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lectrical Life of Louis Wain
원래 아예 보려는 생각도 없었고 개봉을 하는지도 몰랐던 영화였다. 며칠 전 한 SNS에 잘생긴 오이로 불리는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새로운 작품을 한다는 내용을 접했고, 거기에 고양이가 나온다는 사실만 알았다.
그럼에도 보고싶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그러다 원래 약속이 있는 줄 알았던 날. 갑작스러운 파토에 혼자 뭘
하지 라고 생각했는데 '혼영'을 추천 받았다. 혼자 영화를 보는 것에 익숙하고 오히려 남이랑 보는 것보다는
혼자서 보는걸 선호하기에 그래! 혼자 영화를 보자! 했지만 스펜서는 이미 3회차 관람에, (사실 영화표만 하면 4개째이다. 예매해놓고 자버린 하루가 있어서...) 다른 영화들은 끌리는게 없었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영화가 루이스웨인.. 솔직히 말하자면 CGV에서 풀었던 스피드 쿠폰이 아니었다면 봤을까 싶었다.. 조금 늦게 들어갔지만 8천원이나 혜택을 받아서 6천원에 볼 수 있었던 점이 큰 강점이었고, 포스터가 굉장히 예쁘다. 잔잔한 그림+사랑+고양이에 대한 내용이라고만 생각했고 바로 예매를 했다.
집에서 나가기 직전 후기를 찾아봤다. 나쁘지는 않았다. 기본적인 평점은 8점정도. 다들 밝은 내용은 아니지만 중간중간 나오는 요소들이 예뻤다, 고양이가 귀엽다, 고양이가 많이 나온다, 연기력이 미쳤다.
이런 후기들이 많았기에 아 중간은 가겠구나 싶어서 봤는데 이게 웬걸..!
결론부터 말하자면 개인적으로 굉장히 무서웠고 기괴했으며 많이도 울었다 라는게 나의 평이다.
영화에 대해 다루기에 당연히 스포는 있습니다. 읽으시는 분들은 참고해주세요.
처음 시작은 정말 정신사납다 라는 말이 제일 잘 어울렸다. 루이스는 좋게 말하면 괴짜 천재였고 나쁘게 말하자면 하나를 진득하게 해내지 못하는 성격이다. 그렇기에 복싱도 배우고 부수입으로 신문에 삽화도 넣고 자신만의 오페라를 창작해서 선보이는 등 다양한 분야를 했다. 늘 바빴고 정신이 없었다. 약속 다음 바로 다음 약속. 짐을 한 가득 가지고 정신없이 어디론가 쏘간다 라는 말이 더 정확했다.
다양한 사람들의 말로 오디오가 겹쳤고 빠른 장면이 지나가고 원래도 정신 사나운 나도 '정신없어!'라는 말이
머릿 속에 남을 정도이니 말 다 했지.. 하지만 내가 위에서도 '괴짜 천재' 라고 말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는 그림을 굉장히 빠르게 '잘' 그린다는 것이다. 양 손에 꽉 쥔 연필들이 여러번 지나가면 금새 그림은 완성되었다. 사람도 동물도 모든 것을 잘 그려내는 천재 화가였다.
천재 화가는 다능하다 못해 공부마저 잘했다. 하고싶은 것도 많았고 할 줄 아는 것도 많았다.
그래서 신문삽화 일을 정규직으로 할 생각 없냐는 제안에 거절을 했다. 오페라를 해야한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오페라의 일을 의논하러 가서는 거절을 당했다. 화성악의 기초를 먼저 다지고 오라는 거였다.
그는 말했다. "내가 생각해낸 화성악이라고." 그랬더니 "그게 문제다"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루이스는
자신의 세계 안에서 살아간다. 기본 화성악의 구성 위에 자신만의 화성악이 있는 사람.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괴짜라고 칭했다. 그런 사람들은 사람들의 말이 중요한게 아니다. 본인이 만족하는게 중요한 사람들이었다.
갑작스럽게 아버지를 여의고 강제로 집안의 가장이 되었다. 6남매의 가장.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이 더 중요했던 루이스는 가장의 자질을 가질 수 없었다. 이 영화의 끝까지도 가장의 모습은 사실 보이지 않았다.
루이스의 밑엣 동생인 캐롤라인이 더욱 가장같았다. 자유를 갈구하는 어머니와 오빠 밑에서 자랐기에 실질적으로 가족을 돌보는건 캐롤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마지막까지도 가족을 우선에 두고 챙기는건 캐롤라인의 일이었다.
그렇게 동생들의 교육을 위해 가정교사를 들였다. 그렇기에 돈이 필요했고, 그 돈을 벌 수 있는 사람은 남자이자 어른인 루이스였기에 루이스를 재촉했다. 정규직 일을 하라고.
루이스는 본인이 동생들을 가르치면 되는데 왜 가정교사를 들이냐고 뭐라고 하면서 가정교사에게 돌아가달라고 말하려 그녀의 방에 무작정 들어간다. 그렇게 눈이 마주쳤고 사랑에 빠졌다.
연애에 대한 관심도 시도도 없었던 그에게 그런 느낌은 색다른 전류를 주었다. 그저 사랑에 빠졌다.
그들의 사랑은 세간의 이슈가 되었다. 가정교사라는 천민 여자와 신사의 만남.
신분의 차이도 극심했지만 우선 에밀리의 나이가 그 당시 기준으로 많았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그 둘의 사랑을 두고 '구역질'을 할 정도라고 했다. 실제로 구역질을 했다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둘은 남들의 시선과 말들보다 본인의 행복과 사랑이 더 중요했기에 결국 루이스가 청혼을
하며 둘은 따로 집을 꾸리고 살았다. 루이스는 종종 번 돈을 어머니께 부치면서 아예 안 챙기지는 않았다.
신분을 뛰어넘은 사랑. 그래서 행복했나? 아마 중간까지는 행복했을 것이다. 둘은 서로를 많이 사랑하고 아꼈으므로. 하지만 그런 사랑에도 현실적인 시련은 존재하는 법.
어느 날, 에밀리는 유방암 말기라는 처방이 내려졌다. 진단을 받은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드디어 행복해지기 시작했는데.." 였다. '똑똑한' 천민 여성으로 살아가기에 그 현실은 너무도 각박했다.
신분을 제외한 자신을 봐주는 루이스가 나타나서 각자 행복하게 살면 되는거였는데 기어코 병이라는
현실적인 문제가 그들의 발목을 잡았다. 고칠수도 없는 암 말기라는 병이 암울하기도 잠시,
그들에게 새로운 행복이 찾아왔다. 바로 아기고양이 "피터"였다.
비극적인 현실을 마주한 둘에게 구석에서 야옹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비가 세차게 오는 정원 가운데, 어디서 나타났는데 아기 고양이가 울고 있었다.
그 당시 고양이란 신을 대신하는 신비한 존재 혹은 요물 이라는 시선이 있었다. 그렇기에 반려동물은
개로 족했다. 그런 상황에서 반려동물을 고양이로 들인 것은 사실상 대단한 취향으로 치부될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에밀리와 루이스에게 그런건 안중에도 없었다. 귀여운 아기 고양이와 함께 사는 하루하루가 행복했다.
에밀리는 유독 피터를 예뻐했고 루이스에게 고양이에 대한 사랑을 그리고 오해와 편견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루이스는 아픈 에밀리에게 무엇을 해줄까 하다가 피터로 가득한 그림들을 방에 전시해서 보여줬다.
그냥 고양이를 좋아하는 에밀리가 아니라 피터를 좋아하는 에밀리에게 피터의 그림을 선물해줬다.
에밀리는 이걸 윌리엄에게 보여주라고 했다. 처음에 루이스는 거절했다. 그 사람은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그 당시에 돈이 되는건 강아지들이었다. 그럼에도 에밀리는 보여주길 원했고 윌리엄은 크리스마스 삽화로 루이스의 고양이들을 선택하게 된다. 루이스는 물었다. "고양이는 돈이 안 되잖아요. 오히려 독자들이 좋아하는건 강아지인데"라고 말했고 윌리엄의 대답이 개인적으로 좋았다. "당신은 그토록 힘든 상황에서 행복하고 따뜻한 그림을 그리는 재주가 있다고." 실제로 그랬다. 루이스는 힘들수록 따뜻한 그림을 그렸다.
그 시절이 헛되이 지나가는게 아니라 추억할 수 있는 무언가를 그렸다. 거기에는 애정이 들어갔으니 따뜻할 수 밖에 없었다.
그 그림들은 대성했다. 그저 고양이를 요물로 보던 사람들의 시선은 루이스의 그림을 통해 엉뚱하면서
귀여운 존재로 발전하였다. 이제는 신사들도 집에서 고양이를 키운다고 했다. 고양이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음지의 취향으로 치부되었는데 그걸 양지로 꺼내준 것은 루이스였다.
그렇게 루이스의 그림들은 대성하였고 이제는 본인을 키워 준 윌리엄의 곁이 아닌 다른 곳에서 더 큰 성공을
위해 떠났다. 하지만 그것이 선택의 미스였다.
본인을 같이 성장시키던 에밀리가 암으로 떠나고, 혼자서 살아가던 루이스는 저작권에 대한 중요성을 몰랐다.
길거리의 그의 그림이 넘쳐나는데 정작 루이스의 주머니는 점점 가난해지고, 돈을 보내지 못하여 루이스의
가족들도 더 많은 빚더미에 떠앉게 된다. 상황은 극악으로 떠내려가고 있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동생 마리는 조현병 진단을 받았다. 묘지에서 남자와 자면서 웃은 본인을, 가족들이 내쫓을거라고 울부짖었다. 집안의 돈은 나락으로 향한지 오래였고, 가족들은 하루하루를 견뎌내는 수준이었다.
그는 갑자기 떠오른 오랜 동업자라고 해야할까 친구라고 해야할까, 그런 관계인 윌리엄을 찾아갔다.
본인에게 현실적으로 돈을 벌게끔 해줄 수 있는 존재는 그밖에 남지 않았으니..
윌리엄에게 루이스는 생각보다 큰 존재였다. 본인이 가지고 있는 여럿 별장 중에 하나를 조건 하나만 들어준다면 싼 값에 빌려준다고 한다. 나는 보면서 노예계약 이런거면 어떡해.. 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조건은 놀라웠다. 가족을 전부 데려가라는 것이었다.아픈 마리를 포함하여 가족을 데려가서 좋은 곳에서 깔끔한 옷과 맛있는 음식이 함께라면 모두 나아질거라며 같이 가기를 제안했다. 루이스 본인도 잘 챙기지 않는 가족을 윌리엄이 챙겨주었다. 수락하고 떠난 별장은 생각보다 근사했지만 효과는 생각보다 미미했다.
이후의 루이스의 삶은 어땠나? 사랑했던 피터도 떠나고 어머니도 떠나고 마리는 정신병원으로 갔다.
중간에 새로운 뉴욕에서 새 삶을 떠난 루이스는 결국엔 망상에 휩싸여 본인의 길을 망쳤다.
중간에 망상의 정도가 심해진 것을 알았던 캐롤이 뉴욕행을 그만두고 치료받길 원했지만 루이스는 듣지 않았고 결국엔 고양이 망상들에 사로잡힌 후 본인의 방에서 어린 시절 본인을 가두며 괴롭혔던 파도에 잠식되어
소리지르며 살려달라고 외치며 모텔 직원을 마주하며 저지당한다.
또 그 이후의 삶은 어땠나? 결국엔 빈곤한 사람을 위한 요양병원에 갇혀 고양이도 키울 수 없고
자연도 볼 수 없는 삶을 살면서 그림을 그리며 연명하다 프롤로그에 나온 사람을 마주치며
그 사람의 손에 구조되어 더 나은 곳으로 이동한다. 마지막 장면은 에밀리와 피터와 함께 한
본인들만의 비밀공간에서 추억하며 끝이 난다.
중간에 엔딩인 줄 알았던 장면이 있다. 처음에는 컬러풀한 그림들이 마구잡이 다양한 형태로 나오다가 그 빛이 흩어질 때 고양이의 형상이 보이는 장면들이었다. 꽤나 긴 시간동안 다양하게 보여주는데 기괴하고 무섭다라는 생각을 했다. 나같이 그런 형상에 트라우마식으로 있는 사람은 약간 견디기 힘든 정도.
하지만 그것만큼 루이스의 머릿 속을 표현한 장면은 없었다. 개인적으로 꼽는 무서운 순간 중 하나지만 그만큼 명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줄거리를 제외하고 영화에 대해 말해본다면 이전 세대의 작품이니 하고싶은 말들이 있었다.
당연스럽게 일하는 사람과 집을 지키는 성별이 따로 존재하는 것.
(하지만 이거는 현대생활까지도 지속 중이다.)
신분제 또한 그러했다. 천민으로 속하는 가정교사는 사회적으로 늙었다는 평을 받는
나이까지 극장에 한번을 갈 수 없었고, 신사라고 불리는 계급과의 결혼은 구토를 유발하는 상황에,
나이많은 여자와 젊은 남자의 사랑 또한 금기였다. 또한 여성이 공부를 한다는 개념조차 없는 시대상이었기에 다양한 방면으로 지식이 있는 에밀리는 그것을 펼칠 기회도 없이 가정교사라는 최선의 상황 속에서 살아갔다. 나는 공부하는 여성, 똑똑한 여성들이 시대의 영향으로 위축되고 무시받던 시대를 싫어한다.
이 영화는 짜임새가 굉장히 좋았던 영화였다. 영화 자체가 가진 시간 안에서 어떻게 기승전결을 내는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이 영화는 모든 부분이 완벽했다. 지루할 틈없이 빠르게 스토리가 풀린다.
많은 영화들이 기나 결에서 아쉬운 부분들이 많았는데, 흔히 말하는 떡밥의 요소도 전부 다 풀고
탄탄한 구성력을 갖춘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