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차를 어떻게 세워?
*본 글은 전륜구동 차량에 기초하여 작성하였습니다. 후륜구동은 아직 접해본 적이 없어서 알지 못하고, 운전을 어떻게 하는지 지식이 없습니다. 혹시 후륜구동 운전자라면 읽지 마시고 그대로 나가시면 되겠습니다.
흔히들 이야기합니다. 빗길이나 눈길 등의 미끄러운 곳에서 운전할 때는 속도를 줄일 때 브레이크를 밟지 말라고. 그럼 이런 본질적인 의문이 듭니다.
아니 이게 무슨 개소리야. 그럼 브레이크 밟지 말고 냅다 앞에 들이박으라는 거니?
한국말의 특징은 굉장히 많은 내용을 굉장히 짧게 압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미끄러운 길에서 브레이크를 밟지 말라는 말의 내면도 많은 것을 담고 있을 것입니다. 지금부터 천천히 상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자동차가 앞으로 가고, 멈추고 하는 메커니즘을 생각해 봅니다. 사실 메커니즘이랄 거 까지도 없이 원리는 엄청나게 단순합니다. 엔진(또는 모터)의 힘으로 바퀴를 돌려서 타이어가 지면을 밀어내는 반작용을 지속적으로 가해서 자동차는 앞으로 진행합니다. 이럴 땐 회전하는 타이어 입장에서 계속해서 '새로운' 접촉면을 만나기 때문에 마찰력 중에서 '정지 마찰력'의 힘이 작용하게 됩니다.
자동차가 멈추는 과정을 생각해봅니다. 브레이크를 잡으면 바퀴의 회전이 멈추게 되고, 멈춰있는 바퀴의 단면과 지면의 '운동 마찰력'으로 자동차는 서서히 속력이 줄어듭니다. 이때 타이어의 아랫면만 지면과 지속적으로 접촉하죠. 그래서 제동을 자주 하면 타이어가 빨리 마모됩니다.
이렇듯 정지 마찰력과 운동 마찰력의 근본적인 차이는, 물체와 지면 사이의 접촉면이 변하는 상황이냐 아니냐로 구분됩니다. 우리가 바닥에 멈춰있는 무거운 택배 박스를 앞으로 민다고 생각해봅니다. 그러면 우리가 '밀기' 직전의 택배 박스와 지면의 접촉면은 그 자리 그대로 고정인 상태입니다. 그래서 박스를 처음 1 cm 움직이는데 힘이 많이 듭니다. 가만히 있는 걸 움직이는 상태로 만드려고 하니 당연하지요. 이것을 정지 마찰력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일단 택배 박스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다음부터는 스르륵, 밀립니다. 바로 정지 마찰력보다 작은 운동 마찰력이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더 빠르게 밀수록 관성이 커지기 때문에 속도에 무관한 운동 마찰력을 가뿐히 뛰어넘을 수 있고, 더욱더 밀기가 수월해집니다. 그래서 무엇이든, 멈춰있는 것을 움직이는 상태로 만드는 것이 가장 어렵습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도 이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일단 앞으로 가기 시작하면 확실히 처음보단 쉽습니다.
자, 앞에서 자동차가 달리는 힘은 정지 마찰력이고, 멈추는 힘은 운동 마찰력이라고 했습니다. 정지 마찰력이 운동 마찰력보다 크니, 자동차라는 물건의 본질은 달리는 것보다 멈추는 게 더 어렵다는 말이 됩니다. 운전을 해보신 분들이면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평지에서 일단 어느 정도 적당한 속도를 확보해두면, 엑셀을 안 밟아도 자동차는 한동안 계속해서 앞으로 갑니다. 앞으로 가려는 힘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럼 빗길이나 눈길 같이 미끄러운 노면에서는 운동 마찰력이 훨씬 더 줄어들겠죠? 자동차는 멈추는 것이 원래도 힘들었는데, 이런 환경에선 훨씬 더 힘들어진다는 말이 됩니다. 사실상 브레이크를 잡는 것이 의미가 없어지는 상황이 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브레이크 잡는 것도 소용이 없으니 제동을 해야 할 땐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답은 단순합니다. 빗길/눈길 등의 미끄러운 노면에선 아예 브레이크를 잡을 일이 없게 다니는 것입니다. '감속' 이죠. 애초에 안전하게 멈추는 게 불가능하니, 급하게 차를 멈춰 세우는 상황 자체를 만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참외밭에서 신발 끈 고쳐 매지 말고, 자두밭에서 갓을 고쳐 쓰지 말라는 거죠. 문제가 될 행동은 하지도 말자.
우리나라 도로 교통 규정에서도 미끄러운 노면 주행 시 20 %, 50 % 등으로 감속하라고 아예 명시를 해 두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빗길/눈길에서 신나게 과속하고 밟고 다니는 사람들은 학교 다닐 때 과학시간에 졸았거나 도로 교통법을 귀찮아서 안 보거나, 하는 사람들이겠죠?
자, 그럼 빗길/눈길에서 브레이크를 잡지 말라고 했으니, 앞에 신호대기하는 차들은 전부 다 부수고 지나가야 할까요? 그건 아닙니다. 어쨌든 멈추긴 멈춰야 합니다. 그럴 땐 아래에 두 가지만 기억하시면 되겠습니다.
1. 엑셀에서 발만 떼고 관성 주행으로 서서히 멈춘다.
기어가 드라이브에 물린 상태에서, 엑셀도 브레이크도 아무것도 밟지 않으면 엔진 자체의 동력 저항으로 자동차는 서서히 속도가 줄어듭니다. 이것을 엔진 브레이크라고 하며, 물론 기어 단수가 낮아지면 엔진의 저항도 커집니다. 기어봉에 M 이라고 쓰여 있는 것을 마이너스 (-) 방향으로 옮기면 간편합니다. (물론 기어를 한 번에 너무 많이 내리면 후방 추돌을 당할 수 있어서, 꼭 한 칸씩 내려야 합니다)
미끄러운 길을 주행하다가 저기 앞에서 차들이 멈춰있다? 그러면 한참 전부터 엑셀에서 발을 떼세요. 그렇게 서서히 스르륵 부드럽게 감속을 하는 겁니다. 속도가 잘 안 줄어든다? 그러면 M 모드에서 기어를 저단으로 옮기시면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완전히 멈출 때만 브레이크를 살짝 잡으면 완벽합니다.
2. 핸들은 꼭 잡으세요.
빗길/눈길에서 브레이크 잡으면 안 되는 건 알겠는데, 정말 너무 급박한 상황이야, 앞에 차가 갑자기 멈췄어, 박을 것 같아, 그러면 어쩔 수 없이 브레이크를 잡아야 합니다. 그럴 땐 핸들을 꼭 잡으셔야 합니다. 핸들이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차가 제멋대로 돕니다.
자동차의 조향(방향전환)은 두 가지의 조건이 필요합니다. 핸들이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정렬이 되어 있어야 하고, 동시에 바퀴의 동력이 전달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지면을 박차고 원하는 방향으로 이동을 할 수 있지요.
만약에 핸들이 조금이라도 돌아간 상태에서 브레이크를 밟는다? 그러면 회전하고 싶은 방향으로 동력 전달이 되지 않아서 지면을 박차고 나갈 수 없으며, 원래 차체 운동 방향의 관성만이 남아있게 됩니다. 차는 앞으로 가려고 하는데, 핸들은 옆으로 틀어져있으니 타이어와 지면이 사선으로 어긋나게 놓여있는 셈이지요. 미끄러운 노면과의 접촉면은 완전히 랜덤이라서 차가 어디로 갈지 모릅니다. 정말 위험합니다.
이렇게 차가 자기 멋대로 도는 것, 과도하게 회전된 상태를 오버스티어 라고 합니다. 그럼 이러한 오버스티어 상황에 맞닥뜨리면 그냥 체념하고 기도하는 수밖에 없을까요? 또 그건 아닙니다. 호랑이에게 잡혀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습니다.
일단 미끄러운 길에서 미리 M 모드 저단 기어로 바꾼 상태라고 했을 때, 어쩔 수 없이 브레이크를 잡아서 돌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 할 일은 자세를 잡는 것입니다. 자세를 잡는다는 건 바퀴가 정렬된 방향으로 구동력을 주는 것이겠죠? 바로 정지 마찰력으로 동력을 주는 엑셀링 입니다. 누구나 위험한 상황에 들어서면 본능적으로 브레이크에 발이 먼저 올라가겠지만, 차량 자세가 틀어졌을 때의 핵심 대처법은 바로 엑셀입니다. 차가 돌 때는 브레이크를 밟지 말고, 핸들을 돌려서 엑셀을 밟아주면, 원하는 방향으로 차를 이동시킬 수 있습니다.
길이 미끄러워서 이상태로 가다간 앞선 차와 추돌을 막진 못하겠고, 차라리 차를 다른 방향으로 돌려야겠다 싶으면 이 방법이 정답입니다. 즉, 미끄러운 길에서는 무조건 브레이크 밟는다고 안전한 것도 아닙니다. 위험상황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지면을 박차서 원하는 방향으로 차를 밀어낼 생각을 해야 합니다. 특히 저단 기어 모드의 경우 지면을 밀어내는 힘이 강하고,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안전한 회피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카운터 라고 합니다.
물론 상황에 따라서 주변에 다른 차들이나 보행자가 많아서 그냥 혼자 돌다가 끝나는 게 낫다 싶을 때는 단독 사고로 끝내는 것이 좋습니다. 반대로 자동차 전용도로라면 카운터 치는 기술이 빛을 발휘하겠지요. 빗길/눈길 상황은 정말 여러 가지 경우의 수가 있고, 오르막길 내리막길 따라 다르고, 무조건 딱 어떻게 하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상황에 맞는 대처법을 익혀두면 두고두고 써먹을 수 있습니다.
그럼 요약을 해보겠습니다.
-빗길/눈길 등의 미끄러운 노면을 운전할 때는 처음부터 감속을 하고 다니자.
-앞에 차들이 멈춰있는 게 보이면 일단 엑셀에서 발을 떼자. 서서히 속도가 줄어든다.
-엑셀에서 발을 떼도 속도가 잘 안 줄어들면 기어 M 모드에서 저단으로 바꾸자.
-자동차를 완전히 멈출 때만 브레이크를 밟는다. 브레이크는 감속용이 아니라 신호 대기용이다.
-정말 너무 급해서 브레이크를 밟아야 한다면 핸들을 꼭 잡아서 정렬시키자.
-차가 돌아서 앞에 차와 부딪치겠다 싶으면 차라리 핸들을 돌리고 엑셀을 밟아서 충돌을 피하자.
-그냥 혼자 돌다가 끝나는 게 낫다 싶으면 단독 사고로 끝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