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랑 떠났던 온천 여행, 짧게 볼 콘텐츠를 고민하던 중 최근 최은영 작가님의 소설을 애니화했다는 사실이 떠올라서 선택했던 <그 여름>. 굉장히 청량한 포스터가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1시간 1분가량의 러닝 타임을 가지고 있어 부담 없이 시작하기 좋았다.
(해당 후기는 스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접점이 하나도 없었던 이경과 수이.
어느 날 걸어가던 이경은 날아오는 축구공을 맞게 되고, 그걸 찼던 수이는 사과를 하며
매일 딸기우유를 가져다주면서 그들의 관계는 시작된다.
'오늘도 오려나?' 하는 두근거림에서 '오늘은 오지 않는구나'라는 실망감이 들기까지
친구라기엔 서운하고 좋아하는 감정일까 상대도 같은 마음일까 헷갈리는 순간에
수줍어하는 수이의 얼굴과 눈빛에서 같은 마음임을 확신하며 이 영화의 도입부는 끝이 난다.
포스터부터 굉장히 청량한 여름을 보여주었지만 내게 이 영화는 큰 씁쓸함을 안겨 주었다.
전부터 그런 말이 있었지. 왜 퀴어를 다룬 영화나 소설은 비극이어야 했을까?
이건 비극보다는 현실에 가까운 이야기. 여름에 시작해서 늦가을로 끝나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가장 주의 깊게 봤던 장면은 레즈 바(bar)인 '문리버'를 두고 둘이 나눈 대화였다.
이경은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있어서 더욱 편했다는 입장이었고
수이는 우리 둘이면 족하다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둘의 다름을 느꼈다. 둘은 서로를 좋아한다. 하지만 누구도 솔직하지 않았다. 문리버를 통한 둘의 갈등은 점점 고조되어 가고, 이경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 수이에게 속이 상하고 항상 묵묵히 견뎌왔던 수이는 이경에 대한 마음을 그래왔듯 묵묵하고 조용히 그려줬다.
결국엔 표현하지 않으면,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는 사실이 더욱 맞다고 생각되는 관계 속에 그 둘의 헤어짐은 아쉬웠고 너무도 현실적으로 그려진 이별이 슬픔으로 다가왔다.
내가 꼽은 울림을 주는 장면은
"이렇게 네가 부르는 이름을 듣는 것도 마지막이겠네?"
라는 말이었다. 나는 죽음도 무섭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도 사실은 두렵다.
가장 두려운 건 앞으로 그 사람을 보지 못하고 제일 친근하게 불렀던 그 이름마저 이제는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남보다 못한 그런 사이가 되는 것.
이름이 뭐가 중요하냐고 말하는 사람은 있지만 우리는 이름을 통해 그 사람을 인식하게 된다.
이름을 꾸준히 부르지 않으면 점점 기억 너머로 사라져서 결국엔 소실된다.
나는 다른 누군가에게도 그렇게 소실되고 싶지 않고, 그 누구도 잃고 싶지 않으니까.
그 부분을 잘 보여준 영화라고 생각한다.
가볍게 보기 좋지만 현실 한 스푼이 강하게 다가오는 그런 애니메이션 한 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