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건 따듯하게 이해받음과 동시에 함부로 무시받고 오해받는 고통이 번갈아 일어나는 과정이라는 말이 있다. 지극히 맞는 말이다. 그리고 그러한 일은 대부분 '착한' 사람들에게 일어난다.
인간은 선할까, 악할까에 대한 생각은 시시때때로 바뀐다. 어쩔 때 보면 선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악한 것 같기도 하고, 아직도 잘 모르겠다. 아마 평생 모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한 가지는 확실하다.
착하게 사는 것은 어렵고, 악하게 사는 것은 너무나도 쉽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편의를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배고프면 먹고 싶고, 졸리면 눕고 싶고, 편하면 자고 싶고, 일 안 해도 돈 벌고 싶고, 노력 없이 성공하고 싶다. 윤리나 도덕, 예의는 그 차후의 일이다. 인류사에서 전쟁이나 재앙, 대기근의 시절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온다.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왜 땅으로 떨어질까? 그건 바로 공중에 떠있는 것보다 땅에 붙어 있는 게 사과 입장에서 더 '쉬운' 상태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노력하지 않으면 악한 상태로 굽어지게 되어있다. 권력을 가지면 갑질을 하고 싶고, 완장을 채워주면 칼춤을 추고 싶은 게 인간이다. 필자를 포함하여 세상 그 누구든 마찬가지다.
만약 누군가를 함부로 대하면 필연적으로 본인은 편해진다. 함부로 대했을 때의 리스크가 없다면 세상에 그러한 편함을 마다할 사람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가 나를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하려면 리스크를 만들어 놓아야 하는 것이다. 힘을 기를 수도 있고, 권력을 갖거나, 실력을 키우거나, 자기 계발을 해서 언제든 네가 아니어도 된다는 암시를 주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본인을 위해서.
그러지 못한다면 평생 이 말들을 듣고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너, 나 아니면 만날 사람 없잖아?"
"너, 여기 아니면 갈 데 없잖아?"
"김사장님, 저희 아니면 거래처 없잖아요?"
사회에서 맺는 모든 관계의 안정화는 본인에게서 시작된다. 즉, 내가 당당하고 잘나서, 누군가를 잠재적으로 곤란하게 만들 수도 있는 '힘'을 가져야 건강한 인간관계가 형성된다. 물론 쓰지 않을 힘이지만, 갖고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난다.
안정은 바로 힘에서 나타나는 거라고, 갑과 을이 선순환하면서 비로소 얻어낼 수 있는 거라고 역사는 말해준다. 지나치게 현실적이면서, 잔인하며, 씁쓸한 현실이다. 어른이 아니라면 절대로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불편한 진실이다.
인간은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자보다 사랑을 베푸는 자를 해칠 때에 덜 주저합니다. 왜냐하면 사랑이란 일종의 감사의 관계에 의해서 유지되는데, 인간은 악하기 때문에 자신의 이익을 취할 기회가 생기면 언제나 그 감사의 상호관계를 팽개쳐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두려움은 항상 효과적인 처벌에 대한 공포로써 유지되며, 실패하는 경우가 결코 없습니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