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맑은 날 하늘 뭉게구름을 가만히 바라보면 J 형이랑 같이 야구를 하고 놀았던 어린 시절이 문득 생각난다. 그때의 하늘도 지금과 똑같은 하늘이었으니깐. 요즘처럼 이렇게 맑은 하늘을 보면 그 형이 가끔 생각이 난다.
보통 나는 사람을 처음 만나게 된 계기를 잘 기억하는 편이다. 같은 학교나 소속에 있었는지, 친구의 소개로 알게 됐다던지, 어떤 일을 하다가 만나게 되었는지, 웬만하면 잊어버리지 못한다. 사실 잊어버리기가 더 힘들다. 사람과 사람 간의 스토리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기억하는 것도 사람 관계에서 중요한 일이니깐.
그런데 J 형을 어떻게 처음 만나게 되었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초등학교 때 전학을 왔고, 그 형은 나보다 한 살 위였으니 같은 반이 될 리가 만무하다. 공통적으로 같이 아는 사람도 없고, 친인척도 아니다. 그런데 초등학교 고학년 내내 그 형이랑 동네 공원에서 야구를 하고 놀았다. 우연히 만났겠지. 그럼 어디서 언제 어떻게 우연히 처음 만나게 되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우리나라에 메이저리그, 정확히는 박찬호 신드롬이 있었다. 그 당시 i tv 였나, 지방 방송에서 새벽까지 늦게 야구 중계를 꼬박 보다가 다음날 졸린 눈으로 등교를 했던 기억이 자주 있다. 세미소사, 맥과이어, 숀그린, 피아자, 랜디존슨... 추억의 이름들.
그런 시대에 동네 공원에 야구하는 아이들이 많은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나도 마찬가지로 글러브와 야구공, 그리고 방망이를 들고 공원을 돌아다녔다. 처음엔 동네에 초등학교 친구들이랑 하다가 점차 J 형이랑 둘이서 야구를 하는 날이 늘어났다. 다른 아이들과 달리 J 형과 나는 테니스공이 아닌 진짜 야구공 (연식)으로 야구를 해서 더 잘 맞았던 것 같다.
핸드폰도 없던 시절, 우리는 집전화로 만났다. J 형은 우리 집 전화번호를 알았고, 나는 형 집의 전화번호를 몰랐다. 학교에 안 가는 주말 아침에 날씨가 좋으면 형이 전화를 걸어왔고, 나는 야구 장비를 챙겨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형 집으로 갔다.
J 형 집 바로 앞에는 큰 공원이 있었고, 마치 버스킹을 위한 공간처럼 둥그런 돌담이 있는 광장이 있었다. 우리는 대부분 거기서 시간을 보냈다. 광장 한가운데 반원의 중심에서 한 사람이 공을 던지면 돌담을 포수처럼 뒤에 두고 다른 사람이 방망이를 들었다. 스트라이크존은 가운데 벽돌 2개. 가끔은 투수와 포수를 둘이서 번갈아가며 공을 주고받기도 했다.
여름의 뙤약볕은 공원의 나무들에 의해 적절히 가려졌고, 그럼에도 우리는 피부를 검게 그을려가며 땀을 흘리며 놀았다. 둘이서 야구를 하면서 캐스터 해설진처럼 중계를 하기도 했다. 오른쪽 타석에 들어서면 피아자가 들어옵니다, 왼쪽에 들어서면 다음 타자 숀 그린 입니다.
한바탕 신나게 야구를 하고 들어올 때는 형이 항상 음료수를 사줬다. 콸콸콸 목을 축이고 땀범벅이 된 채로 우리는 헤어졌고, 그다음 주에도 어김없이 똑같은 방식으로 놀았다. (신기하게도 형이랑 한 번도 같이 밖에서 밥을 먹은 적은 없다) 그 형이랑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바라봤던 하늘이, 2025년 여름에도 여전하다. 여름 구름, 그리고 야구.
J 형과 나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각자 다른 동네에 중학교를 다니면서 (우리 동네에는 중학교가 없었다) 점차 잊혀졌다.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야자를 하고, 입시 준비를 하면서는 아예 만나지 못했다. 그렇게 나는 스무살이 되었고,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하여 상경했다.
대학생이 되었을 때 인터넷으로 사람찾기를 해본 적이 있었고 J 형을 발견하여 쪽지를 보냈었다. 형은 이미 취업을 하여 직장인이 되어 있다고 했다. 멀리 있어서 만나지는 못했다. 나는 곧 군대에 갔고, 제대한 이후에는 취업을 위해 대학원, 학점, 스펙 쌓기 하느라, 그리고 취업하고는 매일 갈려가며 일하느라, 그렇게 다시 잊혀졌다.
사실 마음만 먹으면 J 형을 언제든 다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흔한 이름이라 동명이인이 많을 테지만 그래도 감내할 수 없을 정도의 번거로움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이제는 찾지 않는 이유는,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이다.
나도 많이 변했고, 형도 많이 변했을 것이다. 어쩌면 서로를 알아보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마도 형도 나처럼 직장을 다니고,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키우고 지낼 것이다. 이십오년전 땀 흘리며 공원에서 야구를 하며 같이 놀았던 얘기는 1분으로 요약되고, 그다음에는 할 얘기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추억은 그저 아름다움으로만 남아있다.
서울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우리 집에서 조용히 8월의 맑은 하늘을 감상하다가 고개를 반대로 돌리면, 우리 아들이 쿨쿨 자고 있다. 아빠가 어렸을 때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에어컨이라는 녀석 앞에서 쾌적하게 편안하게 너무 잘 잔다.
내 아이도 몇 년 후만 지나면 8월의 이런 뙤약볕에서 공원에 야구를 하러 매주 돌아다닐 것이다. 마치 내가 J 형이랑 어울리고 다녔듯이, 아들도 자기만의 인간관계에서 어린 날의 추억을 쌓을 것이다. 그리고 관계의 시작과 끝의 의미도 마찬가지로 알게 될 것이다. 어쩌면 여행스케치의 별이진다네를 찾아 들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아름다움과 지속성이라는 것은 사실 서로 별개라는 것도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