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should be allowed"
세상이 혼란스러울 때마다, 혹은 어디선가의 무력감을 느낄 때마다 생각나는 영화가 있다.
그것이 바로 <세상을 바꿀 변호인>이다. 새로운 선례를 만들어 차별을 없애려는 것. 그것이 이 영화가 만들어진 이유이며, 그전에 직접 바꿨던 변호인이 있었기에 존재할 수 있는 영화이다.
이 영화는 오롯이 "성차별" 요소에 초점을 맞춘다. 물론 세금법을 동반했지만 말이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성차별이 어디 있냐고 말한다. 여태 우리가 살아온 역사가 그러하듯 여성은 집안에서 일을 하고 남성은 밖에서 가정을 위해 헌신하며 일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한다. 오히려 여성을 위하듯, 가족을 위해 희생하지 않는 남성이 어디 있냐고 말한다. 여성들이 자유롭게 선택하여 집 안에 있음이 아님에도 여성은 집에 있는 존재로 여기고 모든 말들의 정의가 오간다.
하물며 힘겹게 들어간 하버드 로스쿨에서 학장은 여성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왜 남자 자리를 차지해 가며 하버드 법대에 왔나?"
법조계는 당연히 남성의 자리였는데 그걸 뺏으러 왔다는 듯이 온 이유를 대답하라 한다. 어떤 여성이 아버지와 같이 변호사 사무실을 차리기 위해 들어왔다고 했을 때는 끄덕였다. '남성'을 보조하기 위한 것이니까. 다른 여성은 결혼하지 않고 교사나 간호사가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들어왔다고 말하려는 순간 학장은 말을 끊어버리고 루스에게 말을 건넨다.
학장을 포함한 대다수의 법조계 사람은 성차별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법조인이 되기 위해 걸어온 루스의 모든 길에는 성차별이 발목을 잡았음에도 말한다. 그런 사람들의 시선에서는 밥그릇을 뺏으러 온, 가짜 변호사로 보였던 것일까?
루스는 이미 로스쿨에서 1등을 하는 실력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재판이 가장 많이 열린다는 뉴욕까지 가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다. 많은 곳을 가보았지만 루스에게 돌아오는 말들은 가시일 뿐.
'애는 누가 돌보나?', '둘째는 안 가지냐', '와이프들이 질투한다.', '성적이 좋아서 기가 셀 것이다.' 등의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루스를 거절한다. 실력이 충분한 것을 아는데도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더 많은 이유를 들며 결국 지원한 13곳은 떨어지고 만다.
결국 취직한 곳은 '흑인교수'를 대신한 교수직. 누구보다 변호사가 되고 싶었던 루스의 꿈은 그렇게 꺾였다. 아무도 기회를 주지 않고 말이다. 그렇게 무기력하게 교수 생활을 하던 중 남편 마틴이 흥미로운 사건 하나를 들고 루스를 찾아왔다. 항상 여성이 주체가 되었던 성차별이 이번엔 역으로 남성이 차별받은 사례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부모를 부양하는 것은 미혼 여성이 해야 하는 것이라고 되어있다. 하지만 처음으로 남성이 결혼하지 않고 노모를 돌보다 간병인을 고용하여 고용비에 대해 세금감세 신청을 넣었는데 거절당했다. 모든 조건이 부합하지만 노모를 돌보는 것이 '남성'이라 안된다는 것이다. 루스는 이 재판이 선례로 남는다면, 더 많은 성차별적인 재판의 새로운 예시가 될 수 있겠구나 싶은 마음에 집중하기로 한다.
오히려 재판을 준비하면서 더 많은 성차별을 보게 되었다. 여성은 판사도, 우주비행사도 될 수 없고 탄광에도 갈 수 없다. 반대로 남성들은 간호사가 될 수 없다. 그 직업을 하고 싶은 반대의 성별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들이니까. 아직도 이런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이겠지.
"여성을 남성의 의무에서 해방된 특권층처럼 여기는데 이건 특권이 아니에요! 이건 새장이고 이 법들이 쇠창살이라고요!"
여성들도 밖으로 나가고 싶다. 일을 하고 싶다. 재판을 준비하는 상대편 변호사와 위의 학장이 나눈 대화는 더욱이 기가 막혔다. "일을 원하는 여성들은 남성보다 적은 임금을 줘도 일을 하러 갈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앞으로 우리의 아이는 집에 들어갔을 때 빈 집이 맞이해 주겠지, 여성도 돈을 버는데 남성이 그만큼보다 못 벌면 어떡하냐, 그러면 이혼율도 늘어날 것이고
그들의 시선에는 위의 말들이 오히려 세상을 망치는 일이라고 한다. 우리가 전쟁을 일으키자고 한 것도 아니고, 동등하게 인간으로 태어나서 우리도 일을 하고자 하는 것인데 말이다.
씁쓸하게도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는 남녀 임금평등도 이루지 못했다. 한국은 처참한 수준으로 격차가 벌어져있다. 오히려 줄어들고 있는 게 아니라 2023년에는 조금 더 멀어지고자 한다. 이런 무기력한 마음에 자꾸 찾는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