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중얼거림 미역국

엄마에 대한 흐릿해지는 기억을 붙잡기 위한 기록

by 새벽숲


2022.01.12


며칠 전 꿈에 엄마가 나왔다.

왼쪽 팔뚝에 상처가 생겨서

간호사한테 치료하려고 가는 중이었다.

병원에 입원해 있던 상태였던 거 같다.

엄마의 얼굴에 고통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마음이 좋지 않았다.


간호사가 치료를 잘못해서

덧이 난 거 같았기 때문이다.

치료를 하러 가는 도중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걸 깨달았다.


엄마가 마지막으로 병원에 입원했을 때

난 엄마가 당연히 탁탁 털고 일어날줄 알았다.

엄마의 말수가 점점 줄어들었지만

엄마의 마지막은 2년 정도 더 후일 것이라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다.

난 아직 엄마를 보낼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그래서 보조침대에 누워 선잠을 잘 때

엄마의 중얼거림에 부드럽게 대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엄마의 마지막 입원에 가장 후회되는 일이 그것은 아니다.

산소농도가 점점 떨어져서 호흡기를 낀 엄마는

움직임은 힘들었지만

아직 의식이 있었고 대화가 가능했다.

그런데 의사와 간호사는 소변줄을 껴야 한다고 했다.

엄마는 끼기 싫다고 강력하게 말했다.

난 당황해하는 간호사를 돌려보내고

엄마를 설득했다.


다시 그 상황이 된다면

난 절대 엄마에게 소변줄을 끼라고 하지 않을 것이다.

엄마가 화장실이 가고 싶다고 하면

난 기꺼이 내가 업고 화장실에 갈 거다.

그럴 수만 있다면……..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지금까지도 후회한다.


소변줄을 끼지 않는 건

엄마의 마지막 자존심이었고

마지막 희망이었다는 걸 나중에서야 깨달았다.

엄마는 어쩌면 퇴원을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두려웠을지도 모른다.

포기하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난 느끼지 못했다.

여전히 엄마의 임종의 시간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엄마는 곧 일어나 걷고 다시

집으로 돌아갈 거라고

아무렇지 않게 일상으로 돌아갈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어제 첫째 이모에게 전화가 왔다.

오늘이 내 생일이기 때문이다.

아마 오늘 이모는 또 하루 종일 울고 있을 것이다.

엄마가 살아계셨어도 엄마의 미역국은 못 먹었겠지만

엄마의 생일 축하한다는 카톡은 받았을 텐데


생일이 되면 엄마는

동네 정육점에서 제비추리를 끊어와

구워주었다.





난 엄마가 되는 것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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