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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orest Green Dec 18. 2019

깊은 슬픔을 안고서도

그래도 살아야 할 이유는 있다

그래도 살아야 할 이유는 있다.
존재한다는 그 자체로만으로도 모든 것은
아름답다고 해두자.
세상에 즐비한 미움만큼이나 많은 묘비들.
묻힌 것은 흙이 된 육체가 아니라

상처나 미움에서 멈춰버린 마음의 시간들이다.
미움도 살아있어 느끼는 아름다움이라고 하자.
지나간 사간의 흔적을 탓하기 전에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지 못했던
그 순간들 속의 나를 질책하자.

그리움은 다 쓰지 못하고 남겨놓은
내 마음의 열정을 아쉬워하는 것.
그래서 진부한 추억이 지어놓은
가슴속의 집을 허물지 못하고 가끔씩
미련한 기대는 현실을 마다하고 과거로 숨는다.

인생은 살아있기에 아름답다지만
아름다움이란 그 말의 뜻에 걸맞게 산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죽고 싶을 정도로 삶이 적막하다는 친구의 목소리에 물기가 서려있었다.
친구는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용서하지 못하고 이혼으로 끝낸 것을

때론 매우 후회했다. 다시 그런 상황이 온다면

그러지 않을 거라며 오늘도 울먹였다.

두툼한 가슴속 연정의 씨앗들이
하나둘씩 싹트는 한 살 더 먹는 이때 즈음에
속절없이 울고 웃던 청춘의 한 자락에 매달린
그 어떤, 어느 날이 그리워지는 것은
그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해버린

자신의 모습이 낯설기 때문이 아니라

예측할 수 없는 앞날이 두렵기 때문이다.

지금의 내 나이쯤 되면
웬만한 고락이나 슬픔은 해탈의 경지를 넘어

그저 어지간한 세상사들은
실없는 웃음으로 지나쳐버리는

용기 있고 씩씩한 인생을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갈수록  늘어나는 삶의 무게와

갈수록 약해지는 나라는 실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하지만 난 친구에게

이런 나의 생각을  말할 수  없었다.


사는 게 다 그렇지. 힘든 것 이겨낸 만큼,
 아니 더 몇 배로 행복해질 거야.
살아있기에 미워도 하게 되고
그 미움 때문에 가끔 인생이 쓸쓸하겠지.
용서하거나 잊거나 아니면 뭔가
의미 있는 다른 일을 찾아보렴.

새로운 취미를 갖거나

네가 좋아하던 골프에 집착해봐.

이마저도 힘들다면
널 이해해줄 수 있는 좋은 사람과의
새로운 만남을 시도해보는 것은 어떻겠니?
아무튼 뭐든 다시 시작해보는 거야.

넌 잘할 수 있어.

넌 이겨낼 수 있어.

내 입으로 나온 확신 없는 위안이 위태롭다.
그저 내가 알고 있는 한 가지는
뼛속 깊은 슬픔을 안고서도
그래도 살아야 할 이유는
불투명한 병에 담겨있는,
남아있는 양을 가늠할 수 없는 오래된 와인 같은,
우리에겐 아직도 남겨진 시간이 있기에,
그리고 우리도 다른 누군가의 인생을 위한

도구 살아야 알기 때문이다.  

2006-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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