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

by 소인

잡문(雜文)(86)

사람은 철저히 사회적 존재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사회의 맥락을 떠나선 인간의 정체를 분별할 수 없다. 그렇다면 또한 인간은 역사적 문화적 존재다. 현재의 그가 있기까지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시대 상황이 그의 현존재를 규정하기 때문이다. 문화는 삶의 양상이다. 인간은 역사적 맥락과 문화의 틈입을 비켜갈 순 없다. 하늘에서 뚝 떨어져 홀로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로빈슨 크루소도 무인도를 탈출했고 전쟁이 끝난 것을 몰랐던 일본 패잔병은 밀림의 동굴에서 수십 년을 버티며 천황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사회적 존재인 사람을 얘기하다 무인도와 밀림까지 들어갔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존엄하게 살 권리를 타고난다. 천부인권 사상이다. 그러나 남성과 여성의 생물적 결합인 인간의 탄생은 태어날 때부터 평등하지 않다. 유럽의 중산층 백인의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와 에티오피아 산간마을의 비 새는 양철 지붕 아래서 태어난 아이의 조건은 다르다. 태생의 조건은 자신의 의지가 아닌 순전히 우연의 산물이다. 각각 다른 곳에서 태어난 아이는 서로 다른 상황에서 자신의 삶을 살아낸다. 시대 상황과 문화 속에서 나름의 행복한 삶을 위해 노력한다. 유럽의 아이는 부모의 보호와 안정된 교육을 받으며 행복을 느끼고 아프리카에서 태어난 아이는 거리의 쓰레기를 주우며 하루의 끼니에 안도하며 행복감을 느낄 거다. 대륙으로 나누어 비유했지만 한 나라 안에서도 계층에 따라 삶의 편차는 크다. 조선 시대 양반 계층의 삶과 하층민의 삶은 달랐다.

전쟁이나 범죄 등 외부의 충격이 없는 단순한 차이가 이런데 만약 그러한 충격이 휩쓸고 지나면 삶의 조건은 더 악화된다. 과거에 가난은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골고루 지닌 멍에였다. 일제의 식민 지배를 거쳐 한국 전쟁의 참혹한 역사를 겪은 우리나라 대중은 자원이 파괴된 삶의 터전에서 가난 탈출을 목표로 삼았다. 도시의 공장에서 밤낮없이 기계에 매달렸고 농촌에선 보릿고개를 넘으며 산을 뒤집어 밭을 일구었다. 그럼에도 독재 정권과 자본의 유착은 이루어졌고 가난 탈출은 멀고 험했다. 쿠데타로 집권한 불의한 권력은 반공을 국시로 시민의 자유를 억누르며 굶주린 대중을 경제의 달콤한 유혹으로 내몰았다. 다행히 세계 경제의 호황으로 살림은 펴는 듯했지만 독재 정권에 저항하는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사라지거나 투옥되었다. 시민들은 이웃을 감시하고 권력은 애먼 사람을 간첩으로 꾸며 인생을 통째로 망가뜨렸다.

지금은 어떤가. 절차적 민주주의에 도달한 사회는 신자유의 격랑에 휩쓸려 각자도생의 생에 몰입한다. 행복한 삶의 열쇠는 공동체의 가치도 민주적 정치제도도 아닌 물질의 풍요와 권력을 지닌 사회적 위계의 서열이라고 철석같이 믿게 되었다. 빈부의 양극화는 청년들의 상식적 꿈도 포기하게 만들었다. 헬조선과 N포 세대의 자조적 언어의 유행은 사회의 약자인 장애인, 외국인 노동자, 성소수자,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목소리를 움츠리게 만들었다. 정치권은 시민의 불만보다 권력을 추종하고 권력 유지의 대물림에 핏대를 세운다. 생존 불안과 공포의 유동성에 휩쓸리는 바우만의 액체 근대의 시대다.

개인의 의견을 강요할 생각은 없다. 내 생각에 손뼉 치고 따라올 이도 없다. 의견을 펼치는 건 개인의 자유다. 최근에 '보편성'에 대하여 깊이 생각했다. 일반성과 더불어 만인이 함께 느끼고 공감하는 가치란 뜻이다. 예를 들어 보편적 인간의 존엄이나 공동체의 보편타당한 가치 등을 말할 때 '보편'을 말한다. 하지만 보편과 타당의 정의는 어디까지인가. 근대 유럽의 중산층 백인의 보편적 통념은 노예 매매와 식민지 쟁탈이었다. 문화의 측면에서 본다면 20세기 중반까지 지속되었던 보루네오섬 이반족의 식인 풍습은 그들에겐 문화였고 보편적 가치였다. 세계화 시대를 들먹이지 않아도 인터넷의 발달로 지구 구석까지 지식과 정보가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어제의 뉴스가 오늘엔 과거다. 세계의 소식을 손 안에서 들여다본다. 그러나 보편적 인간의 가치는 나라마다 계층마다 다른 게 현실이다. 불공정한 현실에 저항하는 소수의 목소리는 신자유주의의 각자도생과 생존의 불안과 공포에 밀려 묻히고 만다.

불공정과 맞서 싸우는 사람들의 행위는 지속 가능한 인류 공동체의 미래를 위해 소중하고 유의미하다. 몸에 정신을 담듯 물질과 정신의 가치도 함께 한다. 사회적 존재인 인간은 개인의 행복한 생과 더불어 공동체의 삶도 함께 살핀다. 현재의 곤핍한 현실과 불행한 사회 상황은 남의 일도 아니며 나와 단절된 채 흘러가는 미래는 더욱 아니다. 공동체란 인간종을 포함한 모든 생태계를 아우른다. 생산성과 효율 극대화를 통한 개발과 발전이 나와 우리의 미래를 보장하지 않는다. 더딘 발전이라도 함께 사는 상생의 가치를 도모한다. 나를 비롯한 공동의 가치를 지켜낸다. 남북 대화 분위기에 맞춰 정치권은 한반도의 평화 체제 만들기에 당을 넘어서 협력하고 사회에 쌓인 문제들을 푼다. 내 편이 아니면 배제하고 혐오하는 기울어진 사고를 바로잡기 위해 계층 간 열린 대화가 필요하다. 무너지고 일그러진 정신을 가다듬지 않으면 공동체의 방향은 파국으로 내달리게 된다. 식민과 전쟁을 경험한 우리는 군사 독재에서 민주주의의 정체성을 피땀으로 거머쥔 성숙한 시민이다. 반목과 증오는 파멸이다. 물신숭배의 사회 현상을 극복해야 한다. 고통받는 자의 희생이 아닌 공정한 분배의 실천을 통해서다.

이웃과의 대화와 연대가 정책으로 이어지려면 시민의 참여 의식을 현장에서 실천한다. 정당한 노동의 대가가 보장되는 사회, 개인의 행복을 개인의 자율로 실현하는 사회, 사회 약자의 권리가 인정되는 사회가 살 만한 세상이다. OECD 사회 지표에서 자살률, 노인빈곤율이 으뜸인 나라는 지속이 불가능한 사람이 살 수 없는 사회다. 누구도 공멸을 원치 않는다. 탐욕과 이기심에 눈멀어 사유 없이 일신의 안일만 좇는다면 우리에겐 더불어 사는 내일은 멀다. 사람과 생태를 대하는데 공정하고 차별과 혐오가 없는 사회, 양성이 평등한 세상, 소수자가 존중받은 공동체, 자유 의지로 자신의 삶을 선택하는 사회가 전망 사회다. 사람을 사람으로 환대하고 경청하며 자연과 생태를 보전하는 노력을 고르게 실천하는 가치가 에리히 프롬이 말한 '보편적 통념을 깨뜨리는 수평적 사고방식'에 가까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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