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멈춤 노동의 굴레

엄마에 대한 흐릿해지는 기억을 붙잡기 위한 기록

by 새벽숲

2019.03.31


어떻게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얼마 전에 엄마가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이 주일 전만 해도

내가 끓인 죽이 너무 맛있다고

열심히 드셔주셨었는데


다시마 멸치 표고버섯을 넣고 육수를 내고

식욕을 돋우기 위해

파 기름을 내어 야채를 때론 새우나 소고기를 볶고

불린 쌀을 넣고 육수를 넣어

끓어오르면 불을 줄이고 저어준다.


쌀을 갈아 만든 죽이 아니면

자주 저어줄 필요는 없다.


불린 쌀과 흑임자를 함께 갈아 고소하게 끓인 죽도

좋아하셨는데


더 이상 죽을 만들 이유도 없어졌고

죽을 맛있게 먹어줄 엄마도 없는데

나는 이상하게 죽이 자꾸만 만들고 싶어 져서

죽집을 내야 하나 고민했다.


엄마는 자유로운 영혼인 나에게

자꾸만 일을 하라고 강요했고

장례를 치르고 이상하게도 난 쉴 틈 없이

바로 출근을 하게 되어 지금까지 일을 하고 있다.


물론 난 엄마의 죽음을 계속해서 생각하고 싶고

곱씹어서 생각하고 싶고

마음껏 후회하며 자학하고 싶고

멍하게 울다가 소리 지르다가 잠들고 싶기도 하다.

아직 정리되지 않은 엄마 집도

말끔하게 정리하고 싶다.


그런데 엄마는 나에게 일하라고 한다.

다른 생각하지 말고 그냥 일하라고 한다.

그냥 엄마가 옆에서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만 같아서

그만 못 두고 있는데, 사실 후임자가 안 나타나서 못 그만두고 있는 실정이다.


난 엄마가 아픈와중에도 조지아에 다녀왔고

프랑스에 갈 계획도 세우고 있었다.

난 여행 떠도는 것 새로운 환경에 놓이는 것이

너무 즐겁다.

그런데

엄마의 죽음 이후 그야말로 자유의 몸이 되어버렸는데

여행 생각이 사라졌다.


엄마의 아픔은 나의 모든 시간을 쥐어짜고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늘어난 시간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엄마는 강한 사람이니까. 엄마는 긍정적인 사람이니까

그깟 질병 정도는, 그깟 아픔 정도는 그냥 가볍게 일상과 함께 할 줄 알았다.

오래도록 함께 할 줄 알았다.

난 엄마의 죽음을 늘 준비했지만 늘 외면하고 있었고

그 시간이 다가옴을 느꼈으면서도 정면으로 부딪히지 못했다.


일을 그만두고 엄마와함께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어야 했는데

결단하지 못했다.


엄마도 죽음을 늘 준비하면서도 늘 회피하고 있었어서

우리는 우리에게 다가올 시간, 임종의 시간을 미리 준비하지 못했다.


엄마가 곧 다시 일어나, 그동안 하려던 말을 속사포처럼 내뱉을 시간이 올 줄 알았다.

엄마가 밥을 못 먹어서 기운이 없어서 그런 걸 꺼야

엄마가 여러 가지 검사 때문에 피곤해서 그런 걸 꺼야

장시간 차를 타고 이동해서 그런 걸 꺼야

입원실에 다른 환자들의 무거운 공기 때문에 그런 걸 꺼야

엄마는 잠시만 이렇게

움직임이 더뎌지고 말을 하기 귀찮아지고

밥을 못 삼키고 잠이 많아지는 걸 꺼야..........

잠시만 그런 거라고 착각하고 싶었다.

병원에 오기 전만 해도 죽도 잘 먹고 전화통화도 잘하고

걷기도 잘했으니까.


병원에 온 일주일 만에

엄마는 말이 사라졌고

음식을 못 먹고

잠이 더 많아지고

입을 벌리고 숨을 쉬다가

산소호흡기를 꼈다.


노동의 굴레에 빠져 살았던 엄마의 시간

그 삶을 이어가고 있는 나의 모습

죽어가는 엄마의 손을 붙잡고

약속했다.

건강관리 잘하겠다고

좋은 남자 만나겠다고

동생 잘 보살피겠다고


자다가 일어나서 울고

꿈꾸며 울고

씻다가 울고

머리 말라다 울고

출근하며 울고

점심 먹으며 울고

퇴근하며 울고


이제 엄마가 돌아가신 지 30일이 되어가는데

점점 더 많이 울게 돼서

걱정이다.


아름다운 장례식 고요했던 화장터

아직 해지하지 않은 엄마의 핸드폰

아직 정리하지 못한 통장들과 집

딸은 다시 노동자의 삶으로 복귀해서

모든 것은 멈춤


왜 난 노동자의 삶을 살아서

엄마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지 못했는가

라는 수많은 죄책감 중 하나가

나를 자꾸 찌르는 요즘이다.



엄마의 죽음을 인식하는 순간들은

점점 더 너무나 자주 찾아오기 시작해서

우리의 눈은 점점 더 부어오르고 있다.




그래도 또

출근은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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