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서 버스와 도보 도합 40분가량 걸리는 치매안심센터 건물 1층엔 시니어분들이 일하시는 카페가 있다.
센터에 도착하면 나는 항상 그랬듯 엄마를 엄마네 교실에 넣어놓고(데려다 드리고) 1층으로 내려가 2500원짜리 아아(아이스아메리카노)를 시킨다. 그리고 원하는 자리에 착석함과 동시에 이어폰을 끼며 너튜브에 접속한 후 집중하기 좋은, 그렇지만 졸리지 않고 산만하지 않고 약간의 발랄함을 갖춘 비지엠을 엄선한다.
그 후 글을 쓰거나, 책을 읽거나, 친구와 카톡을 하거나, 나는 솔로를 본다.
썩 마음에 드는 비지엠이 없고 눈에 글자가 동~동~ 떠다니는 날에는 에밀리의 서재에서 박정민 배우가 읽어주는 쓸만한 인간을 듣는다. 처음엔 누군지 모르고 작가명이 본인 본명과 상당히 비슷해서 그냥 들어봤는데 꾸며쓴 솔직함과 조금의 쭈굴함이 나름 마음에 든다. 배우라길래 궁금해서 영화도 찾아봤다. 단발머리가 참 잘 어울리는 배우였다.
책은 아껴 듣고 있어 아직 다 듣진 못했다. 언제 다 들을진 모르겠다.
별거 아닌 이야기를 장황하고 길게 썼지만 여튼 내 말의 요지는
나는 엄마를 교실에 데려다주고 커피를 마시는 1시간 30분의 힐링타임을 솔찬히 좋아한다는 거다.
보통 20분 정도 남겨놓고 엄마를 픽업하러 교실로 향한다. 조금 기다리다가 엄마 수업이 끝나면 "엄마~ 오늘 뭐했오~?? 재밌었오?"를 외치며 집에 가기 전 엄마에게 화장실 한 번 다녀올 것을 권유한다.
그럼 가끔 엄마가 화장실 다녀오는 사이에 담당선생님이신 작업치료사 선생님께서는 공지해야 할 사항이나 중요 에피소드들을 말해 주신다.
센터를 다니기 시작한 한 달 반동안 선생님 입에선 걱정될만한 이야기가 나온 적이 없었다.
그래 없었다.
과거형이다.
선생님께서는
어머니가 1교시 수업중간에 화장실을 간다고 나가셨다가 20분이 지나도 안 돌아오시길래 살펴보러 갔더니 교실 옆 체조실에서 다른 반 어르신들과 체조수업을 듣고 계셨다는 이야기를 전해주셨다.
맙소사..
화장실 다녀온 그 잠깐사이에 어떤 수업을 듣고 계셨는지 까먹으셨던 거다.
밖으로 안 나가셔서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해야 하나..;;
프로페셔널한 선생님은 엄마가 당황하시지 않게 체조실에서 스무스하게 데리고 나오신 후 "어머니~오늘은 체조수업이 없어요~^^"라 말해주신 뒤 원래 반으로 원상복귀 시켜주셨다고 한다.
이 이야길 전해 들은 후 나는,
엄마가 수업받는 동안 1층 카페가 아닌 교실 바깥에 위치한 보호자 공간에서 기다리고 있어야하나를 진지하게 고민했다.
약간의 절망감과 자괴감이 고민과 함께했다.
물론 교실 밖에 보호자들이 기다릴 수 있는 공간이 있지만 보호자 공간에 비치된 의자는 직각에 딱딱해서 내 스타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어르신들이 많이 계시는 공간이다 보니 히터가 빵빵해 더위를 많이 타는 나에겐 맞지 않는 곳이었다
내가 미쵸...
신이시여, 정녕 저에게 시원한 아메리카노와 푹신푹신한 카페의자를 허락하지 않으시는 겁니까? 일주일에 두 번 2시간이 체 안 되는 건데도요? 진짜 저 작년에 마음고생 많이 한 거 알잖아요 교수님이 오달지게 태웠어도 나이팅게일의 마음으로 조원들을 품었던 저의 모습은 기억하지 못하시는 겁니까?
제가 백수여서 마음에 안 드시는 건가요?20대 중반인데 백수 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이때 백수 안 해보면 언제 백수 해본답니까?
흔히 사람들은 하늘은 견딜 수 있는 자에게 견딜 수 있는 만큼의 시련만을 주신다고 말한다.
나는 시련 안 받고 싶다
안분지족의 삶을 지향해서 아메리카노도 시럽 없이 쓰게 먹는 나이다.
화가 났다.
자꾸 나에게 시련을 주는 있는지도 없는지도 모르는 저 위에 계신 그 존귀하고 무능한 양반한테 단단히 화가 났다.
물론 난 이번 생을 120% 충실히 살다 갈 것이지만
아주 먼 훗날 내가 이 땅에서 할 일을 다 마치고 어딘가로 넘어가서 신이라 불리우는 작자를 만나게 된다면 나는 그(그녀 혹은 그 무언가)에게 힘차게 한방 날릴거다. 두 번 갈 각오로 다음생의 젖 먹던 힘까지 끌어와 원기옥 모으듯 끌어모아서 완전 힘차게 주먹을 뻗어보겠다.
인간극장에 출연하신 어떤 신부님께서는 예수님은 바쁘셔서 할 일이 너무 많기 때문에 큰소리로 이야기하지 않으면 어떤 때는 알아듣지 못해 협박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어떤 신인진 모르겠지만 자꾸 내 말을 무시하시니 나도 협박 한번 해봤다.
엄마를 기다리는 동안 카페에서 커피를 마신다. 1월 눈 내리는 날의 사진. 다들 복 많이 받으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