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러치랑 엑셀을 같이 밟으면 어떻게 되나요

by Forest Writer


수동 자동차가 등장한 지 백 년이 지났다. 그 어마어마한 시간 동안 몇십억, 몇백억 대가 팔리고 그만큼의 인구가 운전대를 잡았는데, 아직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일이 있다. 바로 급발진이다. 이 점은, 자동차에 관심을 갖고 급발진 뉴스를 흔하게 보는 사람 입장에선 의아해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 그럼 지금 2021년 현재, 밥먹듯이 일어나는 급발진은 뭔데? 물론 그건 자동변속기 차량에 해당된다.


아직 수동 변속차량의 급발진은 단 한건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확률이 0, 즉 불가능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복권에 당첨되는 일, 운석이 집에 떨어지는 일은 언젠가 일어날 수도 있다. 그런 일은 희박하지만 확률이 존재하기는 하기 때문에, 시행 횟수가 어마 무시하게 많아지면 한 번쯤 일어나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수동 급발진은 확률이 0 이기 때문에 시행 횟수가 아무리 많아져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것은 아래 질문과 연결되어 있다.


클러치랑 엑셀을 동시에 밟으면 어떻게 되나요?


결론부터 얘기하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난다. 흔히들 엑셀을 밟으면 차가 앞으로 빠르게 나아간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엑셀이랑 차량의 속도랑은 상관이 없다. 엑셀을 밟는다는 것은 구동력, 즉 엔진 회전수를 늘리는 것이다. 클러치를 밟는다는 것은 구동력과 바퀴 회전축의 연결을 물리적으로 끊는 것이기 때문에, 엔진이 얼마나 빨리 돌던 상관없이 연결이 끊기면 그냥 헛돌기만 할 뿐, 바퀴는 묵묵히 제자리에 있다. 그냥 기름 낭비일 뿐이다.


급발진은 무언가 비정상적인 이유로 인해 엔진 회전수가 폭증하고, 그것이 바퀴로 그대로 전달되어 차가 미친 듯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말한다. 흔히 쓰이는 자동변속기는 인위적으로 엔진과 바퀴의 연결을 해제할 수 있는 방법이 없고, 기어도 전자식일 경우 중립으로 바꿀 수 없다. 결국 여기까지 가면 종교의 힘을 빌리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수동 변속차량에 어떤 문제가 생겨서 엔진 회전수가 폭증한다고 생각해보자. 그것은 엑셀을 힘껏 끝까지 밟는 경우와 같은 상황이다. 하지만 이 상태에서 클러치를 같이 밟으면? 엔진만 돌고 바퀴는 가만히 있다. 기어가 어디에 물려있든 간에 클러치를 밟으면 중립이기 때문에, 평지에 있으면 그냥 그 자리에 서고, 경사가 있으면 조금씩 아래쪽으로 밀릴 것이다. 그러면 그때 사이드 브레이크만 당기면 끝이다. 만약 클러치가 고장이 나면 어떡하나요? 클러치가 고장이 나면 애초에 출발을 할 수가 없고, 운행 도중에 클러치 케이블이 끊어질 정도의 충격이라면 애초에 차량이 멀쩡히 주행할 수가 없다. 그래서 수동 급발진이 없다.






자 그럼 수동 변속차량의 세 개의 페달을 각각 다르게 밟았을 경우의 수를 생각해본다. 크게 두 가지 상황으로 구분될 수 있다. (1)기어봉이 중립에 있는 경우 그리고 (2)기어봉이 들어가 있는 경우를 고려한다.



먼저, (1)기어봉이 중립에 있는 경우이다.

(1-1)클러치만 밟는 경우: 기어봉이 중립에 있으니 클러치는 어디 있던 상관없다. 그냥 중립이다. 평지면 제자리에 서고, 경사에 있으면 조금씩 아래쪽으로 밀린다.


(1-2)브레이크만 밟는 경우: 기어가 중립에 있고, 브레이크가 바퀴를 잡고 있으니 평지/경사에 상관없이 차는 정지해있다. 일반적인 신호대기 상황이다. 아예 사이드를 당기고, 페달을 모두 놓고 있어도 된다.


(1-3)엑셀만 밟는 경우: 기어가 중립이고, 브레이크는 풀려있고, 엔진은 공회전한다. 평지면 제자리에 서고, 경사에 있으면 조금씩 아래쪽으로 밀린다.


(1-4)클러치-브레이크를 밟는 경우: 기어봉이 중립에 있으니 클러치는 어디 있던 상관없다. 그냥 브레이크만 밟은 것과 같은 상황이다.


(1-5)클러치-엑셀을 밟는 경우: 기어가 중립이고, 브레이크는 풀려있고, 엔진은 공회전한다. 평지면 제자리에 서고, 경사에 있으면 조금씩 아래쪽으로 밀린다.


(1-6)브레이크-엑셀을 밟는 경우: 기어가 중립이고 엔진은 공회전한다. 브레이크를 잡고 있으니 평지/경사에 상관없이 차는 정지해있다. 이렇게 밟을 경우 왼쪽 골반이 뒤틀릴 수 있으니 절대 시도하지 말자.


(1-7)클러치-브레이크-엑셀을 모두 밟는 경우: 기어가 중립이고 엔진은 공회전한다. 브레이크를 잡고 있으니 평지/경사에 상관없이 차는 정지해있다. 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무릎이 아작 날 수 있으니 시도하지 말자.




그다음, (2)기어봉이 들어가 있는 경우이다. 쉽게 생각해서 1단으로 들어갔다고 가정한다.

(2-1)클러치만 밟는 경우: 기어봉이 중립에 있거나 클러치를 밟거나 둘 중 하나만 충족이 돼도 그냥 중립이다. 주행 중이라면 관성으로 어느 정도는 이동하다가, 결국 평지면 제자리에 서고, 경사에 있으면 조금씩 아래쪽으로 밀린다.


(2-2)브레이크만 밟는 경우: 주행 중이라면 속도가 줄어든다. 그러다가 완전히 멈춰 설 쯤에는, 엔진이 돌아가려는 힘보다 바퀴가 멈춰있으려는 저항력이 커지므로 시동이 꺼진다. 이 점을 방지하기 위해, 기어가 물린 상태에서 완전히 정지할 때는 클러치를 같이 밟아줘야 한다.


(2-3)엑셀만 밟는 경우: 정상 주행 상황이다. 기어가 들어가 있고, 엔진의 힘으로 차를 앞으로 밀어낸다. 내리막길 이거나 관성이 충분하면 엑셀을 떼어도 차는 잘 간다.


(2-4)클러치-브레이크를 밟는 경우: 정상적인 제동 상황이다.


(2-5)클러치-엑셀을 밟는 경우: 기어가 물려있지만 클러치를 밟았기 때문에 중립이다. 그래서 엑셀을 밟으면 공회전이다. 주행 중이라면 관성으로 어느 정도는 이동하다가, 결국 평지면 제자리에 서고, 경사에 있으면 조금씩 아래쪽으로 밀린다.


(2-6)브레이크-엑셀을 밟는 경우: 둘 중 엑셀을 더 강하게 밟는 경우는 그냥 언덕길을 오르는 주행과 같다. 브레이크를 더 강하게 밟는 경우는 속도가 줄어들다가 결국 시동이 꺼진다. 마찬가지로 시도하지 말자.


(2-7)클러치-브레이크-엑셀을 모두 밟는 경우: 기어가 중립이고 엔진은 공회전한다. 브레이크를 잡고 있으니 평지/경사에 상관없이 차는 정지해있다. 마찬가지로 시도하지 말자.






자동변속기의 급발진 문제를 해결하는 아주 간단한 방법이 있다. 바로 비상용으로 기계식 동력 해제 케이블을 만들고 페달이든 레버든 운전석 어딘가에 두는 것이다. 사실 클러치의 원리를 생각하면 하나도 어렵지 않은 값싼 기술인데, 이걸 왜 안 할까?


모든 자동화 장치는 비상시를 대비해서 수동으로 전환할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둔다. 꼭 자동차뿐만 아니라도 다른 산업분야들의 기계장치가 그렇다. 전자식 도어도 마찬가지로, 비상시에는 수동 개폐가 된다. 언젠가는 다른 자동차에도, 동력원과 바퀴 회전축의 비상용 연결 해제 기능이 생기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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