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스타, 언제까지 할 건데?
바리스타를 오래 하려고 했던 건 아니었다.
내가 원하는 직업은 따로 있다고 여겼다. 커피 마시는 행위를 좋아하지만 컵노트를 작성하거나
캬페 가서 비교분석하며 마시는 편은 아니었다. 나는 커피보다는 카페를 좋아했다.
사장님의 개성이 듬뿍 담긴 작은 개인 카페들을 좋아하는 편이다.
사장님들의 이야기를 듣는 게 좋았고 작은 디테일을 비교하는 것을 더 즐겼다.
카페 아르바이트도 사실 3개월 정도만 하지 않을까 싶었다. 직원 또한 마찬가지였다. 1년 정도 할 거라고
생각했다. 바리스타라는 직종은 멀리서 봤을 때는 멋있기도 하고 여유가 있어 보이기도 한다.
바리스타를 동경하는 사람들을 몇 보았고, 바리스타가 쉬운 직업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보았다.
그래서 나에게 "바리스타 어떤가요?" 라고 물으면 5년 차인 나는 "막노동이죠." 라고 말하며 허허 웃는 편이다. 물론 이것도 카페마다 다르긴 하다. 하지만 나는 일복이 넘치는 편이었는지 항상 바쁜 매장에서 일하곤 했다. 그래서 막노동이라는 말 밖에는 이 일들을 표현할 수 없었다.
커피를 추출하는 일도, 무거운 포터필터 덕에 하루 몇 백잔씩 꾸준히 뽑으면 손목이 나가곤 한다.
일일 평균 8시간 이상을 서서 근무하기에 하지정맥류는 덤으로 생긴다. 매장이 크면 클수록 매장 청소의
업무 난이도는 극악으로 올라간다. 첫 근무했던 곳에서는 야외 테라스를 매일같이 테이블 20개, 의자 80개를 접었다 폈다 겹쳤다 해야했다. 사람과 하는 업무기에 무단 결근을 하는 아르바이트생(물론 직원도 무단결근 및 퇴사를 한다), 매 주 바뀌는 아르바이트생을 교육하고 스케줄을 짜야한다. 매장 재고를 확인하고 매 주, 혹은 매일 발주를 넣어야 한다. 바로 직전 매장에서는 거의 매일같이 발주를 넣었다. 크게 잡는 메뉴얼만 해도 이정도이다. 세세하게 들어가면 더 한 스트레스로 다양한 질병이 닥쳐온다.
세 번의 퇴사 다 근본적인 이유는 건강이었다. 첫번째 회사는 사장님과의 불화가 있었다.
잦은 가스라이팅으로 언어 능력이 많이 퇴화되었다. 말을 제대로 구사할 수 없었고 자꾸 대화 중에 주어나 목적어를 빼먹고 얘기했다. 대화를 하면 할수록 자신감을 잃었고, 자신감을 잃다보면 다시 문장을 제대로 끝마치지 못한다. 그리곤 말을 똑바로 못한다며 다시 혼난다. 이런 악순환의 반복이 찾아왔고, 못난 내 자신을 자꾸만 마주하는게 힘들었다. 매장에서 총 5년째 근무중이던 나날이었다. 하루는 친구와 맥주를 마시며 얘기했다. 너무 힘든 거 같다고. 자꾸 못난 모습을 인정하기 힘들다고. 말하던 중에 눈물을 흘렸다. 그 친구 앞에서 한 번도 운 적이 없었는데 나도 모르게 자꾸만 눈물이 흘러 말이 자꾸 중단되었다. 친구는 조용히 말했다.
"그만 둬보는 건 어때? 가게가 거기만 있는 건 아니잖아. 우리 조금만 쉬어보자."
한국인들에게 정신병이 가장 많은 이유는 '다 이러고 사는데 뭐.' 라는 생각이 깔려있다고 한다.
그래서 번아웃을 인정 못 한다. 대한민국에서 살면서 이정도도 안 힘든 사람이 어딨냐고 말한다.
나 또한 그런 생각으로 살았다. 이정도는 다들 견디면서 살고 있는 거 아닌가?
예전에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자살하는 사람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직장은 직장일 뿐 그냥 그만두면 되는데
왜 목숨까지 잃는걸까 하는 안일한 생각이 있었다. 사람은 본인이 직접 겪지 않으면 모르는 법이 맞구나.
출근길에 '차라리 차에 치인다면 오늘은 출근 안 할 수 있을텐데.' 하는 생각을 반복적으로 할 때
이제는 그만 버텨야 할 시그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 퇴사 희망 사실을 알렸고 한 달 뒤 퇴사하기로 합의하였다. 이제는, 다음을 위해 쉬어야 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