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깊다. 깊은 밤의 적요는 고요함으로 머무는 게 아니다. 고요할수록 심중의 상념은 불붙은 꼬리를 이리저리 끌고 다닌다. 생각은 기억으로부터 출발해서 기억이 기억의 끄트머리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오래 산 사람은 생각이 많을 수밖에 없지만 도량에 따라서 생각은 가지치고 깎여나가 단순해진다. 구멍 뚫린 고목의 사념은 무위이지만 가느단 물관은 잎을 달고 꽃을 피운다. 무위의 꽃. 무위이면서 꽃을 다는 고목의 바람은 무엇일까. 목적조차 사라진 그저 그러한 자연의 순환. 사멸과 생성의 단순한 반복일까. 문득 고개 드니 검은 하늘에 부연 빛이 지나간다. 생각의 독은 허영이라는 말에 순간 오싹해진다.
뭍에서 부는 바람은 바닷가 들판을 훑고 어둔 바다로 몰려간다. 해거름 수평선에 걸린 불빛을 보았다. 모오든 빛을 의심하라! 진실이라고 빛을 띠진 않는다. 밤을 기다려 밤새 조업하는 배는 해안선을 따라 일제히 불을 켠 육지와 대치하기라도 하듯 수평선에도 섬광 같은 빛이 하늘 향해 불빛을 쏘아댄다. 어둑살이 슬금슬금 육지로 몰려와 해변을 점령하고 횟집, 어판장과 기름하게 깔린 번화가를 잡아먹고 낮게 깔린 지붕들이 갯바위에 다닥다닥 붙은 따개비 같은 주택가를 해치웠을 때, 까마득한 수백 미터의 물 바닥 아래서 빛의 유혹에 넘어간 생명의 아우성이 벌어진다. 그것들은 날마다 경매장에 펄떡이며 날뛰다 눈을 허옇게 뒤집고 거품을 물었다. 어부들은 선창가 술집으로 달려가고 낙찰 가격이 적힌 쪽지를 받아 든 선장이 셈하는 동안 생각 없는 갈매기들이 끼룩대며 식사를 기다린다. 노햇사람들의 풍경이다.
경매가 끝난 생선은 맛이 가기 전에 할복장으로 간다. 배를 갈라낸 고등어에 소금을 치고 오징어를 상자에 크기별로 골라 담고 얼음을 덮는다. 꺼낸 내장은 바다에 던진다. 새들의 밥때다. 어항의 맨 끝에 막 몸을 기댄 배에서 그물을 쏟아낸다. 그물코마다 박힌 것들은 마치 관광지의 사랑의 자물쇠처럼 수북하게 매달렸다. 그물이 바닥에 닿기 전 우르르 달려든 아낙들이 그물을 당긴다. 배에선 그물을 풀고 아낙들은 당기고 하는 식이다. 밀당의 신기한 광경을 놀러 나온 사람, 관광객이 계단 위에 서서 흥미롭게 구경한다. 뱃전과 상앗대에 올라선 갈매기가 고인 침을 삼킨다. 드디어 봉준호 감독의 '괴물' 같은 크기의 그물이 땅바닥에 몸을 누인다. 어미 개의 배에 달라붙어 젖 빠는 새끼처럼 아낙들이 달려들어 그물코마다 박힌 양미리를 파내듯 꺼낸다. 젖 보채는 아기처럼 갈매기가 날카롭게 짖어댄다. 컹컹이 아니라 깍깍 울어대는 게 꼭 짖는 소리다. 그물에 걸린 양미리는 찢어지지 않게 날래고 조심스레 빼내야 한다. 작업의 속도에 따라 대가리와 살점이 떨어져 나가지 않은 온전한 양미리가 한 두름씩 꿰이는 특전을 누린다. 경북에서는 양미리가 꺾인 모양이 호미 같다고 호매이 고기라고 부른다. 찢어지거나 살점이 떨어진 생선은 먹지도 팔지도 못한다. 조장이 한쪽으로 쓸어낸 파치를 눈삽으로 걷어내 바다로 던진다. 눈 빠지게 기다린 새들이 곤두박질하듯 뛰어들어 그것들을 채간다. 어떤 놈은 동료가 물고 가는 걸 낚아채기도 한다. 아비규환의 아수라판이다. 아낙들은 벌떼처럼 붕붕 수다 떨며 양미리 해체작업에 열중이다. 등짝을 더듬는 햇발과 수다는 그녀들의 난로와 같다. 햇볕이 덥히는 건 등짝만이 아니다. 잔칫집 현관에 모인 신발처럼 소복한 도시락 보따리도 햇살이 슬금슬금 건드린다.
배가 들어오면 그것으로 먹고사는 피붙이는 한둘이 아니다. 콩나물 교실의 아이들처럼 빼곡하다. 먹고사는 데는 놀이도 한몫한다. 파치를 먹는 갈매기 사이에 항구에 나온 낚시꾼 또한 찢어진 양미리 살점을 노린다. 황어를 낚기 위해서다. 황어는 회유성 어류인데 이맘때 어항에 다가와 생선 내장을 노린다. 어판장과 횟집 수족관으로 연결된 고무호스가 문어발처럼 다닥다닥 붙은 축대 옆에 바다로 통하는 하수구가 있다. 산동네부터 오수와 빗물이 모아지는 하수구 주변엔 항상 부유물이 그득하고 골라내면 쓰레기 사이 먹을 게 많다. 철 따라 물고기들은 항구로 몰려들어 그물에 낚인 물고기와 다른 식사를 한다. 감잎만 한 전어, 팔뚝 크기로 자란 황어는 낚시꾼의 손맛으로는 묵직한 게 흡족하다.
얻은 생선 파치를 작은 깍두기로 썰어 바늘에 꿰어 던진다. 투박한 민물 릴대로 바로 앞에 던져도 맴돌며 기다린 황어가 덥석 물어 챈다. 이것들은 저수지의 약은 붕어와 달라 먹이만 따먹는 법 없이 바늘째 삼킨다. 낚싯대가 활처럼 휘며 물속으로 처박힌다. 대를 쥔 낚시꾼의 관자놀이에 핏줄이 불거지며 벌겋게 달아오른다. 손목을 파르르 떨며 좌우로 낚싯대를 끌고 당기는 힘겨루기가 시작된다. 주변에 섰던 사람들이 다가온다. 줄을 감을 대로 감으며 손맛을 즐긴 뒤 살짝 허리를 굽혔다가 낚싯대를 뒤로 치켜올린다. 이때 낚시꾼의 상체와 낚싯대는 동시에 활처럼 구부러졌다 펴지는데, 저항하던 물속의 황어는 도리없이 물을 차고 달려 나온다. 바닥에 떨어진 팔뚝만 한 황어의 크기에 도시 사람들은 대단한 물건이라도 본 양 탄성을 터뜨린다.
미안하게도 황어 살은 횟감으로는 별맛이다. 겨울 한 철에만 회맛을 볼뿐, 오뉴월에 은어와 섞여 바다로 통하는 개울을 까맣게 덮고 올라오는 황어 떼를 이 고장 사람들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간혹 잡아다 횟집에 파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다. 횟집에서는 모둠회에 섞어 담거나 매운탕감으로 쓴단다. 황어는 썰어놓으면 참돔과 생김이 비슷하다. 비린내가 나고 가시가 단단해 고양이에게 함부로 줬다간 낭패 본다. 주문진 살 때 앞집 할머니에게 잡은 황어 두 마리를 드렸다. 할머니는 먹고 남은 생선을 고양이에게 주었는데 그만 목에 가시가 걸려 죽고 말았다. 홀로 사는 할머니를 손주처럼 따르던 고양이였다. 할머니는 눈앞에서 죽어가는 고양이를 뒤란 달래 밭에 묻어주었다며 눈물을 찍었다.
할머니가 오대산 가마소(釜淵洞) 마을에 살던 새댁 시절 난리가 터졌다. 국군이 지나더니 다시 인민군이 내려오곤 했다. 코밑에 검은 솜털이 나기 시작한 인민군은 새댁인 할머니에게 얻어먹은 은혜는 '전쟁이 끝나면 꼭 갚겠다'라고 했다. 그러곤 '평화로운 세상이 오면 오마니 우리 고향에 놀러오시라요' 라고 하며 북쪽을 바라보았다. 봄날 동네 앞산에 고사리 꺾으러 가면 인민군의 시체를 만나 놀란 적도 있었다. 가마소 마을에 들어가는 고개는 앞뒤 거리가 같다고 해서 전후재란 고개가 있는데 한국전쟁 때 국군과 인민군이 격전을 벌여 엄청난 전사자가 났다. 그 후로 밤마다 곡소리가 들렸는데 술 취해 마을로 걸어오던 주민이 혼이 쏙 빠졌다고 한다. 할머니는 고양이의 죽음에 큰 슬픔에 빠졌고 난 다신 황어 따윈 잡지 않기로 했다.
바람 끝은 찼지만 겨울 들어 맵차게 때리던 영하 십여 도 아래의 칼바람은 아니다. 외려 봄이 오는 듯한 착각이 일 정도의 훈기를 품은 바람이었다. 가곡천과 호산항의 바닷물이 만나는 합수머리 천변의 월천 유원지는 코로나 이후 폐쇄되었다. 이 천평 크기의 유원지는 깔끔하게 정돈된 상태다. 데크와 수도 시설이 나무 사이로 보였는데 태양광으로 불을 켜는 외등은 폐쇄와 관계없이 불빛을 쏜다. 잎을 떨군 가지 사이로 희부연 달이 떴다. 천변 도로 옆으로 너른 논이 있고 논 위로 강릉 포항 간 자동차 전용도로가 지나간다. 거대한 콘크리트 기둥 너머로 차량의 불빛이 번쩍인다. 바다 쪽 시멘트 공장 사일로 너머 고깃배의 불빛이 수평선을 따라 줄 서듯 나타난다. 버너를 켜고 물을 끓인다. 오늘 저녁은 라면과 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