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는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독서에 대한 중요성을 항상 말하셨다. 그래서 어릴 적에는 일주일에 책을 5권씩 가져다주고 수거해서 다시 다른 5권으로 바꿔주는 걸 신청해서 받아봤다. 그 시절의 나는 당연히 독서의 재미를 몰랐기에 항상 읽은 척하고 다시 넣어두고를 반복해서 일주일에 1권도 읽을까 말까 한 아이였다. 기억에는 없지만 엄마도 알아챘는지 어느 순간 책 서비스는 사라지고 없었다.
공부를 좋아하지 않았다. 물론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하겠지만 그래도 간혹 좋아하는 아이들은 있었다. 하지만 나는 자칭 뽀로로다. 노는 게 제일 좋았다. 나에게 독서는 공부랑 비슷했다. 아예 수능 공부를 하지 않아서 모의고사를 보면 처음 보는 소설 지문에 눈물을 흘리던 그런 아이였다. 엄마는 공부를 하지 않을 거면 그냥 책이라도 읽으라고 하셨지만 그 또한 듣지 않던 불효녀였다.
그렇다고 아예 책에 관심이 없던 건 아니었다. 책을 좋아하는 친구가 있었고, 서점의 분위기가 좋아서. 그리고 책을 사는 내 자신이 좋아서 종종 독립서점에 가서 책을 구매하고 읽는 등 했다. 그러다 내가 사는 동네에도
드디어 독립서점이 들어왔다. 독립서점을 구경 가는 것도 좋았고 시중에 판매하는 베스트셀러의 라인업이 아닌 서점 사장님의 취향이 듬뿍 담긴, 어떻게 말하면 아마추어일 수 있는 작가들의 기록이 담긴 책들의 향연이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나의 취향에 맞아서 한두 번씩 들린다는 게 어느덧 독서모임에 나가고 있는 나를 발견했었다. 처음엔 호기심이었다. 다른 지역에서 자주 열리던 독서모임이 내 지역에 있다는 것이 신기했고 사장님이 고르시는 책 리스트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정말 여러 개가 있었지만 나는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를 선택했다. 여성인권에 적극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킨 사건 중 하나였고, 우물 안 개구리인 내 생각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생각 또한 궁금했다. 그리고 꼭 읽어보고 싶은 책이었지만, 남의 상황 또한 내 일처럼 버겁고 힘들어하는 나임을 알기에 혼자 읽으면 읽어야지 하는 생각만 존재한 채 읽지 않을걸 알았다.
그래서 반 강제성을 부여해서 읽고 싶었다. 그렇게 책방의 단골이 되어갔다.
동네의 독립서점, 그리고 거기서 만난 독서모임.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점점 책에 대한 순수한 흥미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사장님이 들여오는 다른 책방 사장님들의 에세이도 재밌었고, 여행과 휴식을 다룬 내용들도 취향에 맞았다. 그렇게 쭉 좋아할 줄 알았으나,
점점 흥미가 생기던 그 당시. 직장에서는 괴로움의 연속이었다. 사장의 과도한 가스라이팅과 폭언 등이 심해져 점점 실어증 증세를 앓기 시작했다. 사장이 질문을 하면 정말 당연하고 기본적인 것조차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고 말과 생각을 절었다. 생각 회로가 멈춰 머리는 하얀 백지가 되었고 말은 자꾸만 더듬어서 주변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에도 약간의 어려움이 생겼다. 간단한 문장인데 순서가 맞지 않는다. 주어는 생략되기 일수고,
그로 인해 상대방은 나에게 되묻거나 내 말을 해석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그제야 심각함을 깨달았다.
가끔씩 농담이라도 사장은 내게 "책 좀 읽어라. 무식하다." 등의 발언을 일삼았다. 나는 조금의 자신감을 내어 요즘 책도 많이 읽고 독서모임도 다닌다라고 말을 했는데 그 말은 조롱이 되어서 퇴사하는 직전까지 나를 괴롭혔다. 내가 무슨 말에 반대라도 하면 '똑똑한 니가 더 잘 알겠지.'라는 말로 돌아서 왔다. 그렇게 다시 입을 다물었다. 심각성을 깨달았어도 퇴사는 쉽지 않았고 말을 고치겠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상황이 닥치면 입을 다물고 생각은 멈췄다. 말이 정상적으로 나오기까지 시작이 제법 오래 걸렸다. 아마도 퇴사를 하고 그 사람과 멀어지면서 서서히 돌아왔던 것 같다.
그렇게 겨우 끌어올렸던 책에 대한 관심이 꺼져가고 있을 때, 다시 그 책방은 나에게 새로운 경험을 주었다. 바로 글쓰기 모임이었다. 독립출판물을 낸 작가님을 모시고 나머지 3명의 인원과 함께 매번 다른 글쓰기를 했고 매일같이 단어에 대하여 내 이야기를 쓰는 숙제도 받으면서 글 쓰는 재미를 조금씩 알아갔다.
그전까지는 나의 문체조차 몰랐는데, 모임에서 자꾸 써보고 읽어보고 다른 사람들의 피드백을 들으며 나의 문체를 알아갔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내 문장은 단순하다. 하지만 선명하다. 어떠한 상황도 나의 이야기를 곁들여서 생생하게 전달한다고 했다. 글쓰기 모임을 하면서 글을 좋아하는 마음만 는 줄 알았는데 작가님과 동기들의 애정을 받으며 주춤했던 자존감도 많이 올라갔다. 그러면서 책을 더 가까이하였다.
자존감이 다시 올라가던 시기에 사장과 다시 한번 큰 사건이 일어났고 나는 번아웃 상태가 심하게 왔었다. 모든 게 싫었다. 글 쓰는 것도 그냥 다 싫고 내 자신도 싫었다. 매일같이 기도했다. 사장과 다음 날 아무 일도 없기를. 차라리 내가 여기서 사고가 난다면 당장 내일은 일을 안 가도 되지 않을까 등의 무서운 생각들도 종종 하곤 했었다. 물론 죽고 싶다는 생각 자체는 없어서 다행이었지만, 위험한 상태임은 맞았다. 그 시절에 글쓰기 모임에서 썼던 SNS를 다시 꺼냈다. 좋은 이야기를 쓰는 게 아니라 어느덧 그 계정은 감정의 쓰레기통이 되어 있었다. 아직까지 지우지 않은 그 시절의 글을 다시 본다면 나는 정말 증오로 차오른 사람이었다.
책 읽는 것도 싫고 글 쓰는 것도 싫었다. 다 부질없어 보였다. 그렇게 주춤하던 내게 "겨울서점"이 등장했다.
원래도 보던 유튜버였지만, 정확히 무슨 영상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김겨울이라는 사람의 영상이 좋았다. 처음엔 내가 좋아하는 목소리여서 끌렸고, 그다음은 나에겐 닿을 수 없는 어려운 전공을 다뤄서 동경의 눈빛을 보냈다. 항상 배경으로 나오는 그의 서재를 가득 채운 책들이 멋있었다.
나열하자면 생각보다 긴 매력들이 뭉쳐서 자꾸만 영상을 클릭하게 되었다. 그러곤 팬이 되었다.
나도 다독을 하고 싶어졌다. 나도 누군가에게 책에 대해 설명하고 같은 마음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다. 조금 더 책을 자주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한 달에 한 권은 힘든 수치였다.
그렇게 독서량이 애매한 시절, 많은 게 불안했고 또 방황했다. 해야 하는 일들조차 모른 채 그냥 넋 놓고
매일을 살았다. 미래를 그리며 지나가는 것이 아닌 그저 이 하루, 24시간을 살아갔다. 과거와 미래는 없었고
현재만이 내게 존재했다. 그러다 "사인클"을 만났다.
과거 마인크래프트 스토리형 콘텐츠로 유명한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의 콘텐츠는 항상 '여성 서사'를 중요시하였고 그렇기에 출연진은 전부 여자였다. 스태프도 매니저를 제외하고는 전부 여성으로만 구성되어 있었다.
나는 여기서 여성연대를 배웠다. 하지만 나중에 스태프의 공론화로 알게 된 실체는, 여성들이 잘 먹고 잘 살기를 바란다던 그 사람은 본인의 스태프들만큼은 예외였다. 2021년, 시급 2000원 정도의 정산을 몇 년간 해왔다. 스태프들의 팬심을 이용하여 스태프들의 건강과 경력을 빼앗아갔다. 그 사건은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
거기서 나온 스태프들 중 구 1팀이라고 불리던 스태프들이 "사회인 게임클럽"이라는 유튜브를 만들었다.
스태프들 중 제일 좋아하던 팀이기도 했고 연대자들의 새로운 유튜브이기도 했기에 첫 방송을 한다고 했던 날이 아직도 눈앞에 선하다. 살면서 그렇게 떨어본 적이 없었다. 대학 입시 면접보다 떨렸고 취업 면접보다 더 떨었다. 내 유튜브가 아님에도 너무 반갑고 눈물로 반겼다. 과거 전생(팬들은 그 전 스태프로 소속되어 있을 때 작품을 전생이라고 표현한다.)에서 보여준 모습들은 우리가 그들을 아는 거에 정말 극극 소수였다.
팬들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었고, 항상 따스하게 응원해주는 사람들이었다. 정말로 여성들이 잘 되기를 바랐다. 나는 이들에게서 좋은 영향력을 다시 한번 배웠다. 책을 좋아하는 멤버들이 있는데 그들의 책을 흔히 말하는 손민수 한다고 하면서 따라 읽기도 하고 팬들과 책 추천을 통해서 하나씩 읽어갔다. 사인클은 나를 더 건강한 사람으로 인도했다. 조금씩 책을 잡는 시간이 길어지기 시작했다.
사인클을 보면서 여성으로만 구성된 모임을 만들고 싶었다. 콘텐츠에 대해 고민을 하다가 사인클 전생 콘텐츠들의 인물을 분석하는 타래들이 있었고 인물과 상황에 대해 각자 너무도 다른 의견들을 내는 게 재밌고 흥미로웠다. 그걸 주도하는 분은 책과 언어의 깊이가 깊은 분이었고 나는 그 분을 동경했다. 그래서 독서모임을 해보자고 제안했지만 그 분과의 방향이 달라져 같이 할 수는 없게 되었지만, 그 분의 팬으로 남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내 지역에서 내가 원하는 컨셉의 독서모임 커리큘럼을 만들었고 아는 사람들에게 권유하고 다녔다. 나의 독서모임은 '인물'을 위주로 돌아간다. 내가 그 캐릭터였다면?이라는 'IF'라는 전제를 가지고 상황을 말하는 것이 좋았다. 물론 지금은 그냥 일반 독서모임과 인물적 독서모임 그 사이를 걷고 있지만 초기 구상은 그랬다. 그렇게 직접 아는 지인 2명과 당근 마켓에서 2명의 모르는 사람들과 독서모임을 시작했다.
IF라는 상황을 전제로 말하는 독서모임도 좋았지만, 사람들의 책 취향을 수집하다 전부 다른 취향들을 가지고 있었고 대부분 독서모임을 신청하게 된 계기가 책 편식을 줄이고 싶어서 라는 대답을 보며, 자신들이 보던 장르가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책을 선정해서 책 편식을 없애고자 하는 취지로 바꾸었다. 누군가 추천한 책을 그 주의 책으로 선정하고 읽기 시작했다. 나는 모임의 주최자이기도 하고 진행과 질문 등을 구성하려면 책은 필수로 읽어야 하며 빠질 수도 없었다. 그래서 중도하차하고 싶던 책들 또한 다양하게 읽었다.
그렇게 강제성을 가진 책과 내가 원하는 책을 번갈아 가며 읽는 습관을 들였더니 이제는 책 읽는 게 SNS를 붙잡고 있는 것보다 즐거운 시간이 되었다. 책을 사는 것도 즐거웠고 나의 책 취향을 찾아가는 것이 재밌었다.
그러면서 최근에 이북리더기인 '오닉스 리프'를 들였다. 아이패드 미니 6을 이용하여 밀리의 서재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근래에 직군을 사무직으로 바꾸면서 컴퓨터를 보고 있는 시간이 증가했고 그에 따라 눈의 피로도도 급증하여 아이패드로 읽는 책들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처분을 하고 리프를 데리고 왔다.
워낙 이북러디기하면 느리고 잔상이 심한 기기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나 또한 그랬다. 하지만 리더기를 오래 써온 언니의 추천으로 리프를 샀던 건데 정말 좋은 선택이었다. 흔하게 사용하는 크레마 시리즈보다 잔상이 덜하고 빨랐으며 가벼웠다. 그리고 리디 시리즈보다 허용되는 범위가 넓었다. 밀리, 리디, 알라딘, yes24, 전자도서관 등 다양한 곳의 이북을 수용할 수 있었다. 그렇게 출퇴근길은 항상 리프와 함께한다.
우선 가벼운 무게와 눈의 적은 피로도 등으로 출퇴근의 만족도가 증가하였고 주변에 영업을 하고 다니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게 책과 점점 친해졌다. 최근에는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이라는 대본집을 독서모임때문에
읽고 있는데 너무 재밌었다. 다들 이걸 본다면, 그리고 범죄 스릴러물을 좋아한다면! 꼭 소설 말고 대본집으로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이러니 저러니 하는 다양한 이유들을 나열하였지만 내가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사실 명확했다.
예전 베스트셀러 작가들은 대부분 남성이었다. 남성의 글들이 전부 별로인 것은 아니지만 불편한 글들이 많았다. 특히나 그렇게 젖가슴을 좋아하는 남작가들이 많았다. 가부장적인 시선이 깔려있었고 그로 인해 책을 읽는 내내 심리적 불쾌감이 올라갔다. 그렇게 읽다가 마는 책들이 늘어났다. 그러면서 점점 여성 작가들이 인정을 받고 주력 작가들로 거듭되는 시기들이 왔다. 우리는 여태껏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하다 여겼던 내용들이 없는 책들을 읽기 시작했다. 소설 속에서 늘 남성의 비율이 높았었는데 어느덧 주인공은 여성으로 바뀌어갔다.
원래부터 영화 또한 여성이 주인공이 아니면 보지 않는 나였기에 책 또한 그렇게 변해갔다.
내가 늘 독서를 하면 느꼈던 불편함은 사라지고 마음속에 품었던 궁금증과 공감만이 책을 가득 채웠다.
그러면서 책 읽는 재미를 느꼈다. 현재 굉장히 유명한 김 초엽 작가님이 그 문을 열어주었다. 김초엽 작가님을 시작으로 창비 출판사의 창비 소설Y 서포터즈도 진행하면서 다양한 여성 작가님들의 작품을 만났다.
나인으로 시작하여서 스노볼 1,2권을 읽으며 내가 원했던 소설의 느낌들이 무엇이었는지 다시 깨달았다. 나는 SF도 사랑했고 판타지적 요소가 들어있는 책들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다시 깨달았다. 새벽 6시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며 다음 장을 넘겼다. 나는 점차 내 독서 취향을 알아갔다.
책이 좋아지다 보니 나 또한 그런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들이 강렬해졌다. 하지만 소설적 아이디어가 부실하였고 다른 분야는 뭐가 있나 생각하다 세상의 여성 주연의 작품들을 알리고자 하는 마음이 들었다.
여성 서사에 대한 화가 많았다. 세상은 여성을 장난감으로 혹은 성적 도구로 보는 시선들이 너무 강했다. 똑똑한 여자들을 싫어하고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는 프레임을 씌우며 그들이 잘 지내는 모습을 가만히 보지 못했다. 나는 그런 상황들이 싫었다. 여자끼리 잘 먹고 잘 사는 모습을 그린 작품들이 더욱 흥하고 알려져서 지금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도 좋은 여성 작품들의 영향을 받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자꾸만 입을 열고 글을 썼다.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임금 성차별이 심한 나라 중 하나다. 그렇기에 여성이 주연임에도 조연인 남자 배우의 페이가 더 센 경우도 많이 보았고, 같은 경력임에도 성별 하나로 연봉이 갈라지는 상황들을 많이 봤다. 이런 경우엔 사실 답이 없다. 여성 주연을 많이 보면 된다. 소비하고 알리면 된다. 그렇게 인기를 얻으면 임금은 올라가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소개하고 알리려고 한다. 작품 내 불편함은 그냥 시대적 사상으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그게 내가 글을 쓰게 만드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