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이다.
여섯 시에 출근한다. 휴대폰의 플래시를 켜고 살금살금 신발을 꿴다. 흐린 새벽이긴 해도 해가 짧아졌다. 마당은 여전히 어둠이다. 어둠 속에서 젖은 분꽃이 농염한 낯으로 쳐다본다. 도시락과 책가방을 한 손에 들고 대문을 민다. 간밤 내린 비로 길이 젖었다. 가로등 빛에 물웅덩이가 빛났다. 지면과 대기의 온도차로 소읍은 안개에 점령되었다. 오십 미터 밖의 길은 끊어져 보이지 않는다. 뭉텅뭉텅 안개에 잘린 길을 이어가며 나간다. 경찰서 지나 보건소 사거리에 불이 환하다. 섬칫 놀라 속도를 줄이니 건너편 가게 유리창에 헤드라이트 불빛. 내 차다. 거울 속의 제 얼굴 보고 놀란 격이다. 편의점 주인이 카운터에서 존다.
이른 아침까지 깜박이는 곳은 편의점과 사거리 점멸 신호등뿐이다. 소읍의 두 개뿐인 편의점이다. 읍내의 가게와 식당, 술집들은 저녁 여덟 시면 불을 끈다. 한두 군데 통닭집이나 노래방에서 고함소리가 들릴 뿐 신시장 건너편 차부도 아홉 시면 대합실이 어둠에 잠긴다. 코로나 여파로 마스크를 낀 사람들이 눈에 띄게 늘었지만 도시와는 달리 아직도 맨 얼굴로 마트에 들어가는 사람도 있다. 삼십 년 전이나 읍의 모습은 그대론데 변한 게 있다면 소읍 외곽에 아파트와 다세대 주택이 늘었다는 거다. 하나 또 있다. 북쪽 사면에 거대한 군청이 들어섰다. 군청 옆에는 올해 완공 예정인 실내 수영장이 막바지 공사 중이다. 처음 내려왔을 때 B군의 재정자립도는 15%였다. 지금은 8%까지 떨어졌다. 전국 최하위다. 옆의 Y군과 함께 꼴찌를 다툰다. 군 면적의 85%가 산지인 지방의 살림살이는 전적으로 중앙교부금에 의존한다. 한 해 오천 억이 넘는 예산으로 공원을 짓고, 실내수영장을 짓고, 주거 빈곤층을 위한 행복주택도 짓는다. 4평의 원룸과 11평의 신혼가구 형은 미달이다. 너무 좁아터진 까닭이다.
어린이 문구사를 지나 회전로터리에서 춘양 가는 구 길을 탄다. 닭실마을 커브길에서 반대편으로 차들이 요란하게 불을 켜고 달려온다. 커브길 도니 장례식장의 불이 대낮 같다. 향나무 울타리 위로 조화 화분이 기름하게 늘어섰다. 이곳에서 한 청년을 보낸 적이 있다. 외국에서 학업을 마치고 귀국 직전의 준수한 청년의 죽음이었다. 밤비 내리는 장례식장은 말 그대로 처연한 슬픔 속에서 치러졌다. 어미는 찢어지는 마음을 엷은 미소로 때웠다. 보는 이의 가슴이 더 무너졌다.
문수산 계곡의 동네는 세숫대야 형상으로 골마다 움푹 들어간 형상인데 가뜩이나 저수지를 끼고 있어 안개가 심하다. 상향 등을 켜니 산딸나무 가로수의 아랫도리가 드러난다. 치마 속이 보이는 처녀애 같은 산딸나무는 가을이면 빨간 열매를 주렁하게 매단다. 몸집을 키우는 부사가 과수원 울타리 너머로 파란 사과알을 내민다. 계곡 마을은 논보다 밭이 많고 과수원 농사가 주다. 문수산에서 산삼 썩은 물이 흐르는 마을 앞 개울엔 돌만 들추면 성난 집게발을 치켜드는 가재가 지천이다. 습기 먹은 새벽 공기가 뺨을 두드린다.
코로나 이 단계 격상으로 휴양림은 폐쇄되었다. 예약 손님을 줄줄이 취소하고 위약금 없이 전액 환불했다. 객실 청소가 없으니 후련하다. 근로계약서에 객실 청소는 없었다. 삼교대로 돌아가는 4인의 기간제 업무범위는 휴양림 내 조경과 공동 화장실 청소, 내방객 안내 등이었다. 객실 청소는 우리보다 일주일 먼저 채용된 세 사람의 기간제 몫이었다. 며칠 후 한 사람은 그만두었다. 면접 시에 난 비인간적인 업무 지시가 아니라면 어떤 일도 하겠다고 했다. 면접관들이 웃었다. 그런데 지금은 객실 청소까지 한다. 어떤 이에게는 푼돈으로 보이지만 푼돈은 살아가는 소득이다. 세상은 푼돈을 담보로 갑질을 예사로 한다. 소읍 외곽의 산책로엔 청소원의 억울한 죽음을 알리는 현수막이 붙었다. 청소업체의 사장과 아들이 청소원의 민노총 가입을 방해하며 부당한 업무 지시와 따돌림과 욕설로 이년 동안 괴롭혔다.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생계를 걱정한 청소원은 끝까지 버텼으나 가족의 만류로 청소일을 그만둔 지 일주일 만에 심근경색으로 숨졌다. 입주민의 폭행과 갑질에 견디다 못한 아파트 경비원의 자살 등 툭하면 터지는 갑질은 사회 곳곳에 넘친다. 직업과 인권에 대한 보편적 인식이 실종된 근거는 뿌리 깊은 차별의식에 있다. 재산과 직업의 귀천이 차별적 위계를 만든다. 자본이 권력이 된 사회에서 약자는 권력의 그늘에서 음지식물처럼 살아간다. 음지식물이라도 10%의 광선은 생존에 최소 요건이다. 커다란 나무는 생각 없이 잎을 키워 빛을 덮기도 한다.
야간 근무자와 업무 교대를 하고 커피를 나눈다. 착신전화 버튼을 누르고 졸린 눈을 비비는 교대자의 등을 떠밀어 퇴근시킨 다음 이층 사무실과 일층 안내실 청소를 한다. 휴지통을 비우고 비질을 한다. 밤새 심심하던 눈 파리들이 달려들어 얼굴 주위를 맴돈다. 커피포트의 물을 갈고 탁자를 닦고 앉는다. 그때까지 TV는 전날의 야구 중계를 하거나 코로나 뉴스를 알린다. 폰을 열어 매일 외국어 공부를 한다. 하루치의 오디오를 들어가며 필기한다. 나이 들수록 외워지지 않아도 외국어 학습은 습관이 되었다. 외국어는 현장에서 익히는 게 빠르나 코로나 이후 거미줄처럼 세계로 널린 항공망은 차단되었다. 일곱 시 넘어 당직실에서 아침을 먹는다. 새벽 출근엔 도시락을 두 개 싼다. 아침과 점심이다. 광천 김과 밑반찬 그리고 건조한 즉석 국이다. 즉석 국은 자전거 여행할 때 요긴한 국거리가 되었다. 마트에선 우거지 된장국과 미역국, 북엇국 세 종류를 판다. 물 끓여 부으면 간단히 국을 먹을 수 있다. 혼밥 치고는 반찬이 넉넉하다.
아침을 먹고 계곡 위로 걸으며 주변을 순찰한다. 코로나 이 단계 이후 손님이 끊어진 숙소는 잘 만든 미니어처 같다. 계곡을 따라 경사로에 조성한 휴양림은 위아래의 산책길이 전부다. 습기를 머금은 눅눅한 공기를 마신다. 주차장 구석에 두꺼비 한 마리가 느릿느릿 기어간다. 휴양림 계곡에서 자주 만나는 두꺼비. 원래 숲의 주민이었던 두꺼비는 포장길을 건너간다. 턱을 만나 잠시 머뭇거리다 이내 마음을 정하고 돌아간다. 머루 같이 까만 눈망울이 이쁘다. 한두 번 다닌 길이 아닌가 보다.
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고 했다. 하나 삶의 속성은 변화와 성장에 있다. 처음 것을 끝까지 고집하는 사람도 부침개 뒤집듯 자신의 신념을 바꾸는 기회주의자는 변화와 성장의 맥락에서 벗어난 경우다. 개구리처럼 옴치고 뛸 수 없는 두꺼비는 벽을 만나 돌아가기를 택한 거다. 때로 인류는 벽을 부수거나 넘어가기도 한다. 벽은 막힘, 차단, 단절을 상징한다. 벽을 넘어서는 행위는 자체로 혁명이다. 벽을 넘어야 다른 세상을 만날 수 있다. 담쟁이도 무수한 손을 뻗어 벽을 타고 기어올라 푸른 하늘을 본다. 루쉰(鲁迅)은 많은 사람이 다닌 길에서 희망을 본다고 했다. 처음 길을 연 사람은 용기 있는 자였을 거다.
두꺼비는 암컷은 수컷에 비하여 몸길이가 길고 다리는 짧으며 피부 융기는 조밀하고 무늬가 좀 더 확장되어 있다. 주로 육상에서 생활하며 곤충류나 지렁이 등을 먹고 산다. 산란기에는 하천이나 늪 등에 모여들고 이 시기 이외에는 습한 곳에서 생활한다. 한국, 일본, 중국, 몽골 등지에 분포하며 민속에서는 집 지킴과 재복(업)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무거운 구름이 낮게 깔린 계곡에서 배릿한 풀냄새가 난다. 풀베기할 때나 숲 가운데 서면 눅눅한 냄새가 스민다. 혈액의 철분과 수목의 수액이 닮은 건가. 생명활동을 하는 것들의 공통점인지는 모르겠으나 산 것들은 끊임없이 생성과 사멸을 반복한다. 나무가 사는 산이 숲이다. 산은 지형으로서의 단어다. 돌산, 민둥산은 있어도 나무가 살아야 숲으로 불린다. 나무는 뿌리로부터 물관을 통해 물을 뽑아 올리고 잎을 키운다. 영양은 체관을 통해 운반한다. 나무가 생산하는 열매는 동물의 먹이가 되고 숲은 곤충과 새, 동물이 살아가는 환경을 만든다.
계곡의 임상(林相)의 주된 식생은 소나무와 잣나무, 낙엽송이며 이런 수종들은 한국전쟁을 거치며 벌거벗은 민둥산에 5,60년 전에 조림한 수종이다. 천연림의 수종이었던 상수리나무, 떡갈나무서껀 참나무류가 섞였고 박달나무, 고로쇠나무 등 교목이 자란다. 숲의 임상은 단순림보다 혼효림이 건강하다. 최근의 대형 산불로 송진을 만드는 침엽수보다 활엽수로 수종을 바꾸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임연부(林緣部)에는 때죽나무, 산수국, 참두릅, 개다래나무, 산딸기 등속의 관목이 자라고 실개울 가까이는 물봉선화, 오동나무, 싸리나무가 자란다.
산을 깎아 숙소를 지으며 주변에 나무를 심었다. 가로수는 단풍나무, 느티나무, 이팝나무를 심었고 생울타리로는 사철나무와 쥐똥나무, 가을에 활활 불타는 듯 붉은 단풍이 이쁜 화살나무를 심었다. 개울과 숙소의 석축 사이에 구절초와 돌단풍, 철쭉과 꽃잔디를 식재했고, 잔디밭을 제외한 경사면에 음지 식생인 맥문동과 수수꽃다리(라일락)를 심었다. 인위적으로 심은 나무와 숲을 이룬 나무가 함께 사는 계곡엔 곤충과 산새, 멧돼지와 고라니 등 동물이 산다. 나무는 늘 우리 곁을 지키는 경이로운 생명체다.
종일 흐린 날 산정에 비구름이 걸려 오도 가도 못한다. 부지런히 아침을 연 인부들이 숲의 허리쯤에서 움직인다. 산책로를 만드는 중이다. 괭이를 휘두르는 동작이 멀리서도 힘겹다. 홀로 계곡을 지키는 일요일 오전 답 참매미가 우는 숲을 올려다보며 숲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