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감

by 소인

杂感 (7)

비가 내린다.
부연한 동살 트는 마당이 빗물에 흥건하다. 겨우내 죽은 듯이 누렇게 뜬 잔디 위에 파란 풀이 올라온다. 잡초는 먼저 올라와 잔디를 누른다. 눈비 뒤집어쓴 텃밭의 상추는 얼어 죽었는지 감감소식이다. 성급한 주인의 시선에는 모든 게 늦돼 보인다. 마가목 나무 겨울눈이 젖꼭지처럼 도톰하게 부풀었다. 가지를 남겨둔 체리나무의 죽은 피부 같은 줄기가 빗물에 촉촉하다. 날 데워지면 기름한 화단이며 마당 여기저기서 잔치 벌어지 듯 초록 풀빛이 환할 거다.

바이러스가 마을의 공기를 에워싸도 산들의 모습은 봄을 갈아탈 기세다. 머춤하며 삶의 양식을 바꿔야 한다고 외치던 주장도 어느 사품에 잦아들고 예전의 일상을 회복하리라. 주춤한 욕망은 다시 고개를 들고 일상의 보조를 맞출 거다. 밥을 버는 행위는 계속되어야 하는 것처럼 삶도 계속돼야 하니 말이다.

관습처럼 굳은살 박인 뇌수에 새 물을 갈아 넣지 않는 한 과거의 물고기가 느릿느릿 헤엄친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인식의 안과 밖을 뚜렷하게 경계로 삼는다. 모르는 것에 대한 인식의 확장은 능력 밖이지만 지혜로운 이는 인식을 초월하기도 한다. 그만큼 인간의 능력은 위대하다 못해 서늘하다. 하지만 나란 종류의 인간은 어리석기가 끝이 없어 어제 배운 걸 오늘 펼치면 새로 본 것처럼 느낀다. 날마다 물을 갈지 않으면 거품 물고 죽는 붕어와 같다. 어쩌면 루쉰(鲁迅)은 나 같은 부류의 인물을 위해 '일상의 혁명'을 말했는지 모른다. 혁명은 단발로 끝나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지속해야 한다는 것, 혁명 후에 틈입하는 반혁명을 쓸어내는 작업은 계속돼야 한다는 거다. 혁명의 혼란을 틈타 느끼한 배를 불리려는 자를 경계해야 한다는 건 역사가 말해준다. 상해 임시정부 초기 독립운동 진영은 외교 독립노선과 공화주의파로 분열되어 있으면서 대의를 위한 신념은 지켜나갔다. 그러는 중에 서로를 향해 총구를 겨눴지만.

역사는 실체가 없는 관념이다.
제도 교육에서 배운 대로라면 역사는 발전을 목표로 움직인다. 서구식 사고에 따르면 원시공동체에서 부족 국가로, 부족 국가에서 봉건제와 왕조시대로 바뀌어갔다. 산업혁명 이후 사회주의와 민주체제로 모습을 달리했지만 한반도는 달랐다. 왕조체제에서 식민지로 들어갔으니.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식민 통치 동안 근대화를 맞이한 불운한 역사였다. 과학과 문명의 발전이 역사의 발전을 의미하진 않는다. 역사가 발전한다는 건 관념에 불과하다. 강요되거나 주입된 희망사항일 뿐이다. 단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삶의 양식이 변화할 뿐이다. 노자가 말한 천지 불인(天地不仁)의 속내는 천지는 인간을 봐주지 않는다는 뜻이다. 천지란 말 그대로 하늘과 땅이지만, 자연과 우주의 카오스적 생성과 사멸의 순환만을 반복할 뿐이다. 절대 유일의 종교관으로 낙원과 천국을 꿈꾸는 건 개인의 자유겠지만 그걸로 인간의 사유와 행위를 옥죄는 건 삼갈 일이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그러한' 우주의 순환은 인간을 풀강 아지 취급하는데 무슨 역사의 발전 운운한단 말인가. 다분히 인간적인 삶의 조건을 위해 멈추지 않고 싸울 뿐이다.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고.
어림 반푼 어치도 없는 말이다. 과한 비는 둑이 무너져 사태가 나고 지나친 시련은 고통과 미욱함을 양산한다. 일본이 히로시마 평화공원에 원폭 피해자를 기리면서 쓴 말이다. '다시는 잘못을 저지르지 말자'. 무슨 잘못인가. 주어가 빠진 비문은 일본인 특유의 애매함을 키운다. 자기들이 전쟁을 일으킨 잘못? 애먼 원자폭탄에 당한 후회? 전쟁에 패배한 실수? 평화헌법을 뜯어고쳐 재무장하려는 저들의 속셈 속에 타국을 침략한 전쟁의 과오에 대한 반성은 보이지 않는다. 그들의 머릿속에 호스를 박아 새 물을 콸콸 쏟아부은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우리 또한 당할 만큼 당했다. 그러나 미래가 온다면 인류는 가공할 전쟁과 지구의 오염으로 빙하기와 맞먹는 재앙을 맞이할지 모른다. 원조 '혹성탈출'에서 찰턴 헤스톤은 상반신이 모래에 파묻힌 자유의 여신상을 보며 "그래, 너희들이 다 망쳤어!"라고 외치지만, 속편에서는 머리가 뛰어난 시저가 유인원을 이끌고 인간 세상을 등지고 낙원으로 향한다. 어쨌거나 지금은 여기의 문제에 집중할 때지만.

바이러스가 숙진다고 예전의 일상은 돌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욕망은 전후좌우 가리지 않고 들판의 풀처럼 돋아나 설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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