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갭투자자는 선량한 임대공급자일까

전세는 공짜가 아니다

by Forest Writer


갭투자자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얘기가 있다. 너희들 집 안 사고 전월세 (임차) 살고 싶지? 근데 그거 누가 공급해? 물량 누가 풀어? 바로 우리들이야.


이 말대로 갭투자자들은 임차인들을 (목돈 맡겼다가 그대로 돌려주는 방식으로) 공짜로 살게 하는 착하고 선한 사람들일까. 과연 그럴까?




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농산물 중개상(유통업자)은 농산물 공급자인가? 그들이 농사를 짓는가? 쌀, 보리, 딸기, 수박, 배추 등등을 그들이 생산하나? 아니다. 농산물 공급자는 농민이다.


그럼 그들은 뭐 하는 사람들인가? 농민에게 농산물을 사서, 소비자에게 다시 파는 사람들이다. 유통 비용, 인건비 등등을 제하고 차익을 남긴다. 그들은 농산물을 공급하는 사람이 아니다. 물론 농산물은 대량으로 운송해야 운송비용이 저렴하기 때문에, 그들이 맡은 역할은 소비자에게 도움이 된다.



다시 생각해 보자. 부동산 갭투자자는 부동산 공급자인가? 그들이 집을 짓는가? 전혀 아니다.


그들은 전세 끼고 (자기 자본 별로 안 들이고) 집을 싸게 사서, 다음 사람에게 비싸게 넘기는 사람이다. 근데, 하나의 원산지에서 전국으로 뿌려지는 농산물과 달리 집은 대량으로 거래되지 않는다. 집은 판매자-구매자가 1대1로 정해진 위치에서 하나씩 거래된다. 중개상이 있을 필요가 없다.




어느 지역에 빈 땅이 있다고 해보자. 그럼 돈이 된다 싶으면 기업이고 개인이고 간에 집을 짓는다. (국가에서 주도할 수도 있다) 그리고 분양한다. (물론 분양 안 하고 자기가 가질 수도 있다) 그럼 임대인이 생긴다. 그 사람은 자기 몫을 제하여 수익을 챙긴 다음에 임차인에게 임대료를 받는다.


만약에 갭투자자가 없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 그 가격에 집을 사줄 사람이 없으니 미분양나고 빈집생기고 그럴 것이다. 그러면 필연적으로 공급자는 가격을 떨어트려서라도 판다. (구매자의 구매력과 구매자들 사이의 경쟁에 근거한) 보이지 않는 손의 원리에 의해 적절한 시장 가격이 형성되면, 임차를 하려고 마음먹은 사람들이 그냥 집을 사버린다. 그게 내 집 마련이다. 그 사람이 직접 거주할 수도 있고, 다시 세를 놓을 수도 있다. 애초에 구매한 가격이 낮기 때문에 (임차인을 모집하기 위한 경쟁에 필요한) 임차료를 낮출 여유가 생긴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갭투자자들이 (자기 돈도 없이) 택도 없는 분양가들을 받아주기 때문에 주택 가격이 높게 형성이 되고, 연쇄작용으로 임차료도 비싸진다. 그거 다 '처음' 집주인이 만든 빚이 이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가계부채가 어마어마하다. 은행들만 이자 파티 중이다.



갭투자자는 착한 임대사업자가 아니다. 집을 뻥튀기 가격에 사서, 다시 뻥튀기로 되파는 사람이다. 차익만 먹고 튀는 사람이다.



그래서 전세는 원래 사기다. 갭투자자들은 처음부터 전세금을 돌려줄 생각이 없으니깐. 그 전세금은 자기가 집 사는데 다 써버리고, 갚는 건 다음 세입자한테 맡긴다. 다음 세입자가 없으면? 그냥 드러눕지 뭐. 이러한 도덕적 해이가 갭투자자들의 기본 마인드이다.


전세 만기돼서 다음 세입자를 구하는 시점에서 전세 시세가 떨어지면 전세금 못 돌려준다고, 나라에서 보증하는 눈먼 돈, 즉 보증보험에 맡기고 드러눕는다. 갭투자자가 못 돌려줘서, 아니 안 돌려줘서 국가에서 대신 내어준 전세금이 작년에만 3조 5천억원이다. 그거 다, 사람들이 열심히 일해서 꼬박꼬박 내는 세금이다. 그럼에도 갭투자자들은 전세 시세 떨어지면 안 된다고 전세대출 제도 폐지도 반대한다.


벌면 내 꺼, 잃으면 몰라. 근데 국가에서 살려주네? 이거보다 확실하게 돈 버는 방법이 어디 있을까. 그래서 다들 갭투자하러 불나방처럼 달려든다.


타짜_40_126.png 영화 '타짜' 중에서


전세에 대해서 잘 모를 때는 전세를 놓는 임대인이 착한 사람인 줄 알았다. "2년 동안 목돈 맡겨놓고 공짜로 사세요. 나갈 때 그 돈 그대로 돌려 드릴게요" 라고 하면, 도대체 이 사람 임대인이 얻는 건 뭐지? 라는 생각을 했었다. 사실은 자기 돈 없이 집을 여러 채 갖고 있고, 시세가 올라가면 그냥 되파는 사람이었다.


지금은 우리 모두가 안다. 갭투자자들은 세입자의 목숨을 담보로, 세입자의 전세금을 판돈으로, 신용융자 빚투, 즉, 투기 도박하는 무책임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그래서 전세는 공짜가 아니다. 전세는 원래 사기다. 드라마 '파친코' 의 명대사처럼, 인간은 어딜 가나 썩어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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