杂文 (278)
아홉 시를 넘어서자 동쪽에서 떠오른 해가 소읍의 천변을 비추기 시작했다. 어제 내린 자국눈이 얕게 깔린 얼음 위에서 소금처럼 빛났다. 문수산에서 출발한 가느단 물줄기는 녹은 얼음 사이를 소리 내며 흐른다. 물가의 마른풀과 큰 키로 자란 갈대가 햇살에 몸을 녹인다.
소읍을 관통하는 하천에는 큰 다리가 두 개 걸쳐져 있다. 예전 군청이 있었던 보건소와 시외버스터미널을 잇는 중앙로의 다리가 하나고, 읍의 외곽을 돌아가 울진 영주간 자동차 전용도로와 통하는 다리가 또 하나다. 하천을 중심으로 해마다 축제가 열리는데 고수부지는 공원으로 꾸며 여러 가지 조형물을 조잡하게 세웠다. 서남쪽으로 필드골프 장과 테니스장이 있고 천변 양안에는 구시장과 신시장을 잇는 터널을 만들었다. 읍내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차를 타지 않으면 하천의 돌다리를 건너 다닌다. 거대한 두부 모양의 돌을 물길에 깔아 징검다리를 놓았는데 위에서 아래로 물길을 따라 이백여 미터 간격으로 네 군데에 놓여서 개울을 산책하는 사람들은 마음대로 원하는 돌다리를 건너갈 수 있다. 돌다리를 건너다 멈추고 물 바닥에 헤엄치는 송사리 떼를 들여다보기도 한다. 천변에서 만나기로 한 사람이 건너편에 나타나면 손을 모아 불러도 들을 수 있는 거리라 모든 게 개울 하나로 집약된 듯이 느껴진다. 동그란 피자 한복판에 줄을 긋고 동서남북으로 길과 집들이 모여 있는 게 읍의 형상이다. 동과 북쪽에서 들어오는 고갯길을 빼면 서와 남쪽은 낮은 평지로 이어진다.
차 안의 온도계가 빠르게 올라간다. 파크골프채를 든 노인이 마른 잔디 위를 걸어간다. 차 안에서 책 읽다 고개 드니 사방에서 어슬렁대며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해가 들기를 기다려 산책 나온 사람들인데, 모두 구부정한 어깨다. 짝을 짓지 않고 혼자 걷는데 마스크에 모자를 눌러쓰고 장갑 끼고 소리 없이 지나는 모습이 꼭 좀비 같다. 의식 있는 것은 공을 따라가는 골프채 노인과 나, 쉴 새 없이 떠드는 라디오밖에 없는 것 같다. 일하는 사람들은 가게 문을 열었거나 막 모닝커피를 들고 군청 사무실에 앉았을 시간이다. 도시와 마찬가지로 출근시간 후의 풍경이다.
좀비 같은 저들과 나도 마찬가지로 역사의 물살에 휩쓸려 왔다. 어린 나이에 한국전쟁을 경험한 사람들조차 사라지는 중이다. 역사는 과거를 알고 현재를 비판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데 필요조건이다. 눈앞의 안온한 삶에 매달리는 건 생명 가진 존재라면 누구나 원하는 바다. 하지만 공존의 가치를 염두에 두는 것 또한 인간의 본성 중 하나다. 기계의 톱니가 구르는 데엔 마모되지 않은 톱니가 빈틈없이 굴러갈 때 최고의 동력을 발생시킨다. 나이 든 사람은 정신과 몸이 마모되어 동력이 다하는 중이다. 그들도 한때는 역사의 현장에서 시대의 톱니를 돌리는 데 한몫을 한 사람들이다. 젊은이 눈에는 효율과 생산성을 다한 성가신 존재로 비칠지 모르나 그들은 생의 매듭을 서서히 푸는 중이다.
하얼빈 시가지를 벗어나 남쪽으로 달리면 '침화일군(侵華日軍) 제731부대 죄증 진열관(罪證陳列館) 마루타 부대가 있다. 지금은 기념관으로 꾸민 진열관 로비에 걸린 현수막의 글귀다. "前事不忘後事之師" '지난 일을 잊지 말고 후세에 교훈으로 삼자'는 의미다.
「항일유적 답사기」 박도.
나쁜 과거든 좋은 과거든 지난 흔적은 현재의 판단 근거이자 미래를 위한 학습의 토대다. '역사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 (김수영「거대한 뿌리」). 야당 의원이 라디오에 나와 침을 튀긴다. '제발 이젠 친일파 어쩌구 하며 과거의 발목 잡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자'라고. 듣고 있다 말문이 막혀버렸다. 저런 게 의원이라고, 저따위가 국민이 뽑아준 선량이라니. 저급하고 천박한 시대 인식에 토가 나올 정도다. 베트남에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피해자가 '과거를 접고 미래로 나아가자'라고 한 뜻은 결코 과거를 잊자는 뜻이 아니다. 가해자는 문제를 파헤쳐 상처를 물에 깨끗이 씻으려는 방식이라면, '너무 많은 것을 잃고 너무 큰 고통을 당한 자기네는 일단 이 아픔을 벗어나는 것이 더 시급하다는 것'이다.
조금 전에 아내를 태워주고 왔다. 외곽도로에서 새로 지은 군청으로 들어가는 길은 군청 옆을 지나쳐 회전로터리에서 유턴하는 방법뿐이라 출근시간에 겹치면 공무원이 타고 온 수십 대의 차에 막히기도 한다. 좁은 지형 탓에 처음부터 도로 설계가 불가능했는지 모른다. 고가도로를 따로 세우지 않는다면 어려운 일이다. 외곽도로 다리 밑 길은 아예 도로가 끊어진 상태다. 시골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시나 들이나 의식이 촌스럽다면 촌놈은 어디에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