杂感 (1)
놀면 쉬면 하루는 금세 간다.
하지만 고통스러우면 시간은 더디 간다. 예전에는 상황이 빨리 지나기를 바랐으나 지금은 그럴 여가도 처지도 아닌지라 상황을 지켜본다. 움직이는 행위로써 상황의 전개와 결말에 개입하기보다. 흐르는 국면의 양상을 사유한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사고는 뜻밖에 일어난 불행한 일이나, 사람에게 해를 입혔거나 말썽을 일으킨 상황이다. 반면에 사건은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거나 주목을 받을 만한 뜻밖의 일을 말한다. 둘 다 뜻밖의 일임에도 사고는 사고 이전의 상황을 갈망하지만 되돌아갈 수 없다. 할 수 없이 근사치의 수습이 전부다. 목발을 짚거나 의수를 다는 경우다. 하지만 사건은 뜻밖의 일이면서도 수습보다 앞으로 나아감을 목표로 한다. 뜻밖의 일인 '사건'은 인간의 의지가 틈입하여 발생한 것이니 그렇다.
역사는 사건이 쌓이면서 앞으로 나아가거나 퇴보했다. 동시에 사고가 끼어들면서 구동축을 비틀어 돌리기도 했다. 개인의 삶도 사고와 사건이 적당히 비벼지면서 한 사람의 일생을 이리저리 흔든다. 불완전한 운전자를 대체하기 위해 자율주행 자동차를 개발했다. 물론 그것이 진보이거나 발전이란 의미는 아니다. 인공 지능(AI)으로 변화의 일면을 담당한다는 거다. 과학 기술과 문명의 발달이 인류의 진보를 의미한다고 인식하던 상황은 달라졌다. 이십 세기 두 번의 큰 전쟁과 이십일 세기 들어서도 달라지지 않는 인류의 고통을 보면 뻔하다. 종말론이나 예정 조화설을 믿지 않더라도 인류의 종말은 점점 가까워지는 듯하다. 병든 지구와 구성원인 인간종의 저지레는 그칠 줄 모르니 말이다. 인류 공동체가 몸과 정신을 가다듬어 인간다운 사회를 만들기 위한 조상의 노력은 눈물겨웠으나 불운하게도 어두운 쪽으로 기우는 느낌이다.
근대 중국의 혁명가 루쉰(鲁迅)은 '혁명 후의 혁명'을 강조했다. 일회성의 혁명으로 세상 모든 게 달라지는 건 없다. 혁명의 틈바구니에서 개인의 뱃속을 채우려는 반동적인 움직임은 끊임없이 일어나는 법이다. 결국 그의 말은 끊임없는 일상의 혁명, 늘 깨어 있으라는 외침에 다름 아니다. 관료는 겉으로는 국민 전체를 위한 봉사의 직무를 내세우지만 사실상 국민을 내려다보는 특권계층이 되어 국민을 '개 돼지'쯤으로 보는 것이다. 망언으로 파면된 공무원은 속뜻은 그게 아니라고 변명했지만 우리 사회의 차별 시선은 이미 단단한 화석이 되었다. 술 취하거나 자면서도 정신을 수습하지 않으면 뿌리 깊은 반공동체의 무리에게 보궐선거의 빌미를 내주기도, '검찰당(檢察黨)'이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사건을 기소하는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 것이다.
일반 대중은 어떠한가.
당면한 삶의 목표에 몰입한다. 태생의 조건과 상황은 우연이지만 인간은 눈물 나게 행복의 조건을 향해 노력하는 존재다. 대다수가 원하는 행복의 조건은 물질의 충족이다. 오늘날 인간답게 사는 가치의 척도로 돈이 으뜸이 된 것이다. 좋은 집과 큰 차, 명예도 거머쥘 수 있는 입장이라면 얼마나 좋은가. 만인으로부터 존경과 우러름을 받는다면 집은 좀 작아도 차가 없어도 될지 모른다. 겉치레와 허영은 이미 독처럼 온몸에 퍼졌다. 명절이면 뜬금없이 전 관료의 명절 인사가 날아든다. 거리의 현수막에서 말간 웃음을 보내는 그들을 보면 토가 나오려는 걸 참는다. 다음 파수의 선거를 노린 행보다. 공동체를 위한다고 나서는 사람 중 생각 없이 덤비는 물건이 가장 위험하다.
놀면 쉬면 하루는 금방 가지만 할 일은 좀처럼 줄지 않는다. 고장 난 제습기 고칠 계획을 세우고 봄부터 나설 일자리 도시락도 닦아 놔야 한다. 죽은 철학자의 상념을 곱씹어 새기는 것도 미룰 수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