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

by 소인

杂文 (264)

준비는 끝났다.
동계 침낭과 핫팩, 냉동밥과 물을 실었다. 얼어 죽지 않을 만큼의 잠자리와 끓여 먹을 음식이면 된다. 천 명을 훌쩍 넘는 코로나 19 확진자가 연일 터져 나온다. 내일이면 3단계 시행 여부가 판가름 난단다. 내비게이션 검색하니 벌써부터 문 닫은 시설들이 눈에 뜨인다. 휴게소와 마트를 들리지 않고 철저히 홀로 여행이다. 작년 자전거 여행할 땐 찜질방을 요긴하게 이용했다. 맘껏 씻고 늘어지게 자고 스마트폰을 충전했다. 한밤중 양파밭에서 소나기를 맞으며 텐트를 걷어 밤길 달려 모텔을 찾은 것 외엔 한둔과 취식이 무난한 여행이었다. 여름이기도 해서 추위는 걱정 없었는데 이번 여행은 차박 여행이다. 코로나를 뚫고 사람을 만나지 않으며 풍경과 바람, 겨울 햇살을 받으며 비대면 여행이다. 가보고 싶었던 남도의 섬과 바다를 둘러볼 예정이다. 대강의 경로는 생각해 두었지만 못 박힌 일정은 아니니 프리스타일인 셈인데 박물관 등의 시설은 대부분 문을 닫아놓은 상태에서 멀리서 풍경을 마음에 담는 여행이다.

얼어 죽지 않으려고 이중 삼중의 대비를 했지만 좁은 차 안에서 구부리고 잘 생각하니 미리부터 몸이 굳는 느낌이다. 집 떠나서 개고생한 경험은 소싯적부터 이골이 났지만 그때와 지금의 시간 차는 가뭇하도록 크다. 눈귀 어두워지고 판단과 달리 동작은 굼뜨다. 탄력 잃은 근육은 자잘한 주름으로 늘어졌고 이만한 나쎄 드니 공연한 근심은 주렁지게 달고 다닌다. 두려움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나서고 싶고 낯선 풍경과 부딪치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다. 생각이 아닌 몸으로 부딪치고 이 땅 위의 산 것과 지나간 것들의 뜨거운 흔적을 느끼고 싶다. 따스한 아랫목과 안온해서 기름이 더께더께 쌓인 진부한 사유는 그래서 사절이다. 간절히 원하는 건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는 거다.

작년 겨울엔 경남 쪽을 돌았으니 이번엔 전남이다. 차로 이동하니 기동력은 그만인데 자칫 가야 할 곳을 지나칠까 염려된다. 대충 경로는 선택했는데 프리하게 다닐 생각이다. 다음에 다시 가게 될지는 모를 일이다. 생각이 많아선지 매번 마지막일 거란 조바심이 일곤 한다.

비대면 여행 シフト

벌교(태백산맥 문학관)
고흥(김일, 김훈, 장세동, 박지성)
나로도(우주센터)
소록도(한센병 박물관)-거금도

보성녹차밭(대한다원)
고금도-신지도-완도(수목원)
강진
다산초당-다산 박물관-늦봄 문익환 학교
해남(초의선사-윤선도-윤두서-김남주-명량대첩비)

진도(삼별초 공원-자연휴양림)
목포
압해도
영광-법성포
고창-변산반도
군산

대전(산내 골령골 학살터)
상주-안동-봉화

벌교 조계산의 빨치산 염상진, 소록도의 한하운 시인, 다산 정약용, 김남주 시인, 산내 골령골의 피맺힌 영혼들이 스쳐간다. 참꼬막 짱뚱어 석화 해우... 남도의 물풍한 갯것도 떠오른다. 천둥벌거숭이로 마구발방 날뛰었던 젊은 날 뼈아픈 기억 때문에 차마 여수에는 들리지 못한다. 고백하지 못하는 건 용기의 결핍이다. 계집애와 한여름밤을 지새웠던 변산반도 채석강의 기억은 추억으로 남으리라. 초대받지 않은 이방인의 출현에 돌팔매질당하지나 않을지. 열이 확확 일어나는 겨울 침낭에 들었는데 도시 잠이 오지 않는 밤이다.


Untact tour2
여행도 일상이라면 사회의 기능이 정지된다는 건 일상의 멈춤이다. 현재의 코로나 사태가 그렇다. 코로나가 숙지고 나서도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젠 삶의 패러다임을 바꿀 때가 되었다. 너도 나도 앞만 보고 질주하던 기관차는 궤도를 갈아타거나 기관차를 바꿀 때가 되었다. 코로나라는 통제 불능의 것으로부터 기회를 다잡을 순 없을까.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대숲이 보였다. 쇠가 칼이 되면 음식을 만들기도 무기가 되기도 한다. 대나무 또한 죽순을 내기도 땔감, 그릇이 되기도 한다. 오래전 충청도 땅 서천에서 할머니를 만났다. 어릴 때 동학군이 마을 뒤 시누대 숲에서 하룻밤을 묵고 간 걸 또렷이 기억했다. 어른들은 소리 죽인 말소리로 세상이 확 뒤바뀔 거라고 했다. 모르면서도 무섬증이 솜처럼 두근두근 부풀었다. 흰옷을 입은 농민군이 죽창을 들고 일어서면 백산(白山)이요, 앉으면 죽산(竹山)이었다. 시대의 불의와 부패를 찌르고 찔리며 시산혈해를 이루었다. 민중의 피는 금세 바다를 이뤘고 세상은 야금야금 더디게 열렸다.

텅 빈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어쩔 수 없이 화장실에 들어갔다. 너른 식당에 손 두엇이 차지하고 밥 먹는다. 청년들이 외제차 앞에서 떠든다. 이 편한 세상 거칠 것 없단 표정이다. 커피 들고 그 앞을 지나갔다. 섰다 가다 네 시간 넘어 벌교읍에 닿았다. 질척한 물웅덩이가 시장 바닥에 빛난다. 소문대로 가게마다 꼬막 보따리가 쌓여 있다. 피조개도 보이고 더러 뻘낙지도 고무대야 속에서 가느단 다리를 흐느적댄다. 점심때가 지나 두리번거려도 식당 문은 꽁꽁 닫혔다. 흔한 김밥천국도 보이지 않는다. 김밥 말고 꼬막이나 먹으란 투다. 혼자 내뺀 죄로 눈 어름으로 살핀 가게에서 집으로 꼬막을 부쳤다. 낼이면 도착한단다. 우리나라 허벌나게 빠른 나라 택배 천국이다.

일단 숙제를 끝냈으니 태백산맥 문학관으로 갔다. 예상대로 문은 굳게 닫혔다. 주변을 둘러보고 마트서 빵으로 요기하고 소록도로 향했다. 전국 어딜 가도 길은 뻥 뚫렸다. 추적이는 빗길을 달려 소록도에 닿았으나 여기도 역시 출입금지다. 우중에 날은 일찍 어두워진다. 비바람이 때리니 아무데서 밥 끓이고 한둔하기도 마뜩잖다. 생각 끝에 여정에서 검색한 한센인 추모공원에 들렀다가 고흥에서 자기로 정했다. 집 떠나면 생고생이지만 난 어려서부터 개고생을 자초했다. 야트막한 구릉을 따라 마늘밭이 펼쳐진다. 더러 푸르뎅뎅한 배추밭도 보였다. 따듯한 남도에 온 게 실감 나는 풍경이다.

한센인을 모아다 간척사업을 시킨 들녘에서 할 말을 잃었다. 오래전이라고 하지만 차별의 시선으로 인간을 생과 사의 선택 없는 수렁으로 몰아넣은 정권과 묵언으로 동조한 민중. 한하운 시인과 이청준 작가는 영혼마저 오갈 데 없는 그들을 노래하고 고발했다. 추모공원의 비탈길을 비 맞으며 올랐다. 어쩌자고 일깬 동백꽃 한 송이 처연하게 젖은 걸 보니 가슴 먹먹해진다.


Untact tour 3
고통은 개별적이며 실재적이다. 수천수만이 죽었다고 뭉뚱그려 죽음을 추모할 순 없다. 하나하나 개별적인 세계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고통이 기억에서 사라졌다면 그건 더 이상 고통이 아니다. 고통은 떠올릴 때마다 새살처럼 아프다. 전쟁터에서 돌아온 남자가 이웃집 아주머니에게 친구의 전사를 알렸을 때, 친구의 어머니는 왜 너만 살아왔냐고 가슴을 때렸다. 다른 어머니는 네가 돌아와서 고맙다고 했다. 세월호가 가라앉자 손자를 끔찍이 사랑하는 할매가 말했다. '우리 지역에 그런 사고가 나지 않아 다행이다' 그런 사람도 자식을 키우고 충효를 다한다. 세월호 죽음 앞에서 삶이 부끄러워진다. 아침으로 먹으려던 크림빵을 그날처럼 흐린 바다에 던지고 돌아섰다.


Untact tour4
다니면서 언제나 느끼는 건 모두 열심히 잘 산다는 거다. 쭉쭉 난 도로, 매끈하고 높다란 건물은 어딜 가도 닮았다. 다만 차이라면 물산이 풍부한 고장은 외양으로라도 살림이 넉넉해 보인다. 떠나온 봉화와 대비되었다. 산골만큼 척박한 곳도 없다. 돈 될 것 없는 고장에서는 동물을 키운다. 소 돼지 닭의 집단 사육은 자연히 토양과 하천의 오염이 뒤따른다. 양돈 주인은 똥냄새가 돈 냄새지만 동리 사람들은 코를 쥐고 산다. 어획 기술이 나아지면서 바다에서 기르고 잡아 올린 물풍한 갯것들은 부엉이처럼 살림을 키웠다. 차가운 바다에서 추위와 씨름하다 돌아온 청년들이 술집 골목에서 떠들어댔다. 곳곳에 깨끗한 모텔이 키재듯 섰고 술집 간판이 번쩍였다. 눈감고 내리면 여기가 어딘지 모르는 게 우리나라 현실인 것 같다.

여행 다니면서 본 것 중 하나. 식당에서 일 인분은 차리지 않는다는 거다. 이문이 남지 않는다는 때문인데 울릉도에서 먹고 싶었던 오징어 내장탕을 못 먹고 나물을 비벼 억지로 먹었다. 완도의 모텔 골목 해장국집에서 종업원 아줌마가 내 뒤에 여자가 있나 살피더니 혼자냐고 묻고 안된다고 했다. 물론 사장이 시킨 거겠지만. '인심 하고는..' 툴툴대며 나오고 말았다. 인간은 자신에게 유익이 되지 않으면 관심이 없다. 관심이 없다는 것은 그것에 대한 생각을 닫는다는 거다. 사유가 없다는 건 상상력의 단절이다. 상상의 소재가 빈곤하면 공감은 형성되지 못한다. 요즘 세상이 살벌한 것도 그래서다.

팽목을 돌아서자 다닐 마음이 싹 사라졌다. 기동력을 핑계로 편하게 여행한단 생각이 든 거였다. 밤에는 떨고 밥을 건너뛸 때도 있지만 돌아갈 곳이 있는 비빌 언덕의 여행이란 포시러울 뿐이다. 씻는 건 사치고 차를 타면 원하는 곳으로 이동할 수 있지만 풍경의 내장에 감춰진 속살은 대부분 스치고 마는 게 사실이다. 팽목항의 낙서 중 기억해야 진실에 다가갈 수 있다는 말이 떠오른다.

진도에서 비가 쏟아지는 밤길을 달려 집에 도착했다. 짐을 풀고 세탁기를 돌렸다. 남도의 어두운 물빛의 바다가 나타났다 사라졌다. 아침에 깨자마자 쌈직한 동계 텐트를 주문했다. 면으로 만든 중국산인데 바람은 막아줄 것 같다. 버스 타고 걸어서 다니는 여행을 계획했다. 느릿느릿 대합실에서 사람들의 표정을 만나고 거리와 시골의 풍경을 담고 싶어서다. 이 땅의 산하에는 알게 모르게 살아온 역사의 숨결이 배어 있다. 피눈물의 한 맺힌 외침과 뜨겁게 토해낸 삶의 입김이 녹아 있다. 봉화에서부터 하루나 이틀 정도의 compact 한 'untact 여행'을 구상한다.

남도에 내려갈 때 배낭에 가져갔던 '이소가야 스에지'를 꺼냈다. 여행 중엔 한 번도 꺼내지 않았는데 책갈피를 열어 읽으면서 눈물이 줄줄 흘러나왔다. 주체하지 못하는 눈물을 닦았다. 일본인이, 식민의 나라에서 조선인 동지들과 노동조합 운동하다 체포되어 십 년 감옥살이를 했다. 인권과 평화를 위해 살다 간 이소가야 스에지(磯谷季次)에 대한 생각에 우물 밑바닥까지 부끄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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