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에 출근하는 날은 저수지길로 돌아간다. 차분하게 갈앉은 물빛이 보기 좋고 하루 다르게 색을 바꾸는 숲의 갈잎을 보는 것도 즐겁다. 같은 떡갈나무도 어떤 건 노랑이고 어떤 건 고혹적인 붉은 색으로 물든다. 화살나무 핏빛 단풍은 몇 차례 바람에 죄다 달아나고 앙상한 화살깃만 남았다. 때죽나무 노오란 이파리는 끈질기게 가지를 붙들고 늘어진다. 소나무와 잣나무로 이뤄진 임상은 늘 푸른 것 같았는데 가을 되니 군데군데 단풍이 들어찼다. 기온이 떨어지고 바람까지 부니 공중에 흩어지는 낙엽이 마치 새떼가 날아오르는 것 같다. 들판의 나락은 털어간 지 오래고 드문드문 배추밭에는 무 배추가 허리를 질끈 동여맨 채 하얗게 덮인 서리를 녹이고 있다. 전망 좋은 저수지가에 차를 세우고 쉬어 간다. 송이 철에 송이꾼 외엔 지나는 차가 없어 평소에도 한적한 곳이다. 라디오 음악이 낙엽처럼 또르르 굴러가다 바람이 툭 차니 하늘로 날아오른다.
코로나 펜데믹은 충격과 많은 변화를 몰고 왔다. 충격에서 벗어나 이제는 변화에 몸을 맡겨 흐름을 타야 할 때가 온 것이다. 변화를 인정하는 건 살아남고자 하는 생존의 선택이다. 인류는 위기에 대응해 선택하는 기로에서 살아냄으로써 생존을 이어왔다. 종종 선택으로 인한 실패를 맛보기도 했지만 그것은 다른 시대 상황에서 반면교사로 활용되기도 했다. 삶의 본성은 변화와 성장이다. 고착된 인식의 시스템에서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한다면 변화도 성장도 이루어지지 못한다. 패러다임(인식 체계)의 전복적 전환은 변화와 성장의 구동축이다.
생태 환경에 대한 인식과 교육과 직업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요구되게 되었다. 이제까지 당연하게 여겨진 시스템은 새로운 환경에 의해 달라지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게 되었다. 선진국이라 믿었던 미국과 유럽의 의료 시스템은 코로나 펜데믹에 여지없이 무너졌다. 부와 권력이 성공의 척도라고 믿었던 가치는 의심받을 상황이 되었다. 평온한 일상으로 일생을 마친다는 꿈은 불확실한 가능성으로만 존재한다.
일상에서의 자잘한 즐거움이 없었다면 인생은 지옥이었을 거다. 가족 간의 사랑, 친구와의 우애, 일터의 동료와의 신뢰와 격려 등 인간관계에서 인간은 생의 의욕과 기쁨을 경험한다. 즐거움의 대상은 모든 물상을 망라한다. 문학과 예술, 여행, 스포츠, 자연을 관찰하며 얻는 즐거움과 사상과 철학, 공동체를 향한 희생과 봉사가 있는 반면에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타인의 고통을 담보하는 행위도 있다.
역사는 인류가 살아온 발자취다. 문명의 발상지에서 고대인들은 문자와 언어를 발명하고 문명을 이룩했다. 세계에 대한 다양한 해석은 지역의 문화를 발달시켰는데, 물과 식량을 찾아 이동하던 집단은 철기로 무장해 타민족을 점령했다. 전쟁은 침략과 약탈, 살육으로 이어졌는데 이로 인해 문화가 섞이고 새로운 문화가 탄생한다. 산업혁명 이후 생산지와 시장을 확보하려는 욕망은 식민지를 넓히고 노예를 노동력으로 착취한다. 제국주의는 약소국에 대한 점령과 약탈을 가속화시켰는데 자본주의의 발달은 시장주의로 발전해 오늘에 이르렀다.
관광이 아닌 여행은 지금에 와서 목적과 내용이 뒤섞여 버린 듯하다. 하기야 무슨 목적을 정해놓고 하는 여행이라면 출장이나 다름 있겠냐만 작년 초부터 자전거를 타고 전국을 돌았다. 남도를 시작으로 서쪽과 동쪽을 다녔지만 여행이 끝나고 난 뒤의 미적지근한 느낌은 언제나 남았다. 오래전 지났던 고장과 도시. 모든 것이 엄청나게 변해 있었다. 사람들은 여전했는데 젊었던 나보다 나이 든 사람은 이미 떠나고 그 자리에 다음 세대가 활보하고 있었다. 몰라볼 정도로 성형을 한 사람이 목소리만 남은 것처럼 구불한 산과 강은 예전 모습이었다. 사건과 사고와 닮았다. 사고는 사고 이전의 복귀를 강하게 염원하지만 사건은 비약이나 변화의 상황이다. 역사는 사건에 의해 나아간 거다. 다리에 쥐가 나도록 페달을 밟다 끝내 언덕을 코앞에 두고 탈진해 풀밭에 쓰러져 올려다본 하늘은 물색없이 파랗고 아득했다. 울릉도의 급경사 일주도로를 브레이크를 한껏 당기고 식은땀 흘리며 내려가는 길엔 검푸른 동해의 바닷물이 섬의 옆구리를 들이받고 있었다. 실처럼 가느단 물길을 내며 나아가는 나뭇잎만 한 고깃배, 은빛으로 잘게 부서지는 파도, 튀어 오르는 날치 떼의 눈부신 비상... 어부 안용복은 배를 타고 일본에 건너가 섬나라의 무례를 꾸짖었다. 하얀 얼굴에 뱃구레에 기름 낀 조정의 관리들은 고작 관료를 참칭한 상놈을 벌해야 한다고 지껄였으니.
밀양강의 영남루와 진영의 전 대통령 생가, 주남저수지의 석양에 물든 철새의 날갯죽지, 기름한 갈대밭 사이를 끝도 없이 달렸다. 거제도 포로수용소와 통영의 밤에 찾아간 윤이상 기념관. 이국에서 잠든 음악가는 마음속으론 한 번도 고향의 바다를 떠난 적이 없었다. 생전의 그의 거실엔 고향의 모습이 커다란 사진으로 걸려 있었다. 낙동강 사상구의 자전거도로를 달리다 만난 물오리, 감천동 고갯길에서 본 성냥갑만 한 집들. 보석 같이 빛나는 삶의 불꽃들... 지리산 아래서의 한둔할 때 밤새 졸졸 흐르던 개울물 소리, 빨치산 기념관에서 느낀 선대의 뜨거운 입김과 피어린 눈물, 거창 신원리 학살 공원, 남원의 광한루, 구례 운조루의 뒤주(他人能解)에서 유이주 선생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보았고 초여름의 땡볕이 쏟아지는 고즈넉한 김주열 생가에서 불의한 정권에 저항한 민중의 한을 느꼈다. 섬진강 물길을 따라 내려간 광양에서 망국의 한을 죽음으로 항거한 지식인 매천 선생의 결의를 보았다. 광주 시내의 출근길과 대조적으로 산새 소리만 적막을 깨뜨리는 망월동 묘지에서 영령들께 머리 조아리고 돌아왔다.
1월부터 시작한 자전거 여행은 어쩌면 다시 결행하지 못할 수 있다는 조바심이기도 했지만, 오래전부터 발로 찾아가는 다크 투어를 꿈꾼 거였다. 더위가 발톱을 세우던 칠월에 의성을 향해 출발했다. 전성기가 지나 텅 빈 가게가 즐비한 의성읍, 영천 양파밭을 지나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고대 신라의 숨결이 느껴졌다. 영천, 포항을 지나 칠포 송림 해변에 텐트를 치고 밤 바다 위로 둥실 떠오른 달을 보았다. 영덕, 영양 고개에서 브레이크가 고장 나 죽을 고비를 넘겼다. 해거름 급하게 발견한 영양의 산 개울에 다시 가본 적이 있다. 시푸른 맑은 물에 몸 씻고 밥 끓이고 술 마시고 잠든 텐트 위로 빗방울이 후득후득 떨어지던 계곡의 새벽이 그리워서였다.
가을에 들어서 차로 움직였다. 안면도에 가서 태풍에 널브러진 바다의 잔해를 보고 공주 우금치에서 동학혁명기념탑을 찾았다. 백여 년 전의 눈밭 위에 뿌려진 혁명군의 함성과 물처럼 흐르던 피와 산처럼 쌓인 주검이 당장의 일처럼 선했다. 이른 아침 기념탑 밤나무 아래서 우금치의 결의처럼 들어찬 산밤을 줍고 코펠을 꺼내 라면을 삶았다.
기간제 일이 끝나는 연말께 다시 여행을 준비한다. 자전거는 창고에 고이 모셔두고 이번에는 전동킥보드를 갖고 간다. 두 달째 맞춤한 물건을 검색 중이다. 주행거리와 등판각도 30% 이상 등을 비교하던 결과 최종 후보에 오른 놈을 여행 전에 사다 시험 운전을 할 예정이다. 부산과 해남 보길도 일대를 톺아볼 건데 실은 두 곳에 지인이 산다. 지인과는 식사 한 끼만 하고 초대 등은 삼갈 생각이다. 여행 중의 호사는 사양하는 게 낫다. 사전 조사 없이 지역의 박물관을 먼저 방문하여 역사와 유적지, 인물을 검색한 후 동선을 정해 킥보드로 다닌다. 지역의 도서관을 찾으면 의외의 소득을 얻을 수도 있다. 배낭엔 간단한 소지품만 넣고 저물면 찜질방에 들어가면 된다. 주로 혼자 하는 여행을 즐긴다. 두셋이 가면 나름대로 공감하는 분위기를 즐겨도 되지만 혼자 즐기는 여행 또한 나름의 맛이 있다. 고독한 감정을 즐기며 상상에 빠지는 도락을 무엇에 견줄 것인가. 여행은 이방인이 되어 낯선 풍경에 틈입하는 충격을 감수해야 한다.
바람이 차다. 오후의 햇살이 무덤을 따스하게 어루만진다. 살아 음지로 에움길로 헤맸어도 죽어 볕 바른 양지에 누운 망자의 삶은 어땠을까. 오며 가며 산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 망자는 말이 없다. 살아 종요로운 꿈은 무엇이며 행불행의 결말은 어디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