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가 잘 찌그러져야 안전한 거라는 오해

by Forest Writer


전 세계 어디나 공학자들은 말을 길게 하지 않고, 설명도 썩 친절하지 않은 경향이 있다. 말하는 것을 귀찮아하는 것도 있고, 표현이 풍부하지 못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내가 이쯤 설명했으니 나머지는 네가 알아서 받아들여라, 라는 식이다. 주저리주저리 말할 시간에 일을 더한다. 나도 그렇고 내 주변의 다른 공학자들도 대부분 그렇다.


그래서 짧게 줄인 결론을 다른 사람들이 해석할 때, 공학자가 의도한 방향과는 전혀 다르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이것이다.


자동차는 잘 찌그러져야 안전하다.


이 말을 문장 그대로 받아들이면 큰일 난다. 공학적으로는 맞는 말이지만, 문학적으로는 아주 틀린 말이기 때문이다. 위 문장은, 절대로 자동차가 '쉽게' 찌그러져야 안전하다는 말이 아니다. 이것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마치 자동차가 종잇장처럼 구겨져야 안전한 거라고 잘못 믿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때로는 어설프게 아는 것이 아예 모르는 것보다도 더 위험할 수 있다.






'잘'과 '쉽게'라는 부사는 일상생활에서 흔히 같은 의미로 쓰인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여기서 '잘'이라는 단어는 '제대로'로 바꿔야 한다. 그래서 위의 문장은 자동차는 제대로 찌그러져야 안전하다,라고 바꿔야 한다. 쉽게 찌그러지는 소재로 차를 만드는 회사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


'제대로' 찌그러진다는 것은 '충격 시간'을 길게 갖도록 형태가 변형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충격에 관한 물리법칙은 간단하다. 같은 충격량이 들어올 때, 충격 시간이 길수록 충격력은 반비례하여 줄어든다. 즉, 충격 직전의 운동량이 동일하다고 했을 때, 운동량이 0 으로 감소하기까지 접촉하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1. 콘크리트 벽을 주먹으로 힘껏 때린다고 생각해보자. 작용-반작용 법칙에 의해 콘크리트와 사람은 같은 충격을 받게 된다. 주먹은 콘크리트에 닿자마자 바로 멈춘다. 즉, 운동량이 0 으로 감소하기까지의 접촉 시간이 매우 짧다. 그래서 큰 충격으로 벽면은 부서지고, 주먹도 부서진다. (화가 날 땐 벽 대신 베개를 때리자)


2. 이제 스펀지를 벽면에 붙이고 같은 힘으로 때린다고 생각해보자. 스펀지는 형태가 변형되기 때문에, 주먹이 스펀지에 처음 닿을 때부터 멈추기까지 접촉 시간이 길다. 그래서 충격이 완화된다. 벽과 주먹 모두 괜찮다.


3. 마지막으로 벽에 신문지를 붙이고 같은 힘으로 때린다고 생각해보자. 신문지는 주먹에 맞자마자 곧바로 찢어지고, 이것은 맨손으로 벽을 치는 것과 같은 상황이 된다. 즉, '쉽게' 구겨지는 신문지는 충격 시간을 늘릴 수 없기 때문에 아무런 충격 완화를 하지 못한다. 만약 자동차가 종잇장처럼 구겨진다면 바로 이 상황과 완전히 똑같다. 그냥 차체 없이 충돌 물체와 직접 부딪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어떤 물체에 외부 충격이 오면, 스펀지와 같은 보호층은 형태 변형이 되는 시간만큼 충격을 흡수하며, 형태 변형이 끝나는 순간이 되어서야 충격이 그다음 공간으로 전달된다. 즉, 형태 변형이 아예 없거나, 또는 너무 찰나의 순간에 순식간에 이뤄지는 경우 (신문지처럼), 충격은 다음 공간으로 그대로 전파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자동차의 가장 외부에는 충격 시에 구겨질 수 있도록 '크럼플 존'이라는 구역을 만들어 둔다. 외부에서 충격이 발생했을 때 충격 시간을 늘리도록 설계한 것이며, 이 부분이 없다면 상대 자동차는 벽에 충격하는 것과 같은 충격을 받게 되어 피해가 커진다. 즉, 본인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안전까지 고려한 충격 흡수 설계이다. (경도가 다른 두 물질이 충돌하면 약한 쪽이 먼저 깨지게 된다)


하지만 이 부분의 이름이 '크럼플 존'이라고 해서 쉽게 구겨진다는 말은 아니다. 쉽게 구겨지면 순식간에 형태가 한계점까지 변형되고 충격 시간을 늘리지 못해서 피해가 그다음 공간으로 그대로 전파된다. 즉, 쉽게 구겨지는 것이 아니라 변형 정도가 한계에 도달할 때까지 충분한 '시간 지연'을 시켜줘야 하고, 변형 한계에 도달하고 나면 외부 물체가 더 이상 들어오지 못하도록 사람이 있는 공간은 튼튼한 강성을 나타내야 한다.


결론적으로 자동차는 튼튼해야 한다. 그리고 이미 모든 자동차 회사는 여러 번의 테스트를 통해 안전성이 검증된 튼튼한 자동차 만을 판매하고 있다. 이런 튼튼함을 베이스로, 크럼플 존이 높은 복원력을 갖게 설계해서 충격 시 충분한 시간 지연을 해줘야 더욱더 안전하다. 중요한 건 '시간'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사람과 자동차의 16가지 공통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