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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포레스트 May 23. 2022

책_따님이 기가세요.

K-도터로 살아가며 한 번쯤 들어봤을 누군가를 위하여


 하말넘많을 알게 된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길어야 네 달 정도? 그것도 어쩌다가 알고리즘을 탄

생필품 소개를 보다가 다른 영상들도 둘러봤다. 생필품 영상에서는 큰 매력을 못 느꼈지만 다른 영상들도 궁금해서 둘러봤다. 하나둘씩 훑어보는데.. 이 사람들 정말 재밌는 사람들이다.

그 뒤로 계속 보는데 정말 눈물 빠지게 웃으면서 봤다. 그래서 나는 원래 개그형 유튜버들인 줄 알았으나

사실은 누구보다 분노하는 삶을 살던 사람들이었다. 숨겨진 3년이라는 말이 있다. 이들이 정말 열과 성을 다해 조사하고 내보낸 영상들이 있다. 성차별에 대해 다뤘고 페미니즘에 대하여 다뤘다. 항상 기득권층에서

바라보던 성별들은 그 영상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남초 사이트에 유입이 크게 되었고 각종 악플부터 거한 테러들을 병행해서 한동안 채널을 닫으며 힘들게 끌어올린 구독자와 수입을 잃었고 그 뒤로 돌아올 수 없는 영상들이 비공개로 남게 되었다. 사람들은 유튜브를 통해 표현의 자유를 펼친다고 하는데, 왜 여성은 그런 표현과 발언들마저 침묵당해야 하는 걸까?


하말넘많, 그리고 타 여성 유튜버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요즘 유튜브에 볼 것이 없다며 슬퍼하고 있었다. 아니었다. 유튜브에 볼 것이 없던 게 아니라 여성 미디어 유튜버를 몰랐던 거였다. 그들을 만나고 유튜브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고, 나는 또 하나의 여성연대를 배웠다.


이 책을 처음 접한 건 아는 동생이 책을 샀다며 보여줬다. 책 제목이 내가 정말 자주 듣던 말이라서 읽고 싶어 나중에 후기를 달라고 부탁했던 책이었다. 나는 하말넘많의 영상을 봐도 책을 낸 줄은 모르고 있다가

어느 날, 파도처럼 다른 영상을 타고 타고 가다가 그들이 낸 책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어쩐지 너무 끌리는 책이더라고.. 하말넘많이 썼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동네 책방에 입고 문의를 넣었다. 물론 요즘 인터넷 서점이 잘 되어 있어서 시키면 바로 다음 날 오지만. 이왕 시킬 거 동네 책방에서 책방 사장님도 아주 소소한 이익이라도 얻으시라고 조금 기다리지만 같이 공존할 수 있는 방안으로 선택했다.




일이 밀려 2주 정도 지나고 책이 도착했는데, 생각보다 더 공감 가는 책이었다.

원래 프롤로그는 거의 스킵하고 지나가는 사람이지만 이 책은 서솔과 강민지의 이야기니

절대로 스킵할 부분이 없으리라 생각했고 정확했다. 도입부임에도 그냥 내 얘기인 줄 알았다.


나도 어릴 적부터 궁금했던 점이 있었다. 나는 우리 집안의 양가 맏딸로 태어나서 당연히 제사를 지냈다. 큰절을 배웠고, 치마를 싫어하는 아이로 자랐으며 우리 집안의 장녀이자 외동으로 자랐다. 나랑 사촌 혹은 친척동생들도 모두가 제사를 지내는데 우리 집안 큰 맏이인 우리 엄마와 숙모는 제사에 참여를 하지 않는 것이, 하물며 현재 우리 집안에 가장 어르신인 할머니조차 제사를 지낼 때는 항상 뒤에서 지켜만 보고 있는 거였다. 이러한 가부장적 체계를 이해하기 전에는 떼를 썼다. 왜 엄마는 안 하냐고. 왜 맏이는 엄마인데 삼촌만 제사를 지내는 거냐고 계속 물었지만 원래 그러는 거라고 했다.


 결혼식에 아빠 손을 잡고 들어가는 것 또한 이해가 가지 않았다. 우리 모부님은 내가 어릴 적에 이혼을 하셨다. 이혼을 했음에도 나라는 한 가지 이유 때문에 모부님은 강제로 잦은 만남을 가졌다. 나를 끼고

놀러 가거나 밥을 먹으러 가는 등 이혼가정이라고는 생각을 못 할 정도로 자주 만났다. 나중에서야 알았다.

이게 순전히 엄마의 노력이었음을. 정말 죽도록 만나고 싶지 않은 상대를, 나중에 내가 결혼하면 아빠 손을

못 잡고 들어가면 남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을 수 있으니 적어도 결혼식에 올 수 있는 정도로는 사이 유지를

하고 있던 거였다. 아니.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만 하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적어도 외삼촌이라도

세워야 한다고 했다. 나는 반대했다. 그럴 거면 그냥 엄마가 서라고 아니면 나 혼자 들어가겠다고. 아니면 결혼을 안 하겠다고 말했다. 근데 엄마, 미안해. 딸내미가 아직은 결혼 생각이 없어서 그럴 일 자체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이 책을 읽고 있는 이유는 나도 기가 세다는 소리를 많이 들으면서 자라왔다. 특히나 애가 너무 드세요.라는

말을 들었고 툭하면 남자애들이랑 싸우고 들어왔다. 중학생 때까지 이 악 물고 나보다 덩치가 2배 이상 되는 애에게도 덤벼서 공중에서 돌아보는 경험도 해봤다. 고등학생 때는 복싱에 2년간 미쳐 살았다.


얌전한 맛이 없고 지기 싫어하는 성격과 태생부터 센 힘을 가지고 태어났다. 더구나 우리 집안의 여자들은

어디서 기가 약하다는 소리를 듣지 않는 사람들로만 이루어져 있는데 과거 여군이었던 할머니 밑에서 자란 나는 어땠겠는가. 나는 외할머니께 거의 13세까지 키워졌다. 맞벌이라는 이유로 절반의 시간은 외할머니 집에서, 절반은 친할머니 집에서 엄마와 함께 살았다. (부는 항상 다른 집에서 잤는데 그게 왜인지는 아직 모른다. 한 번도 궁금한 적 없었고 물어본 적이 없었다. 서로에게 관심이 그다지 없었다. 부는 뒤늦게 관심 있는 척을 했지만 내 기억 속에는 거의 없는 존재였다.) 그런 할머니와 살면서 그녀는 나를 정말 강하게 키우셨다.

내가 어릴 때만 하더라도 '사랑의 매'는 당연한 거였다. 사람은 맞으면서 고친다는 얘기를 당연시 여기는 사회에서 나는 나무주걱이 부러지고 깨질 때까지 맞으면서 자랐다. 몸에 멍이 가득하면서도 사랑은 또 듬뿍 받아서 맷집이 좋으며 자존감이 높은 아이로 성장하였다. 할머니는 늘 내게 "다른 사람이 네 눈을 때린다면, 너는 그의 눈을 뽑아라."라고 가르쳤다. 절대 맞으면서 자라면 안 된다고 가르침을 받았다. 그렇기에 나는 여자라고 괴롭힘을 당하고 그걸 가만히 있던 성격이 아니라는 거다. 흔히 어린 시절에 불리는 '조폭마누라'라는 별명은 새로운 학년에 올라가도 들었고, 나는 항상 지고는 못 사는 드센 아이였다.


그렇게 자라니 엄마는 걱정이 컸나 보다. 엄마는 내가 항상 연애를 시작하면 남자에게 질 줄도 알아야 한다.

너무 화를 내지 말고 고분고분해야 나중에 결혼을 하고도 불행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얘기의 배경은 친할머니와 부에게서 온 영향이었다. 우리 집은 엄마가 압도적으로 수입이 안정적인 데다

높았고 부는 빚이 많았으며 흥청망청 살기를 좋아했다. 당연히 돈은 엄마가 벌었고 키우는 건 할머니들의 몫이었기에 이러한 부분에서 갈등이 심했다.

늘 그래 왔고 아직도 없어지지 않는 레퍼토리 중 하나다. 돈을 많이 버는 여자의 월급은 존재만으로

남자의 기를 죽인다. 그래서 기가 죽었다고 말하는 부와 항상 너는 돈으로 내 아들을 무시했다고 말하는

친할머니가 있었다. 친할머니조차 우리 엄마의 월급으로 생활했음에도, 나중에 이혼하고 집 구할 때도

우리 엄마의 도움을 받았으면서 엄마에게 개 같은 년이라고 욕을 박았다. 니가 무시하니까 결혼 생활이

안 된 거라며 가스라이팅을 했다. 우리 엄마는 그런 말들에 질렸고 엄마는 내가 그런 삶을 반복하지 않길 원했기에 하는 말들이라는 것은 알지만. 엄마의 딸은 차별에 수긍하지 못하고 화가 많은 아이로 자라서 엄마가 바라는 그런 삶은 힘들지 않나 싶다.




 이 책은 나만 그런 줄 알고 살았던 K-장녀 혹은 K-도터라고 불리는 한국의 여자들에게, 혼자만 그렇게 자라온 게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같은 경험을 공유한다는 것은, 만나지 않아도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큰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저 어린 시절만 겪고 마는 이야기라면 그나마 좋으련만, 기가 센 여자들은 앞으로의 길도 가시밭길이다. 책에서 서술하듯 누군가는 대학교에 가서도 차별을 겪으며 다른 남자들보다 2배 혹은 3배의 일을 해야 동등한 대우를 받을지 모른다. 또 다른 누군가는 회사에 들어가서 성별로 인해 진급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우리는 왜 같은 조건에서 동등하게 일을 하면 살아남을 수 없는 걸까. 왜 우리 여자들은 더 치열한 삶을 살아야만 동등한 대우 혹은 그 이하의 대우를 받아야만 하는 걸까. 그런 상황에서 지치는 날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혹은 많은 여성연대를 하는 사람들과 부대끼는 관계를 통해서 지치지 않고 같이 나아갈 것이다. 일한 만큼 보상받는 그날들을 소망하며 앞으로도 계속 말하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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