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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orest Writer Nov 28. 2021

이쯤 되면 나올 때가 됐는데, 라는 말의 위험성


길거리를 걷다 보면 로또 명당이라는 곳이 참 많다. 꽤 구체적으로 몇 등에 얼마 당첨, 이런 식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과 기대감을 확 사로잡는다. "며, 몇억이라고? 한 번 사볼까?" 복권을 사면서 대부분은 "당첨되면 뭐 살까, 강남에 건물은 어떨까" 들뜬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그리고 대개 그 꿈은 오래가지 않는다.


-로또 번호가 이런 규칙이 있네? 어? 이 번호는 한참 동안 안 나왔잖아? 그럼 이젠 나올 때가 됐지?

-OX 퀴즈가 있다. 게임을 진행하다 보니 연속으로 O 만 다섯 번이 나왔다. 이쯤 되면 X가 나올 때가 됐지?

-LG 트윈스가 삼십 년 동안 우승을 못했다. 그럼 내년에는 우승할 때가 됐지?

-OOO 선수 오늘 네 번째 타석에 들어서네요. 오늘 세 타석 안타가 없었는데, 이제 안타가 나올 때가 됐죠?

-최근 몇 번의 소개팅 동안 이상형이 안 나왔어. 이번 만남엔 괜찮은 사람이 나오겠지?




"이쯤 되면 나올 때가 됐지?"라는 한 문장 때문에,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헛된 기대감과 의미 없는 투자에 고통받고 있다. 분명한 건, '이쯤 되었다'는 거랑 나올 확률이 올라가는 거랑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한 사건이 일어날 확률이 다른 사건의 확률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 말 그대로 독립 사건이기 때문이다.


한번 로또 추첨을 하고 나면 그건 거기서 끝난 사건이고, 그대로 지나간 과거가 된다. 그럼 그때부터 확률은 다시 리셋된다. 다시 800만 분의 1로. 그 자리가 풍수지리가 어떻건, 1등이 몇 번 나왔건, 금액이 얼마건, 이 숫자가 얼마나 안 뽑혔건 상관없이 그다음 로또 추첨은 새로 시작이다. 서울에서 로또를 사건, 제주도에서 사건 당첨 확률은 똑같다. 다시 800만 분의 1. 


"이쯤 되면 나올 때가 됐지?" 보다 더 심각한 문장이 있다. "이쯤 되면 딸 때가 됐지? 여태까지 이렇게 많이 잃었는데, 이제는 좋은 패가 나올 거야." 안타깝지만 여태까지 패가 안 좋았던 건, 이미 지나간 과거이자 옛날이다. 게임을 새로 시작하는 순간 확률은 다시 리셋.


복권은 수학 못하는 사람에게 걷는 세금이라는 말이 있다. 그런 측면에서 도박은 수학 못하는 사람에게 가하는 폭력이라고 할 수 있다. 학교 다닐 때 선생님들이 수학의 중요성을 그렇게 강조했던 게 생각이 난다. 맞고 살지 말라고. 세상은 냉정하고 위험한 곳이라, 남들보다 모르면 다치는 거라고.




사실 사람들이 "이쯤 되면 나올 때가 됐지?"라고 생각하는 근거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다만 그 개념을 잘못 이해하고 있어서, 오히려 아예 모르는 것만 못해서 그렇다. 바로 큰 수의 법칙이다. 표본의 크기가 크면 표본 평균과 모평균이 비슷해진다는 뜻인데, 쉽게 풀어 말하면, 사건이 많이 일어날수록 전체적인 성공 시행의 횟수 자체가 전체 시행에 확률을 곱한 값에 가까워 간다는 말이다.


예를 들면 동전을 던지는 사건이 있다. 나오는 경우의 수는 앞, 뒤 이렇게 두 가지에 확률은 반반이다. 이제 철수, 영희, 민수 이렇게 세 사람을 불러 모아서 각자 동전을 하나씩 쥐어주고, 각자 다른 방에 들어가서 동전 던지기를 시킨다.


-각자 동전을 10번 던지세요. 철수는 앞이 4번, 영희는 3번, 민수는 8번 나왔다.

-각자 동전을 100번 던지세요. 철수는 앞이 56번, 영희는 64번, 민수는 41번 나왔다.

-각자 동전을 1000번 던지세요. 세 사람 다 앞면이 400~600번 범위에서 나왔다.


이제 세 친구의 반 급우 30명을 모두 불러보아서 동전을 각자 10000번씩 던지기로 한다. 거의 대부분의 학생에게 각각 앞면이 나온 횟수가 4876번, 5720번, 4971번..... 즉 5000번 근처에서 형성된다. 이게 큰 수의 법칙이다. 동전을 10000번 던지면, 앞면이 나온 횟수는 대략 10000 x 1/2 = 5000번 정도가 나올 거라고 기대할 수 있다. 6000번 이상 앞면이 나온 학생도 별로 없을걸? 대부분 가운데로 수렴한다. 시행 횟수가 크면 클수록 더욱더 절반에 가까워진다.


자, 그럼 큰 수의 법칙에 의해서, "여태가지 100번 던져서 앞이 30번 나왔어요. 성공 횟수가 절반에 한참 못 미치는데, 이쯤 되면 앞이 나올 때가 된 거 아니에요?"라고 물을 수 있다. 답은 '아니'다.




큰 수의 법칙은 '큰'수 일 때만 성립한다. 확률이 작을수록, 거기에 반비례하여 시행 횟수가 어마 무시하게 많이 필요하다. 로또가 800만 분의 1의 확률이고, 한 번에 살 수 있는 한계치가 있으니 한번 시행의 확률도 상한 값이 있다. 그러면 아무리 적어도 몇십만, 몇백만 번 정도는 구매해야 큰 수의 법칙이 명함을 내밀수 있다. 그 전에는 택도 없다. "이 숫자가 최근 100번 동안 안 나왔네요, 101번째에는 이게 나오겠죠?" 아니, 100번은 '작은' 수다.


게다가 그만큼의 많은 시행을 하게 되면 이미 지출한 투자금이 잠재적으로 얻을 수 있는 기대 금액을 뛰어넘어 버린다. 그렇게 되면, 판매자가 원하는 대로, 설령 당첨이 되더라도 손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로또를 산다. 수학적인 관점이 아닌 감정적인 판단으로, 이 정도의 큰 수를 투자했으니 이쯤 되면 나오겠지, 라는 착각을 한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걸어가는데 판교 근처에 와서, 이쯤 되면 다 왔겠지?


설령 몇십만, 몇백만 번 로또를 구매하더라도, 그것이 꼭 당첨된다는 보장은 절대 없다. 그저, 유의미한 '통계적 가능성' 정도가 생긴 것뿐이다. (엄청난 투자금을 지불하며) 더욱이, 그것은 '언젠가는' 되겠지이지, '다음에' 당첨되리라는 법은 절대 없다. 큰 수의 법칙은 전체적인 통계 결과만을 나타낼 뿐, 개별적인 시행은 여전히 독립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큰 수의 법칙은 판매자를 위한 법칙이다. 시행을 많이 하면 할수록 승산 없는 싸움일 뿐이면서도, 사람들은 그것을 놓지 못한다. '가능성'과 '유혹'이 눈에 아른거리기 때문이다. 조금 샀을 때는 안 보이던 그 가능성. 결국 수학적 관점과 유혹의 관점 모두에서 큰 수의 법칙은 오직 판매자만을 위한다.



메이저리그에서 50타수 무안타를 기록한 선수가 있다. "아무리 타율이 낮아도 그렇지, 설마 50번이나 도전했는데 안타를 한번 못 치겠어?" 그런데, 진짜 못 쳤다. 타율이라는 건 시즌을 통틀어서 큰 수에서 구한 개념이라 50번 정도는 안타를 계속 칠 수도, 또는 계속 못 칠 수도 있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독립 사건이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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