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로만 친환경이면 친환경인가요
원자력 발전 이후에 나오는 폐연료봉 처리를 두고 정부와 지자체 간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정부는 여태까지 그래왔던대로 그냥 원전 안에 계속 보관하자 (거기가 안전하니깐), 지자체는 오랫동안 참아왔다 더 이상은 안된다는 입장입니다. 하긴, 원전 찬성 반대를 떠나, 자기 집 앞마당에 방사능 쓰레기 묻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습니다. 우스갯소리로, 서울 집값 잡는 데는 한강 변에 원전 설치하는 것만 한 게 없다고 합니다. (이론상으로는 안 될 것도 없습니다)
일단 정부의 전략은 이렇게 말장난으로 시간을 벌어놓고, 후세 사람들이 어떻게 해주겠지, 하는 생각입니다. 물론, 어떻게든 되겠지 하다가 지금 반세기 동안 안 되고 있긴 하지만. 결국 나중에 어떻게든 영구 저장 시설 부지는 정해야 하긴 하는데, 그걸 결정하는 정부는 폭탄 돌리기의 희생자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영구 저장 시설로 지정될 지역 정치인은 계란 세례 정도가 아니라, 몽둥이찜질 정도는 각오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한때 탄소 배출 '제로' 원전이 친환경 에너지원이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음, 일단 발전하는데 탄소는 안 나오죠. 그런데 시설 가동 후에 방사능 폐기물 보관 기간이 어마어마합니다. 플루토늄은 '최소' 2만 4천 년 이상, 우라늄은 '최소' 7억 년 이상이 걸립니다. 우리 7억 년 전에 뭐했는지 기억 나시는 분 있나요? 단군 할아버지가 아니라, 공룡도 명함을 못 내밀겠지요.
요즘에 전기차가 그야말로 열풍입니다. 충전이 조금 짜증 나긴 하지만, 어쨌든 힘도 좋고 조용하고 환경에도 이로운 것 같고, 얼리 어답터가 된 것 같은 하차감을 주기에 전기차 만한 게 없습니다. 매연 뿜뿜대면서 도로를 내달리는 내연기관 운전자들에 대해 상대적 뿌듯함을 느끼기에도 좋죠. "하아, 저것들 공기오염이나 시키고 말이야."
이쯤에서 생각해볼 게 있습니다. 과연 전기는 어디에서 오는가. 하늘에서 떨어지나요, 아니면 땅에서 솟아나나요. 통계자료를 보면 크게 화석연료(LNG 포함, 60 %), 원전(30%), 신재생에너지(10% 이하) 이렇게 있습니다. 전기차가 달리는 데에는, 처리하는데 7억 년 걸리는 원전의 힘도 분명히 적지 않은 셈이죠.
그럼, 일단 원전은 배제하고, 만약에 화석연료로만 전기를 생산한다고 했을 때, 전기차의 동력 효율을 생각해봅시다. 같은 화석연료라도 자동차의 동력으로 전달되는 에너지의 과정은 차이가 납니다.
-차 안에서 기름을 직접 연소시켜서 동력을 얻는 내연기관.
-발전소 안에서 석탄을 연소시켜서 전기로 변환하고, 송전선으로 이동시켜서 충전소로 보내고, 그걸 소비자가 차에 주입시키는 전기차.
전기는 수송하는 과정에서 저항으로 인한 손실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저장하는 데에도 자연 방전을 막기 위해 전기를 소모합니다. 반면에 액체 형태의 기름은 기름통을 잘 봉인만 하면 이동 과정에서 손실은 없죠. 물론 기름을 꺼내다가 뚜껑에 조금 흘리는 정도는 있을 겁니다. 일단 에너지 수송 효율 면에선 기름의 완승입니다.
보통 전기차의 전비로는 1 kWh 당 5 km 를 갈 수 있고, 1 kWh 전기를 생산하는 데는 석탄이 300 g 든다고 합니다. 즉, 1 km 주행하는데 60 g 의 석탄을 쓰는 셈이죠. 수송 과정에서 얼마나 전력 손실이 날지는 상황마다 달라서 계산이 어려울 수 있겠습니다. (플러스 알파라고 하겠습니다)
내연기관 자동차 연비는 다들 잘 알고 계십니다. 리터당 10 km 정도이니, 1 km 가는데 0.1 리터의 기름을 소모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자동차 내부에서 직접 조달하는 거라서 수송 손실은 없습니다. 보통의 가솔린의 밀도는 리터당 700 g 이니, 1 km 가는데 70 g 의 가솔린을 쓰는 셈입니다.
전기차: 1 km 주행하는데 석탄 60 g (+알파) 사용.
내연기관차: 1 km 주행하는데 가솔린 70 g 사용.
(무슨 차이...?)
사실, 정성적인 관점에서 친환경 에너지는 없습니다. 풍력, 조력, 수력 발전이 정말 환경 파괴가 없을까요? 태양광 패널 만드는데 오염이 없을까요? 재료를 가공하거나, 발전 장소를 확보하거나 하는 측면에서 무조건 오염 물질을 배출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내연기관 역시 친환경은 절대 아닙니다. (클린 디젤, 이런 말 하면 욕먹습니다)
따라서 에너지원의 친환경 여부는 정량적인 관점에서 봐야 합니다. 과연 어떻게 하면 자연 파괴를 덜 시킬 수 있을까? 재생 가능한 자연의 회복력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이런 문제들을 고민해 봐야 합니다. 일단 7억 년 걸리는 원전은 빼둡시다.
사실 신기술이란 게 실용적으로 채택되는 건 별로 없습니다. 99% 이상은 대부분 쓰레기통으로 직행하죠. 현재 예측으로는 미래의 자동차는 3파전입니다. 전기, 수소, 하이브리드. 셋 중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될지, 과연 어떤 기술 혁신이 일어나서 반전을 이루어낼지 아직은 아무도 모릅니다. (만약에 전기차가 친환경이 아니라고 밝혀지면 보조금 되돌려주나...)
언젠가 '진짜로' 친환경적이 될 수 있을지 몰라도, 현재 상황에서는 전기차에 대해 함부로 친환경이니 뭐니 하는 말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내연기관=환경오염, 전기차=친환경 이런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으로 인해, 그저 맹목적인 낙관론으로만 오해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배터리의 원료인 코발트, 리튬 물질들을 정제하는데 쓰이는 화학물질 배출, 폐배터리를 처리하는 기술의 불완전성은 조금만 찾아보면 알 수 있습니다. 엄밀히 말해서 어느 것이 '상대적으로' 더 환경 친화적인지는, 수치와 정량으로 판단하고 결정해야 합니다. 배터리의 안정성과 내구성을 감안한 잠재적 비용까지 고려해야 하는데, 현재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죠.
사실, 정량적인 데이터와 숫자를 들이민다고 해도, 정책 결정권을 가진 사람들은 수학, 공학적인 지식이 부족해서 잘 못 알아듣습니다. 공학자 입장에서 지켜보면 하루가 멀다 하고 코웃음 치게 만드는 정치인들의 실언들이 계속 나옵니다. 그렇다고 칠판 갖다 놓고 열역학 법칙부터 차근차근 설명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정책 자문단이나 산하 직원들은 얼마나 답답할까요?
정치인들의 문/이과 할당제를 해야 할까요? 만약 대통령이 문과면 총리는 무조건 이과. 국회의원도 문과 절반, 이과 절반. 이러면 얼마나 좋을까요. 꿈같은 이야기였네요. 다시 현실로 돌아와야겠습니다. 아침 뭐 먹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