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오는 날은 푹하다. 눈 온 뒤에는 거지가 빨래하는 날이다. 한밤중에 내리기 시작한 눈은 새벽에도 쉼 없이 내린다. 외등 불빛에 날리는 눈가루가 하루살이 같다. 겨울이라 날벌레 없으니 다행이다 싶다. 자국눈 정도 쌓였을까 생각보다 많이 덮이지 않은 텐트를 흔들어 털고 빗자루 꺼내 출입구 바닥을 쓸었다. 라디오는 자지 않고 음악을 쏟아낸다. 읍내의 불빛도 조는 시간이다. 오줌을 누려다 올려다보니 cctv 카메라가 보인다. 어둑한 곳까지 가서 누었다. 몇 해 전 처음 생긴 군청 cctv 관제소에 기간제 일자리 신청을 했다. 면접관은 이력서를 보고 놀랐다. 대답은 어찌어찌했으나 결과는 낙방. 나이에다 기초적인 컴퓨터 자격증이 없으니 당연했다. 그 해 초겨울 산불감시원을 시작했다.
시골의 비정규직 기간제 일자리는 다양하다. 산지가 83%인 B군은 자연 휴양림 관리, 산림병 예찰, 산림 작업 등 산림 관련 일자리가 많다. 산불감시원은 산불을 감시, 신고하는 업무이고 산불을 직접 끄는 일은 산불진화대가 따로 있다. 군에서는 산림 진화용 헬기를 겨울마다 임대해 쓴다. 임산 도로가 없고 차량이 닿지 않는 깊은 산은 헬기가 불을 꺼야 한다. 진화대는 불의 확산을 막고 잔불을 정리하는 정도지 급속히 번지는 불을 인력으로 끌 수는 없다. 산림감시원은 읍과 각 면에서 인원을 선발해 겨울과 봄철 동안 운용한다. 산불감시원에 대한 일고(一考)다.
'산불감시원은 화재예방에 대한 계획을 수립하고 지정된 산림과 벌목 예정지역을 순찰하며 산불을 감시한다. 감시 범위는 마을의 주택과 일대 농경지, 산림을 포함한다. 지자체에 따라 별도의 산불 진화대를 조직해 운영하기도 한다. 고용 직업 분류로는 농림어업 단순 종사원이고, 표준직업 분류 상으로는 산불감시원이다. 영어로 forest fire lookout, 중국어로는 山火监视员이다.
산불감시원의 직무 활동은 산불 발생 감시와 계도 및 홍보, 산불 발생 시 초기 진화 및 보고 등이다. 활동 기간은 11월 1일부터 다음 해 5월 중순까지다. 이상 건조 등으로 산불이 자주 발생하면 기간을 연장하기도 하나 수목의 잎이 무성해지는 녹음기인 5월이면 종료된다.
산불 발생이 빈번한 시기는 봄철 건조기(3,4월-60%)이다. 여름 가을이 10% 정도이고 겨울에도 발생한다. 해마다 4~500건의 산불이 발생하며 1,000에서 1,500ha의 산림이 소실된다. 산불의 주요 원인으로는 사람에 의한 실화(방화 포함)가 으뜸이다. 다음으로 농산 폐기물이나 쓰레기 소각 시 옮겨 붙는 경우, 논•밭두렁 태우다 산불로 확대되는 경우다. 외국의 경우처럼 벼락이나 고압선 불꽃 등으로 발생하는 경우는 드물다.
산불감시원의 근무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며, 일몰 시각의 변동에 따라 조정하되 총 근무시간은 준수한다. 산불 감시활동(이하 감시활동)은 망루, 등산로 입구의 초소, 순찰 활동 등이며 계도 방송 등으로 산불 예방을 주민에게 홍보한다. 감시원은 초소나 차량에 무전기와 방송 장비, GPS 단말기, 진화 장비 등을 휴대하고 감시활동에 임한다.
감시원의 급료는 최저시급(2020년 현재 8,590원)을 기준으로 하며, 평일에 한해 주 2일 휴무일을 갖는다. 우천 시에도 쉬며 무노동 무임금이다. 차량 유류비는 별도로 지급한다. 지자체마다 다를 수 있다. 평일에 쉬는 건 주말에 등산 등으로 인한 입산자의 실화가 염려되기 때문이다. 산불 발생의 원인에 따라 과태료가 부과되며 대형 산불의 경우 최고 3,000만 원이나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기도 한다. 입산자가 불을 냈을 경우, 횟수에 따라 30-40-50만 원. 인화물질을 소지하기만 해도 10-20-30만 원의 과태료를 물릴 수 있다. 그러나 징벌적 과태료 부과가 산불예방에 효과적인 건 아니다. 심신미약자의 방화도 발생하고 산불감시원도 주민이다. 계도를 중점으로 하며 위반 사실이 반복해서 적발되면 담당 공무원에게 보고하여 원만한 해결을 도모해야 한다.
산불은 캘리포니아의 사례를 보더라도 인명과 산림에 깊은 상처와 엄청난 피해를 입힌다. 산림의 수목과 동식물 등 생태의 파괴는 복원하는 데 백 년의 시간이 걸릴 수도 있으며, 일부는 복원이 불가능한 경우도 생긴다. '불은 창조를 위한 파괴의 본능'에 해당되지만 산불은 인간과 생태에 치명적이다.
우리나라 산림 임상(林相)의 경우 침엽수림이 50%에 가깝다. 침엽수에는 송진과 유지(油脂) 성분이 있어 산불이 나면 대형화하는 경향이다. 조림 시 단위 면적당 목재생산량이 많은 잣나무 낙엽송 등 침엽수 위주의 조림사업은 산림 구성의 획일화를 낳았다. 활엽수와 침엽수 비율이 7대 3 정도일 때 숲이 안정적인 만큼 산림생태계와 조화를 이루는 조림 정책이 필요하다. 산림생태계의 안정성을 높이려면 활엽수림의 비율을 높이는 등 국가 조림정책 방향이 조정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재해 대응 시스템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전에 활엽수림을 늘려 산림 다양성부터 확보해야 할 것이다.
감시원의 하루는 오전 9시 읍사무소 출근으로 시작한다. 읍사무소 이층의 산업계 옆의 탕비실에 감시원들이 붉은 감시복을 입고 모인다. 공무에 바쁜 공무원이 휴식을 취하는 공간이다. 유니폼은 상의와 모자, 그리고 중국산 작업화를 나눠준다. 출근한 감시원들은 커피나 생강차를 입맛대로 골라 마시며 출근부에 도장을 찍으며 출석 점호를 마친다. 도장은 그날의 소중한 일당의 약속이다. 계장이나 산불 담당 실무자가 그날의 전달사항을 알려주면 감시원은 현장으로 출동한다.
떨어진 기온에 손이 시리다. 내일부터는 면장갑을 끼고 나오기로 한다. 읍사무소 화단의 영산홍 입술이 새파랗게 얼었다. 읍사무소 뒷길에 차를 세워둔 감시원들은 전날 있었던 감시 구역의 에피소드라든지 동료가 알아두면 좋을 유의사항 등의 정보와 잡담을 나누며 잠시 담배짬을 보낸다. 담배 짬이지만 실제 담배를 입에 무는 사람은 나 한 사람밖에 없다. 올해 여성 감시원이 많이 선발된 탓도 있지만 나머지 남성 감시원은 비흡연자다. 모두 열한 명의 감시원이 스피커와 깃발을 꽂은 차에 타고 일제히 읍내를 빠져나가는 행렬은 볼만하다.
담당 구역을 오전 오후로 나눠 돈다. 오전에 유록 마을, 승마장, 인하원을 돌면 오후에는 범들, 한골, 망도 마을을 도는 식이다. 매일 정한 코스가 물리면 반대로 돌기도 한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방송을 튼다. 음량을 15에 맞추고 10~20km의 시속으로 느릿하게 움직인다. 방송은 마을 초입과 끝에서 주로 틀고 마을 가운데에선 삼간다. 소가 모인 축사 가까이선 조심한다. 소가 놀라거나 하면 새끼 밴 소에겐 위험하기 때문이다. 마을의 집과 논밭을 지나며 정한 지점에 설치한 위치인식 패드에 GPS 단말기를 대어 위치인식을 한다. 보통 구역마다 7~8개소가 있는데 화목보일러를 사용하는 집에 붙여놓았다.
산림과 인접한 외딴집은 주의가 필요하다. 아궁이의 불씨나 쓰레기를 태우다 날아간 불티가 산에 옮겨 붙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마을과 떨어진 밭에 컨테이너 등으로 농막을 짓고 농사짓는 주민도 많다. 이런 농막에는 농산 폐기물인 고춧대, 깻단 등을 소각할 우려가 다분하니 주의를 기울이고 산불조심을 홍보한다. 봄철 농사 시작할 때도 논밭두렁에 불을 놓기 일쑤라 감시와 예방에 주의가 필요하다. 마주치는 주민에게 친절하고 예의 바른 자세로 산불 조심을 당부하고 홍보 전단지를 나눠주기도 한다. 영세민 가구나 독거노인 가구에 화재경보기를 무상으로 달아주기도 하고 동절기엔 빙판길 낙상을 방지하기 위해 염화칼슘을 두어 포대씩 마을회관에 전달하거나 뿌리는 것도 감시원의 직무 중 하나다.
감시원은 주거시설이 없는 골짜기나 외진 곳도 빠뜨리지 않고 다녀야 한다. 불은 민가나 사람의 유무를 가리지 않고 귀신처럼 날아다니기 때문이다. 몇 해 전 강원도 고성 산불의 경우 불덩어리가 마침 불어닥친 강풍을 타고 700미터나 날아가 건너편 산에 옮겨 붙기도 했다. 말이 칠백 미터지만 산골 마을의 지형이라면 마을과 개울, 큰길을 건너뛰고도 남을 거리다. 산불 아니 모든 불은 사람의 상상과 예측을 초월한다. 버들개지 사이 아지랑이 춤추는 봄날 밭둑에 불이 나면 보이지 않는다. 마른풀에 번진 불은 연기 없이 송사리처럼 불 꼬리 흔들며 요리조리 빠져 다닌다. 그래서 봄 불을 도깨비불 또는 여우 불이라고 한다.
산불감시원의 일상 업무는 담당 구역 내 GPS 위치 확인과 근무일지 작성, 마을회관에 비치된 순찰일지에 사인하기, 산불예방 깃발을 적소에 설치하기, 산불예방 홍보전단 배포 등이다. 또한 지역 내 교통사고나 도로의 장애물 유무를 파악해 공무원에게 보고한다. 소나무 재선충병 구역의 소나무 무단 반출 행위나 쓰레기 불법 투기 등 생태를 훼손하는 여타의 행위도 계도 단속하는 업무도 포함된다.
계도방송을 15에 맞추고 유록(呦鹿) 마을로 들어선다. 어린 사슴(幼鹿)이 아닌 우는 사슴마을이라니. 마을의 역사에 관심 많은 나는 마을 어르신 붙잡고 여쭤보기로 작정하고 두루 살핀다. 오지랖은 남의 가문까지 두루 미친다. 사람만 보는 게 아니라 연기 나는 곳이 없나 가자미 눈으로 살핀다. 나이 스물둘에 왜적과 싸우다 전사한 배 장군은 무엇이며 소식을 듣고 따라 죽은 월성(月城) 이 씨의 삶은 또 무슨 의미인가 되뇌며 살핀다. 멀리 이장 네 축사 너머 새로 지은 흥해(興海) 배 씨 종택이 나타난다.'
산불감시원을 세 해째 하고 그만두었다. 매년 비슷한 업무에 물린 거다. 내 성벽은 다양한 걸 좋아한다. 광고회사 시절 하루에 처리하는 업무의 가짓수가 평균 스무 개가 넘었으니 이력이 난 거였다. 하긴 그래서 초년에 팔도를 무른 메주 밟듯 쏘다니지 않았던가. 작년엔 자연 휴양림 관리를 했다. 올해는 재선충 감염목 무단 이동을 막는 초소 근무에 지원했다. 체력장 시험에서 턱걸이를 두 개 했다. 고등학교 때 철봉과 복싱을 한 체력은 이미 바닥났다. 다섯 개가 만점이다. 어쩌다 수목 관련 일을 했고, 자격증이 세 개나 있으니 시골에서 일자리 구하는 덴 적격이다. 앞으로 기간제 일은 서 너 해 하다 그만둘 생각이다. 끊고 줄이고 비워야 한다. 생각 없이 살다 보면 쓰레기만 쌓인다. 새로 네 시 넘어 눈이 그쳤다. 추위가 몰려올 태세다. 잠 설쳤으니 커피 물 끓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