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진다. 해가 짧아졌다. 동지를 향해 달리는 절기니 밤은 치렁한 검은 옷자락을 끌고 쉬이 돌아갈 줄을 모른다. 다섯 시 어름 마지막 햇살이 때죽나무 이파리를 황금빛으로 물들인 다음에야 넘어갔는데 이내 기온이 차가워졌다. 음과 양의 중간은 서늘한 적막이 감도는 시간이다. 낮으로 남은 햇볕을 조금이라도 더 쪼일 양으로 두런대던 것들 숨죽인다. 무엇의 경계는 적막과 무거운 엄숙이 조수(潮水)처럼 드나든다. 뻘을 파먹던 칠게도 시뻘건 석양을 등에 지고 구멍 속으로 사라졌을 터. 그 많던 짱뚱어도 성질 죽이고 짠물 속에 들어앉았을 거다. 저수지의 수면과 뭍이 닿는 부분엔 빗금이 경계처럼 그어져 있다. 물을 견디지 못하는 나무는 허연 미라가 되어 바랬다. 만수와 갈수기엔 잠시 경계를 무시하지만 평소엔 일정한 수위를 유지하면서 물과 육지를 엄격하게 갈라놓는다. 낮과 밤, 땅과 물, 중앙과 주변부는 성질이 다른 질료를 끊임없이 길항하며 생태를 이룬다. 내가 조금 전에 넋을 잃고 바라본 해거름의 저녁놀도 지구가 생기고 나서부터 그랬을 거다. 달이 기울고 차고 바닷물을 끌어당기고 밀어내고 하면서 생명현상도 덩달아 움직인다. 고대인들은 진흙을 빚어 점토판에다 자신들의 생각과 흔적을 새겼다. 마을의 발목을 적시던 짭조름한 바닷물의 냄새를 그리워하던 시인은 타국으로 건너가 고대인들의 도시를 파내려 갔다. 인간의 내장을 뒤지듯 고대인의 흔적을 더듬던 그녀는 끝내 진흙에 묻혀 돌아오지 않았다. 지금도 먼 시간을 두고 점토판의 문자를 보내고 있을지 모른다. 허수경 시인. 모래벌판에 찍었을 발자국과 낯선 땅과 사막에 남겼을 그녀의 발자국은 흔적 없이 사라졌을까. 그녀의 책장은 시간의 바람에 찢겨 도시로 날아갔을까.
상대의 얼굴을 분별할 만한 어둠이 내리자 휴양림의 가로등이 켜졌다. 위쪽 숙소에 손님이 다섯 집이 들어와 고기를 굽고 야영 데크에 두 팀이 텐트를 치고 밥을 끓인다. 단풍철이 지났다고 하지만 코로나 펜데믹에 지친 사람들은 끊임없이 계곡을 찾았다. 전국에서 홈피를 검색하고 짐을 챙겨 달려온다. 평일엔 잠잠하다가 주말엔 만석이다. 떨어져 있는 숙소는 거리두기에도 맞춤이니 들어와 고기를 굽고 밤 별을 보다 잠들고 떠난다. 계곡의 양쪽 산자락에서 떨어지는 낙엽은 바람이 구 할을 쓸어갔다. 처음엔 매일같이 송풍기를 메고 다녀야 하나 걱정했다. 우수수 떨어져 쌓이는 낙엽더미를 보면서 근심도 쌓여 갔는데 바람이 불고 나자 이내 근심은 사라졌다. 생태의 순환을 몰라도 한참 몰랐던 꼴이라니. 나중에 구석에 처박힌 나뭇잎만 쓸어내면 될 일이었다. 임시 폐쇄로 구월 한 달 내내 공공근로 아줌마들과 잔디밭을 기어 다니며 잡초를 뽑았는데 나중엔 뽑을 잡초도 보이지 않아 현미경으로 관찰하는 사람처럼 땅바닥을 들여다보며 다녔다.
어둠이 칠흑으로 변했다. 어둠은 각도에 따라 세 등분, 다섯 등분으로 나뉜다. 빛의 반사와 차단, 그늘의 부분조차 완전한 검정은 아니란 의미다. 물감은 무겁고 가벼움에 따라 색감도 달라진다. 태초의 어둠인 칠흑은 광산 막장에서 경험한 적 있다. 수목도 음수와 양수가 있지만 완전한 칠흑에서 자랄 수 있는 식물은 없다. 콩나물조차 검은 차도르를 뒤집어쓰고 보이지 않는 틈을 통해 노랗게 자란다. 모든 것은 상호 길항하면서 생명현상을 나타내는데 애초에 뜻은 없다. 나고 자라다 소멸한다. 끊임없는 생성과 소멸의 반복이 '스스로 그러한' 자연의 섭리다. 사람들은 자연에 기대하기도 자연을 거스르기도 하면서 살아왔다. 툰드라의 동토층이 녹으면서 바이러스가 튀어나온다는 얘기는 더 이상 인간은 자연을 거스르거나 정복할 수도 만물의 으뜸일 수도 아니란 의미가 되었다. 코로나 펜데믹의 충격으로 이제는 삶의 방식을 바꿀 때가 되었다. 얼마나 동의할 진 몰라도 포노 사피엔스의 시대에 변화의 물결을 타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게 되어 간다. 요컨대 우리가 정의한 것들이 불확실성으로 드러난 것일지도 모르겠다. 며칠 전 누군가의 발설을 전해 들었다. 젊은 사람이었는데 상대가 상황에 대한 불합리를 말하자 '지나간 일은 얘기하지 맙시다'라더란다. 그 말을 곰곰 생각하다 무서운 사고방식이란 게 떠올랐다. 묻어두고 새로 시작해서 될 일이란 게 있을까. 역사도 실수도 잘못도 덮어두고 앞만 보고 산다면 대체 우리가 사는 이유란 무엇이란 말인가. 역사 수정주의자가 생각났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과거는 잊고 상생하자는 정치 집단의 토악질 나는 너스레도 떠올랐다. 마지막 선거에서 낙선한 어떤 정치꾼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성공한 도둑질은? 성공한 전쟁이란 게 있기는 있단 말인가.
박완서 선생은 '고통은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견디는 것이다'라고 했다. 삶의 상황에서 부딪치는 고통에서 인간은 천지 불인(天地不仁)을 경험한다. 본시 극복하고 이겨내는 대상이 존재하기는 하는가. 인간이 만들어낸 허구의 상상력이 에베레스트를 정복하고 자연과 바다, 우주를 넘본다. 넘볼 걸 넘봐야지 그냥 부딪치는 사건 아니었나. 물론 시대적 상황과 조건에서 인간의 의지는 도드라졌으리라. 물과 섞은 밀가루를 치대어 적당한 반죽을 빚어내듯 인간의 의지는 우연성과 빚어져 역사를 만들어 왔다. 삶에 대한 열정과 진지함, 모든 물상에 대한 배려의 상상력이라는 공감. 이것들이 삶을 견뎌내게 하는 힘이 된다. 도시락을 씻고 계곡으로 올라갔다. 멀리 숙소의 불빛이 찬 공기 속에 따스하게 가물거린다. 군데군데 가로등과 외등이 어둠을 밀어내지만 앙상한 가로수 가지에 걸리고 만다. 형해화된 백골의 정강이뼈를 닮은 가지가 불빛을 받아 드러난다. 숨어 있는 겨울눈이 터지는 봄까지 내내 잠들어 있을 거다. 계절의 순환과 인생의 변곡점에 옹이처럼 박인 삶의 흔적조차 먼지처럼 사라질 거다. 움직이거나 여행하며 자신을 드러내거나 감추는 존재란 얼마나 외로울 건가. 칠흑의 경계에서 떠도는 의식은 따스함으로 안식을 얻을 수 있을까. 하루가 빠르게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