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

by 소인

杂文 (261)

야간근무 첫날.
칠흑의 캄캄한 시골길 가다 출근 시간 맞춰 쉴 요량으로 일찍 집 나섰다. 내린 눈은 제설차가 밀고 모래와 염화칼슘을 마구 뿌린 탓에 언 곳이 별로 없다. 약수탕 지나 가재골 내리막길을 느린 속도로 내려가는데 이런! 왼쪽 헤드라이트 불속으로 고라니가 뛰어든다. 브레이크를 밟았다. 고라니는 태연하게 차 앞을 지나갔다. 앞유리창에 툰드라의 거대한 순록의 얼굴이 하얗게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마터면 부딪칠 뻔했다. 길을 건넌 녀석은 눈밭에 서서 곁눈으로 나를 살핀다. 마치 '그까짓 걸 가지고 뭘 그래'라는 투다. 놀라고 어이가 없어 사진 담는 걸 깜빡하고 가던 길 갔다. 휴양림으로 가는 길은 길가의 마을과 과수원, 길 따라 흐르는 도랑 외엔 뾰족한 산이 계곡을 이뤄 한적하다. 새벽 출근 때 너구리 가족이 길 건너는 것 도 몇 번 봤다. 하마터면 로드킬의 가해자가 될 뻔했다. 낮에도 안동 다녀오는 길에서 도로 한가운데 널브러진 고양이의 사체를 보았다. 길 뚫리고 차 다니고부터 야생동물의 수난은 끊이지 않는다. 방금 전까지 팔딱이며 뛰던 심장이 길 위에서 싸늘하게 식어간다. 밀렵과 올무와 덫에 희생되는 건 부지기수. 한 종이 여럿의 생태종을 죽인다.

불편과 개발의 부진을 참지 못하는 사람들은 굽은 길을 펴고 길 위에 길을 낸다. 사통팔달이 아니라 거미줄처럼 친친 얽힌 길을 아편 먹은 사람처럼 깔고 만든다. 산을 뚫고 다리를 놓고 물을 건너고 고가도로를 올려 길 위에 길이다. 청량산 봉우리를 내려와서 다시 오르는 불편을 참지 못해 봉우리와 봉우리를 다리를 놓아 연결했다. 한 행보만 다릿살에 힘주면 일타쌍피, 일타 삼 피다. '자연휴양림'은 말 뿐이고 별장 같은 개별 숙소에 에어컨이 씽씽 돌고 와이파이가 팡팡 터진다. 계곡에 짐 풀고 연기 피워 고기를 굽고 텔레비전 보다 잠든다. 한여름밤 쌀가루처럼 빛나는 뭇별과 벌레의 합창과 개울물 소리는 꽁꽁 닫힌 창문 너머로 사라졌다. 식민과 전쟁, 가난과 독재를 거치며 악이 받친 사람들은 자본의 팽창에 목숨을 던지기라도 하듯 달린다. 소비가 존재의 이유고 표현이다. 럭셔리한 소비가 품격 있는 삶이다.

야간근무를 마치고 아침 먹고 사과 사러 갔다. 사과농사짓는 지인이 남은 사과를 팔고 사과즙을 공짜로 끼워 준다고 했다. 가을 무렵 그의 사과를 먹어봤는데 싱겁지 않은 맛이었다. 여태껏 '싱겁다'는 짠맛의 반대어로 알았는데, 이 고장 사람들은 물기가 많아 새콤달콤하지 않고 밍밍한 사과 맛을 싱겁다고 한다. 별맛도 없는 맛이란 건 사과 본연의 맛이 들어있지 않단 의미일 게다. 성장기에 비가 많았던 올해 여름사과 작황은 형편없었다. 사과를 좋아하는 아내 곁에서 사과를 먹다 보니 사과마다 농장 별로 지역 별로 맛이 다른 걸 눈치챘다. 지인은 같은 농법과 거름을 써도 해마다 사과맛이 다르다고 했다. 곰곰 생각하니 농부가 갖은 노력과 정성을 들여도 작물의 맛을 좌우하는 건, 비바람과 햇볕 그것을 몸으로 받고 땅속의 물기를 빨아올려 열매를 키우는 사과나무 스스로의 마법 같은 의지에 다름 아니다. 나무는 풀과 벌레와 함께 살며 밤하늘의 별빛을 쐬고 늦가을의 서리에 젖으며 자신의 몸을 헐어 과육에 당분과 맛을 매단다. 농부는 보조자로 나무 아래를 맴돌며 나무의 의지를 북돋고 응원하는 메신저의 역할을 하고 결과를 기다릴 뿐이다. 사과 한 알에 담긴 뜻을 헤아린다면 그가 내미는 사과가 황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상자 속에 지난여름의 따가운 햇살과 지독한 비바람, 그리고 농부의 근심과 꿈을 가득 담아서 돌아왔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 관계의 존재가 된다. 풀 하나 돌멩이 하나도 서로 관계하지 않는 존재는 없을진대 사람과 어울린 모든 것과의 관계 또한 의식하지 않아도 무관한 것이란 없다. 역사와 민족의 관계, 성공을 향한 욕망과 궁핍한 삶... 우리는 바쁘다고, 필요 없다는 이유로 관계의 사유를 거부하거나 외면한다.

법정 스님은 <오두막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문명인들이라고 자처하는 현재의 우리들 삶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을 희생시키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생명의 원천인 자연을 자연의 방식이 아닌, 이기적인 목적으로 사용하는 데만 급급한 나머지 요즘 같은 지구 환경의 이기를 불러일으켰다. 올바른 이해는 책이나 선생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모든 것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위대한 정령을 존중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위대한 정령이란 무엇인가. 풀이나 바위나 나무 또는 물과 바람 등 세상 만물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생명 그 자체다.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은 하나의 느낌이나 자세가 아니다. 그것은 온전한 삶의 방식이고, 우리 자신과 우리 둘레의 수많은 생명체들에 대한 인간의 신성한 의무이기도 하다."

어젯밤 내 앞을 스쳐간 고라니의 안부와 사과 한 알에 담긴 관계의 소중함을 곱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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