보면 이런 식으로 충돌 충격을 줄이는 베테랑 운전자들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고속도로 1차로에 화물차가 들어오면 안 되는 가장 큰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1차로 과속을 하다가 앞에를 들이박아도 가해차가 승용차라면 그나마 다행일 수 있습니다. 차체가 무겁지 않아서 충격량은 앞차들이 감당할 수준이 됩니다. 요즘 차들 튼튼하게 나옵니다.


그런데 화물차는 체급 자체가 차원이 다릅니다. 포터나 픽업트럭 같은 건 괜찮지 않냐? 라고 할 수도 있는데, 절대 모르는 소리입니다. 화물차는 화물을 적재하는 자동차입니다. 우리나라의 과적 문화, 화물의 무게를 고려하면 소형 화물차라도 앞차에게 가해지는 충격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5톤 이상 화물차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만약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는데, 차선 상관없이 룸미러에 화물차가 크게 보인다? 그러면 곧바로 다른 차선으로 이동하시는 걸 추천합니다. 아니면 더 속도를 내어서 멀어지는 것도 좋습니다. 화물차 바로 앞에 달려서 좋을 게 하나도 없습니다.




고속도로 1차로에 화물차가 들어오면 안 되는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화물차는 특성상 무게가 엄청나게 무겁습니다. 질량이 많이 나간다는 말은 결국 출력이 높다고 해도 가속력이 떨어진다는 얘기가 됩니다. 애초에 '추월'을 하기에 적합한 차량이 아닙니다.


종종 그런 상황이 있습니다. 고속도로 언덕을 올라가는데 1차로에 자동차들이 줄지어 기차놀이를 하고 있습니다. 뭐지? 맨 앞을 보니 화물차 한 대가 앞에 뻥 뚫린 도로를 힘겹게 올라가고 있습니다. 아마도 본인은 엑셀을 바닥까지 밟았겠죠? 그래도 쉽게 올라가지 못합니다.


다른 차 입장에서는 2차로를 달리다가 추월을 하고 싶어서 1차로로 왔는데, 앞에 덩치 큰 형님의 뒷모습이 두둥! 하고 나타난 것입니다. 아무리 뒤에서 항의를 해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화물차의 가속도가 이것밖에 안 나는 것을. 결국 1차로와 2차로가 사이좋게 같이 체증을 겪게 됩니다. 3차로가 가장 널널한 어이없는 상황, 아주 흔히 볼 수 있는 우리 주변의 풍경입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화물차 없이는 하루도 제대로 살 수 없습니다. 문명과 생활 편의는 모두 물류에서 옵니다. 제주도에서 온 한라봉을 서울에서 먹고, 수출입 물건들 항구까지 실어 보내고, 거래처에 물건 보내고, 인터넷 쇼핑으로 옷 사고, 책 사고, 먹을 것 사고, 이게 전부 다 화물차가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화물차 운전자들은 조급합니다. 물량이 조금만 늦어도 엄청난 욕을 들어먹거나, 일이 끊기거나, 생계가 위협받습니다. 직업적인 난폭 운전은 일상이 되어 버렸고, 같이 도로를 쓰는 일반 운전자들에게 위험이 전가되고 있습니다. 어려운 문제입니다.


과연, 2022년 부터는, 승용차와 화물차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도로 환경이 올 수 있을까요? 난폭 운전을 하지 않아도 화물차의 생계가 안전해지는, 그 일을 과연 누가 총대 메고 할 수 있을까요. 문득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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