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

by 소인

杂文 (255)

춥다.
수시로 한파주의보가 뜬다. 새벽 출근길은 싸늘한 공기로 덮였다. 앞유리의 성에를 녹이고 차를 데운 후 움직인다. 그래도 예년의 추위는 아니다. 겨울까지는 아직 멀었다. 이른 아침에 일터로 가는 차가 부쩍 줄었다. 예전에 산에서 일할 때는 서리 깔린 낙엽을 밝고 산을 올랐다. 언 손을 불어가며 기계톱의 시동 줄을 당겼다. 부릉부릉 여기저기 항공기 소음과 맞먹는 110 데시벨이 울린다. 톳나무가 쓰러지고 일꾼의 허연 입김이 터진다. 움츠렸던 산새가 날아오른다. 숲의 일원으로 살던 나무들이 차례로 선별되어 넘어진다. 그늘이 사라진다. 위생 간벌이다. 열세목, 고사목 등을 제거하고 남길 나무를 세워둔다. 말 그대로 숲의 병해충과 밀식 생장을 막기 위한 위생 처치다. 보통 1ha(3,000평)에 1.8x1.8m로 묘목을 3,000본 심는다. 어린 나무 시기의 조림지 풀베기 3~5년, 15년 후부터 간벌을 해서 4,50년 후 최종 경제목으로 생산하는 주수는 400~800주다. 그때 나무 간격은 8에서 12미터로 벌어진다. 겨울 산자락에 앙상한 숲의 주검이 새하얗게 널브러졌다. 동태처럼 뻐등뻐등한 관절이 조금씩 풀어지지만 배낭 속의 도시락은 시나브로 식어간다. 잣나무 우듬지 위에 올라탄 청설모가 일꾼의 간식을 노린다.

야간 근무자와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시며 간밤의 안부를 나눈다. 훈훈한 사무실 공기를 몸으로 끌어들이니 잠기가 슬슬 밀려온다. 단풍철이 끝나면 주말 손님도 뜸할 것 같다.

살아가는 모습을 설명할 필요도 설명할 이유도 없다.
타인은 남의 삶의 우여곡절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 단 그것이 자신의 인생에 조금이라도 관계한다면 부스러기 하나도 놓치지 않지만. 그럼에도 인간은 표현하지 않고는 배겨 나지 못하는 존재다. 관종이란 타인의 관심(특히 호감 내지 찬사)을 먹고사는 사람을 뜻하지만 타인의 감시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만큼이나 타인의 동의 내지는 호감을 먹고사는 존재가 인간이다. 종일 휴대폰에 코를 박고 사는 포노 사피엔스(Phono Sapiens)는 인류세(人類世, Anthropocen)와 더불어 현재의 상징이 되었다. 근대 인간의 고독은 다양한 표현 양식과 반응으로 자신의 존재 욕구를 표현했지만 그중에서 최악은 전쟁이다. 총칼을 대신하는 지구 상의 전쟁은 빈곤과 질병, 범죄와 혐오, 고독 등이 등장했다. 생존의 조건과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고투는 사냥터에서 더 많은 짐승을 죽이는 데 있다. 사냥하지 못하면 사냥당한다. 수많은 플랫폼으로 자신과 타인을 연결해서 관계의 고독으로부터 벗어나려 애쓰는 게 인간이다. 정치가와 연예인은 시선의 집중에서 단연 으뜸이지만 일반인도 예외는 아니다.

객실의 손님이 부쩍 줄었다.
코로나 이 단계 시행으로 칠월 개장했던 휴양림을 8월 하순 폐쇄했다. 피서철 반짝 특수로 근무자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숙소를 청소했다. 열 시 퇴실 두시 입실인데 늦게 나가고 일찍 오는 손님 탓에 비와 걸레를 들고 객실 현관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청소 상태가 불량하다고 소리 지르는 손님이 있었다. 호텔에 안 가봤냐고 부부의 삿대질과 고함 속에 근무자는 묵묵히 닦은 바닥을 다시 밀었다. (촌놈이 생전 호텔에 갈 일 있나. 호텔이 그렇게 깨끗하면 호텔로 가지 여긴 왜 와서 지랄이야.) 토악질을 목구멍으로 삼키며 이미 청소한 숙소를 파리가 낙상할 정도로 반질반질 문질렀다. 사소한 푼돈이 생계와 이어진다는 게 그들과 청소자의 차이일 뿐이다. 거개의 손님은 쓰레기 분리수거 등을 철저히 지킨다. 숙소 방마다 청소기 돌리고 공동 개수대를 반질반질 닦고 가는 방문객도 있다. 잘 쉬다 간다는 인사도 잊지 않는다. 야영 데크의 캠핑족은 뒤처리에서 단연 으뜸이다. 그들이 떠나고 난 뒤 남은 건 데크 위에 떨어진 떡갈나무 이파리와 밤하늘의 별을 헤던 그들의 온기뿐이다.

겨울 여행을 준비한다
동서남의 해안선을 따라 돌며 내륙을 더듬는 일정이다. 거창한 계획은 외려 여행의 효과와 의미를 반감시킨다. 어쩌면 정해놓은 한두 지방의 주변을 천천히 엿살피는 게 나을지도 모를 일이다. 스치는 길에서 의외의 소득이 나오는 게 여행이다. 풍경과 사람, 역사가 스민 사적지와 도서관. 예정대로라면 1,2월은 안식월이다. (실은 기간제 사업 종료로 3월부터 새로운 일자릴 찾아야 한다) 아내 눈치 보며 여행과 독서로 일상을 꾸려야겠다. 낯선 길에서 생을 마치는 꿈을 그린다. 떠나는 길 가족도 친구도 아무도 배웅하지 않아도 좋다. 영문 모르고 세상에 난 것처럼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게 인간 존재다. 홀로 태어나 많은 인연과 관계를 맺으며 산다. 기억은 흔적의 소환이지만 남은 자의 몫이다. 그도 떠나면 그의 기억도 무화된다. 삶은 무화(無化)와 생성을 반복하다 소거된다. 지구의 생리도 생성과 소멸의 순환인데 인류세에 와서 소멸은 빨라진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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