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왕 기계톱 소리.
왕 씨 형제가 산에서 나무 벤다. 유록안길에서 왕 씨 동생의 차를 본 건 한 시간 전. 뒤따라 오는 차를 비켜주고 갈림길에서 충선 씨 네 자두밭으로 갔다. 작년 연말 어름까지 자두나무 가지치기를 마친 충선 씨는 아직 밭에 나오지 않는다. 잘린 우듬지에서 빨간 젖꼭지 같은 꽃눈이 벙글거린다. 때만 맞으면 부풀어 봉오리 터뜨릴 기세다. 얼음장 녹은 실개울엔 갈앉은 떡갈나무 낙엽 아래 중태기 몇 마리 지느러미 살살 흔들며 숨 고른다.
좀 있으면 알에서 깬 날벌레가 공중에 부옇게 날 거고 수면 가까이 스치다 아차 하는 순간 날개 젖어 물에 들러붙고 만다. 날래고 유연한 중태기 이를 놓칠 리 없다. 꼬리지느러미의 근육을 튕겨 동무보다 빠르게 솟구치면 날벌레의 고소한 맛을 제일 먼저 맛본다. 물 바닥엔 겨우내 박박 긁고 다닌 우렁이 등쌀에 먹을 만한 게 쥐 씨알도 남지 않았다. 어서어서 땅 더워지고 기온 오르길 바라는 마음 굴뚝이다.
플라이낚시는 파리나 하루살이 종류의 모양을 기막히게 본뜬 인조 미끼로 물고기를 유인한다. 캐스팅한 뒤 릴을 살살 감았다 멈췄다 한다. 물속에서 올려다보면 살아 있는 벌레가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도 물고기는 경계를 풀지 않는다. 꼬리 치며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 미끼를 따라가며 바위 뒤에 숨거나 여울에 몸 기대고 끈질긴 탐색을 한다. 어느 찰나 미끼의 움직임이 둔한 듯하다. 어라. 벌레 어디 편찮으신가. 놀이를 마치고 멀리 날아가려나. 그래도 침을 삼키고 다시 동정을 주시한다.
물고기가 날벌레를 엿살피며 섣부른 승부를 벌이지 않는 동안 물 밖의 캐스터는 점점 애가 탄다. 굴절된 시선으로도 등판에 찍힌 무늬로 송어의 근육질 몸놀림을 식별했다. 녀석은 계속 따라오면서도 절정의 입질감을 보여주지 않는다. 조심성이 많은 녀석이다. 개울 건너편 단풍나무 그늘 아래 수심이 깊은 곳에서부터 녀석을 유인하여 이쪽 여울목까지 끌어냈는데도 좀처럼 달려들지 않는다. 인조 미끼를 눈치챈 걸까. 아니다. 출조 전 장비 점검하며 옛것은 버리고 새로 정성 들여 자르고 묶고 해서 만든 것이다. 꼬박 이틀을 준비해서 나온 이른 봄의 첫 캐스팅인데. 나의 정성을 알아준다면 덥석 물어줄 텐데. 낚인다는 것과 낚는 것의 입장은 사활이 걸린 문제다. 잡아서 회 뜨거나 탕을 끓일 것도 아니다. 미늘에 걸린 물고기의 묵중한 앙탈. 거기에 달려 섬세한 줄을 타고 전해오는 전율의 몸부림. 살아나고자 하는 물고기의 몸 털기는 캐스터에겐 짜릿한 쾌감이다. 손맛을 보려고 새벽잠 반납하고 퉁퉁 불어 터진 휴게소 우동 욱여넣어 가며 달려오지 않았나. 캣치 앤 릴리즈란 생태보전 가치 철학을 철석같이 믿는 날 생각한다면 한 번 물어봐줘라.
동물학자는 수온에 적합한 체질의 물고기의 몸이 인간의 손에 닿는 순간 엄청난 화상의 고통을 느낀다는 거다. 잡아서 놔준다는 행위를 원래의 자연으로 되돌린다고 생각하는 인간의 인식은 착오라는 거다. 원래대로라면 발소리도 죽이고 지나가던 물가에서 원래 사람의 길을 따라가라는 것뿐이다. 그러나 인간이 누구냐. 생존이 무어냐. 상대를 범하지 않고 스스로 사는 존재는 전무하다. 협동하는 공동체를 이루어낸 인간의 행위와 심리는 합목적이면서 약탈적이다. 신화는 인간과 신의 이야기다. 신격화한 인간이든 인간화된 신이든 신은 인간을 너무 추어주었다. 인간은 사물을 객관화하면서 생태를 지배하려 든다. 여기에 인간의 비극이 탄생한다.
골짜기에 들어서니 왕 씨 형제 산등성이에서 나무 베는 게 보인다. 올라가려고 길 찾으니 난망하다. 산초나무 까막 덤불로 덮인 오르막 헤매다 손가락 가시에 찔렸다. 누르니 피 나온다. 당뇨 수치 재면 딱이다. 매 발톱처럼 굽은 덤불 가시가 바지 긁어댄다. 날카로운 산초 가시가 사방에서 으르댄다. 오도 가도 못하고 갇혔다.
산판 시절 정신없이 덤불 헤치고 기계톱 휘두르다 가시덤불에 갇혔다. 앞으로 가자니 가시밭길이 까마득하고 돌아보니 온 길도 이미 한참이다. 어떡하든 뚫고 나가야 한다. 동료들의 소리도 가뭇해졌다. 이미 다른 산등을 넘어갔나. 간간이 들리던 톱 소리도 끊어졌다. 푸르스름한 솔숲에 선득한 바람 들어온다. 비릿한 풀 냄새가 몰칵 끼쳤다. 나는 예서 뭐하는가. 주저앉아 담배를 물었다. 움직인 서슬에 더덕 이파리 건드렸나 진한 더덕 냄새 코를 찌른다. 가시덤불 속에서 알뿌리 키운 얼굴 좀 보자. 십자형 이파리 더듬어 밑동 찾는다. 허연 줄기 미끈한 게 여자 허벅지 같다. 파내려가니 검은 숲이 나타났다. 축축한 땅에서 고소한 밥 냄새가 났다.
왕 씨 형제는 간벌된 소나무를 벴다. 사오 년 지나 푸석한 게 불땀이나 있으려나. 동생은 쓰러진 나무를 일으켜 내놓고 형은 기계톱으로 일정한 길이로 끊었다. 마른나무 몸에 톱날이 잘 먹는다. 두부 자르는 것 같다. 물으니 톱날 씰 줄 몰라 돈 주고 갈아 왔단다. 시간 있으면 차분히 알려줄 텐데. 조심하라는 말을 던지고 가시밭 피해 에둘러 내려왔다.
한골 복진 씨는 나흘 내내 경운기로 두엄을 나른다. 사과나무 사이에 엄청난 양을 쏟는다. 자신의 축사에서 모은 소똥 거름이다. 가을이면 거름기 먹은 사과 탱글탱글 달릴 거다. 비와 섞인 퇴비는 개울 따라 강으로 바다로 달려가겠지. 복진 씨는 그게 문제가 아니다. 돈도 안 되는 사과 종자 바꾸는 데 맘이 급하다. 남의 말만 듣고 심은 사과나무 가을 경매 뚝뚝 떨어지니 암만 탐스럽게 달려도 들어간 수고가 공허하단다. 그래도 해마다 주렁한 열매 다는 산 나무 베어내긴 그렇고. 줄창 퇴비 나르는 복진 씨 너른 이마에 늦겨울 햇살 땀과 비벼져 번들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