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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orest Writer Jul 11. 2022

노키즈존이라는 단어가 불편합니다

아이는 잘못이 없다


얼마 전 야구 중계를 보다가 이닝 교대 시간에 나온 광고 하나가 꽤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세상의 모든 어린이들은 존중받아야 하니깐, 저희 매장은 언제나 예스키즈존입니다" 라는 광고 문구. 


분명 이건 노키즈존을 운영하고 있을 다른 경쟁사(?)들에게 따끔한 한마디를 날림과 동시에, 본인들은 어린이들에게 관대하고 특별하다는 어필일 것이다.


그러면 노키즈존은 어린이들을 존중하지 않는 걸까? 과연 그럴까?




모두가 알다시피 노키즈존이 나온 이유는, 몇몇 아이들이 매장에서 시끄럽게 굴거나 우당당탕 사고를 쳐서 기물을 파손하거나 재산 피해 또는 다른 사람들에게 불편을 주는 행동 때문이다. 사고는 아이들이 일으키지만 결국 책임은 매장 관리자에게 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산만한 아이가 매장에 보인다면 온갖 긴장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가 부모에게 아이를 통제해달라고 부탁하면, 이런 대답들로 인해 힘이 빠지게 된다.


"우리 애가 뭐 어때서요? 애가 잘 모르니 그럴 수도 있지."



생각해보면 태생적으로 성인들만 출입이 가능한 매장도, 즉 원래 아이들은 못 들어오는 가게도 상당히 많다. 당구장, 호프집, 막걸리집, 심야 PC방 등등. 하긴, 세상에 어떤 보호자가 아이랑 같이 맥주집에 갈까. 그래서 얼핏 우리 가게는 아이는 안 받아요, 하는 주장도 별 문제는 없어 보인다.


이 점에 관해 노키즈존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입장은, 이건 어린이 차별이고 혐오다, 그렇게 따지면 인상 험악한 아저씨 금지, 꼰대같이 생긴(?) 사람 금지, 등산복 금지... 온갖 핑계를 다 대가면서 사람 차별할 것 아니냐. 술집도 아니고 모두가 이용하는 식당인데 문 앞에서 발걸음을 돌리게 된 아이들이 자라면서 무슨 생각을 하겠냐. 이런 걱정과 우려와 자유/평등에 위배되는 행위라고 비난하곤 한다.




야구를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다가, 얼핏 누군가 예전에 했던 자유에 대한 한마디가 떠올랐다.


"개인의 자유의 범위는,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선까지 입니다."


다시, 노키즈존이 왜 생겼는지 근본적인 이유로 돌아와 보면, 분명히 몇몇 아이들이 우당당탕 사고를 치고, 다른 손님들이 불편해하고, 업주는 피해를 보상해야 하고, 어른들끼리 얼굴을 붉히고 싸움을 하는 일이 반복되다 보니 그런 것이다. 그러니깐, 특정 가정의 자유가 다른 집단의 자유를 침범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는 것. 세상 그 어떤 누구도 타인을 불편하게 만들 자유는 갖고 있지 않고, 가질 수도 없다. 


물론 아이는 잘못이 없고, 아직 잘 모르니 그럴 수도 있다. 문제의 본질은 어른들에게 있다는 것. 자기 아이가 다른 가정의 평화에 피해를 끼치는데도, "왜 아이 기를 죽이고 그래요!" 라며 발끈하는 어른들 때문에 노키즈존이 생겼고, 여기까지 온 게 아닐까.


게다가 이런 자유 침해는, 매장에 있는 타인들 뿐만 아니라, 점잖은 아이를 가진 평범한 가정에게까지 싸잡아서 피해를 준다. 죄 없는 그들 입장에서는 가만히 있다가 하루아침에 출입금지를 받아버린 것.


다만 여기서 '노키즈존'이라는 단어 자체는 오해의 소지가 있다. 마치 '아이'를 비난하고 혐오하는듯한 뉘앙스를 풍기는 단어이다. 




그래서 나는 노키즈존이라는 단어가 불편해졌다. 다른 단어로 부르는 게 필요해 보이는데, 예를 들면 얼마 전 뉴스에 나왔던 이것처럼.


'노 배드 페어런트 존 (No bad parent zone)'


누가 처음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참 좋은 단어라고 생각이 든다. 우리는 아이를 거절하는 게 아니라, 아이를 통제하지 않는 나쁜 부모들을 거절합니다.



"바보야, 문제는 아이가 아니라 부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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